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0

2016.01.06

국제

위안부 피해자 합의, 아베의 계산법

중국 견제 위한 한국 끌어들이기…日 내부 “외교적 승리” 평가도

  • 장원재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입력2016-01-05 17: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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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15년 12월 24일 오후 5시 도쿄 지요다 구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을 만났을 때만 해도 한일 간 최대 현안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연내 해결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기시다 외무상에게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전격적으로 한국행을 지시했다. 양국은 외교장관 회담에 합의했고, 나흘 동안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의한 끝에 위안부 해법을 도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차례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연내 해결’을 언급하며 일본을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연내로 한정하지 않겠다’며 줄곧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 아베 총리가 왜 갑자기 결단을 내린 것일까.



    넷우익은 ‘반대’, 우익 정치인은 ‘평가’

    합의 다음 날인 12월 29일 도쿄 시내 곳곳에서는 우익들의 위안부 합의 반대 시위가 열렸다. 총리 관저와 외무성 앞에는 200여 명이 모여 “모욕적인 합의를 번복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아베 총리를 ‘매국노’라고 불렀고 일부는 ‘할복하라’는 극단적인 발언도 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른바 ‘넷우익’들 사이에서도 격한 반응이 나왔다. 합의 소식을 전한 인터넷 기사에는 만 하루 동안 1만5000개 댓글이 달렸는데 ‘최악의 합의’ ‘있을 수 없는 패배’ ‘아베 정권의 끝’ 등 합의를 반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틀 동안 16만 명 이상이 참여한 야후저팬의 긴급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70% 이상이 “평가하지 않는다”며 부정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정치인과 언론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2013년 “위안부 제도는 필요했다”고 주장해 국제적 비난을 받았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시장은 12월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아베 총리가 정치적 결단을 단행했다’며 높이 평가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강제’라는 단어가 빠졌다는 점을 언급하며 ‘‘군의 관여’라는 문구가 들어갔지만, 그것이 강제연행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현재 많은 국민에게 스며들어 있다’며 그 나름의 해석을 덧붙였다.
    여당에서 가장 우익적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정무조사회장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공산당, 민주당 등 야당도 모두 환영 성명을 냈다. 우익 성향의 하라다 요시아키(原田義昭) 자민당 의원이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한 정도였다.
    보수성향의 ‘요미우리신문’과 우익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사설에서 ‘한국 측이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화살을 한국에게 돌렸다. 일부 기사에서 일본 정부에 아쉬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비판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아베 총리가 결단을 내린 배경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오지만 확실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전보장 측면에서 필요했다는 것이다. 사실 자민당 일각에는 그동안 ‘한국은 내버려두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정상회담을 하려 해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며 응하지 않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 일본이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방해한다는 인식에서였다. 경제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에 의지하는 측면이 더 크기 때문에 아쉬우면 한국이 다가올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문제는 미국이었다. 아시아 전략으로 ‘재균형(Rebalance)’을 표방한 미국은 동맹 강화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가운데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간 마찰을 심각히 우려해왔다. 과거사 이슈를 상징하는 위안부 문제의 조기 해결을 일본에 강하게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만큼이나 중요한 합의’라며 반색했다.


    “안보환경 개선, 국익에 부합”

    한편 아베 총리에게도 한일 간 안보 협력 복원은 중국 및 북한 견제 차원에서 필요했다. 아베 총리가 합의 직후 박 대통령과 통화에서 “안보 등 여러 분야의 협력을 강화해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다. 우리나라(일본)로서는 안보 협력을 중시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싶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일부 극우 인사를 제외한 보수 우익 진영의 분위기가 차분한 것도 ‘이번 합의가 결국 일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산케이신문이 사설에서 ‘동아시아 안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일관계 개선은 한미일의 (안보) 틀을 작동하게 한다. 일본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 명백하다’고 쓴 것이 이를 대변한다.
    일본은 3월부터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 2015년 9월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한 새 안보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동맹국이 공격받으면 개입할 수 있고, 일본 주변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후방 지원을 할 수 있게 된다. 새 안보법의 초점은 중국과 북한에 맞춰져 있다. 최근 일본이 호주, 인도, 동남아 등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에 비해 한일 간 안보 협력은 공백에 가까운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 결과 한미일 공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커졌고, 그사이 중국은 눈에 띄게 한국에 접근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과 한국의 매개체가 된 것 역시 안중근 의사 기념관 건립 등 과거사 사안이었다.
    이제 위안부 문제가 합의에 도달한 만큼 일본은 ‘한중’ 대 ‘일본’의 역사 대립 구도가 ‘한일’ 대 ‘중국’의 안보 대립 구도로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국이 안정되는 대로 그동안 요구해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및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 카드를 다시 꺼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도 조만간 한미일 안보 협력을 구체화하는 제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했다 ‘밀실처리’ 논란이 일었던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안보 협력 제의를 덥석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될 경우 중국이 반발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도 고민이다.
    이제 공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일본에서는 이번 합의를 두고 ‘아베 총리의 외교적 승리’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이 이번 합의를 ‘박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로 만들 수 있을까. 앞으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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