주간동아 1021

2016.01.13

커버스토리 | 속수무책 북핵

실패했다, 그러나 수소폭탄 코앞까지 갔다

기존 핵 보유국 사례로 본 4차 핵실험 기술 특성…조만간 추가 실험 감행할 듯

  •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glee@stepi.re.kr

    입력2016-01-11 14: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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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수소탄을 언급하며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번 실험은 기술적으로만 따져봐도 3차까지 핵실험과는 그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전에는 핵무기의 완성도를 높이고 소형화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폭발 위력 증가를 목표로 했다는 것이다.
    핵실험은 국방 수요와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목표와 실험 장치, 방법을 설계하고, 실험 후의 계측과 분석을 통해 결과를 피드백하면서 수행한다. 성과가 미진하면 추가로 실험하고, 충분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따라서 북한의 발표는 2013년 3차 핵실험에서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전술핵무기 개발에 성공했으니 이제는 탄두 위력을 강화한 전략핵무기 개발로 전환한다는 의미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수소폭탄이라는 북한의 발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통상 Mt(메가톤) 단위, 최소 수백kt(킬로톤) 이상인 수소폭탄은 북한 내에서 실험할 장소가 없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가 강화형(증열형·Boosted) 핵무기였으리라 판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화형 핵무기는 부분적인 핵융합으로 원자폭탄의 위력을 수배 이상 나오게 개선한 것이다. 수소폭탄과 같은 원리를 사용하므로 이에 성공하면 손쉽게 수소폭탄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강화형 핵무기의 성공 여부가 수소폭탄 개발 능력의 판단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어쩌면 수소폭탄을 실험할 수 없는 북한의 여건 때문에 처음부터 강화형을 수소탄이라 부름으로써 일찌감치 외부에 미치는 충격을 극대화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핵융합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과는 다른 핵물질을 사용한다. 초기에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사용했지만,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아 생산이 어렵고 빠르게 분해되며 기체라서 취급이 어렵다. 이 때문에 초기에 개발된 대부분의 수소폭탄이 무게가 수 톤에 달하는 거대한 장치였고 따라서 실전에 배치하기도 어려웠다.


    핵융합 물질 개발 성공했다고 봐야

    이를 대체하기 위해 서방 핵 국가에서는 자연계에 존재하며 분리하기도 쉬운 Li(리튬)6를 중수소와 결합한 Li6D를 주로 사용해왔다. 이를 폭발장치 안에 넣으면 원자폭탄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고온·고압 때문에 분해돼 삼중수소가 발생하고, 이것이 다시 중수소와 결합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 고체이므로 부피가 지극히 작고 취급도 간편하다. 이 같은 방식은 수소폭탄을 소형화해 실전에 배치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로는 중국의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핵무기 개발 초기부터 우라늄 농축과 Li6 개발을 병행했고,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한 후에는 연구 인력의 3분의 1을 수소폭탄 개발로 전환했다. 그 덕에 1964년 10월 첫 번째 핵실험으로부터 1년 8개월 뒤인 66년 5월 강화형 핵무기를, 2년 7개월 만인 67년 6월에는 수소폭탄을 실험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북한 역시 일찍부터 이러한 경로를 밟아왔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이번 핵실험이 수소탄 실험이라는 선언을 마냥 허장성세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그렇게 판단하기에도 그 위력이 너무 작다. 한국 국방부는 폭발위력이 6kt이라고 밝혔고, 실험장 매질을 고려해 범위를 넓혀도 6~12kt이 최대치다. 3차 핵실험에 비해 위력 증가가 거의 없었으니 강화형 핵무기 실험에 성공했다고도 볼 수 없다.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강화형이 아닌 일반 핵무기이거나 △강화형 핵무기를 실험했으나 원자폭탄만 폭발하고 거의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원자폭탄 위력을 줄이고 부분 핵융합을 해서 위력이 비슷했거나 △실험장 기폭실에 동공을 만들어 지진파 규모를 인위적으로 낮췄거나 하는 경우다.
    개인적 판단으로는 북한이 ‘소형화’된 수소탄이라고 발표한 점을 들어 두 번째 경우가 가장 개연성이 높다. 소형화에 유리한 Li6D를 사용하기는 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Li6와 중수소를 분리하는 연구를 수행해왔으므로 10년 이상 시간이 지난 지금은 생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Li6D는 중수소, 삼중수소에 비해 핵융합 반응이 어렵고 더욱 가혹한 조건을 필요로 하는데, 북한의 기술력이 아직 이에 도달하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이를 무조건 실패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번에 강화형 핵무기를 실험했다면, 북한은 이미 Li6D 등 개량된 핵융합 물질 개발에 성공했고 수소폭탄 관련 이론 연구나 실험 기법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주목할 점은 ‘강화형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실험은 수평갱도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유리하다’는 사실이다. 수평갱도 지하핵실험에서는 핵장치를 넓은 기폭실 내에 설치한 후 필요한 측정 장치들을 핵장치 외벽에 부착하거나, 진공·비진공 측정관을 통해 특정 장소로 이끌어 설치할 수 있다. 이른바 근거리물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핵실험은 진짜 강화형 폭탄

    다소 어렵게 들리겠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강화형 핵무기를 수평갱도에서 실험했다면, 연결 통로를 만들어 원하는 거리에 초고속 카메라와 필요한 측정 장치들을 설치한 뒤 전자기펄스 같은 외부 방해요소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측정할 수 있게 된다. 측정관은 암흑 속에서 기폭실과 연결되므로 다양한 간섭 방지 효과, 예를 들어 핵복사 차폐나 전자복사 방호 등에 양호한 측정 환경을 제공해준다.
    이러한 근거리 핵물리 진단은 지상, 공중, 수중 핵폭발이나 다른 실험으로는 수행할 수 없다. 오로지 지하핵실험만이 가진 장점이다. 이렇듯 대체 불가능한 특징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 세계를 통틀어 진행된 2000여 차례 핵실험 중 절반이 지하에서 수행됐다. 그중 대부분이 핵무기 발전을 위한 실험이었고, 실험 책임자도 근거리물리 전문가가 많았다. 지상이나 공중에서 수행되던 핵실험이 지하로 내려간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러한 유용성 때문이었다.
    더욱이 실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험 방법에 대한 다양한 기술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 암석 매질에 따른 폭발역학과 터널 봉쇄, 측정관 설치, 폭발 후 기폭실 확장 동태, 지진파 복사환경 등에 대한 자료 및 경험, 이론 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론과 실제를 결합하고 후속 실험에서 개량한다. 이번에 우리 정보당국이 사전탐지에 실패한 것 역시 이러한 실험기법 진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론을 정리해보자. 이번에 북한은 전략 핵무기 개발을 목표로 위력이 강화된 부분핵융합 폭발실험을 수행했으나, 기대만큼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핵융합 물질 개발에 성공했고 지하핵실험의 장점을 이용해 많은 측정치를 얻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에는 상당히 강화된 위력의 핵실험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이른 시기에 추가 핵실험을 수행할 가능성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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