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9

2015.12.30

정부는 ‘나 몰라’, 책임은 핑퐁

97년 유가자유화 이후 가격 조정 권한 없어…전국 주유소 면세유 판매가 공개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12-29 13: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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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나 몰라’, 책임은 핑퐁

    농협은 면세유 판매가격을 일반유보다 높게 책정해 농민들로부터 폭리를 취해왔다. 동아일보

    농협이 다년간 면세유 판매가격을 일반유보다 높게 책정해 농민들로부터 폭리를 취할 수 있던 데는 정부의 방조가 있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최규성 의원은 2015년 10월 열린 농협중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농협이 일반인에게는 ℓ당 60~70원 유통마진을 남기면서 농민에게는 170~270원 폭리를 취해왔다”고 고발했다. 최 의원은 “면세유제도를 책임지고 있는 농식품부, 일반주유소를 관리·감독하는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면세유 부당이득에 대한 세금신고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국세청, 공정한 거래 여부를 판단하는 공정거래위원회, 면세유를 공급하는 농협중앙회 등 관련 모든 기관을 불러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손 못 대는 면세유가

    2011년 9월 23일 농협중앙회는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현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 석유산업과)에 ‘석유류 가격표시제 등 실시요령’ 제2조 제4호의 ‘정상가격’과 제10호 ‘면세전가격’이 일치해야 하는지 문의했다. 여기서 ‘정상가격’은 석유제품을 판매할 때 가격이고 ‘면세전가격’은 면세유 판매가격에 면세액을 더한 총액을 뜻한다.
    이에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는 2011년 10월 18일 ‘면세유 가격에 대한 질의 회신’을 통해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제3조 규정에 의한 ‘석유류 가격표시제 등 실시요령’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고정 가격표시판에 표시하도록 하여 가격정보의 가시성을 높이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석유류 가격표시제 등 실시요령’상 면세유 가격표시판에 면세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가격을 표시하도록 하고, 이에 면세액을 더한 금액(면세전가격)을 함께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도 “면세유 판매 시 가격 결정(적정이윤 등)에 대한 내용은 우리 부 소관이 아닌 관계로 따로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으므로 ‘정상가격’과 ‘면세전가격’은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답변은 농협이 면세유 판매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여서 판매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뜻처럼 들린다. 실제로 법적, 제도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산업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당시 관련 공문에 대해 “면세유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는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고, 면세유제도 운영과 관리는 농식품부와 농협에서 담당한다. 가격표시에 대한 부분은 산업부가 관리한다. 1997년 유가자유화 정책 실시 이후 정부에서 유가를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주유소 사정에 맞춰 팔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시 공문에서는 면세유 가격뿐 아니라 모든 유가 결정에 대해 산업부 소관이 아니라고 답한 것이다. 법과 고시를 봐도 가격을 표시하라는 내용만 있고, 얼마로 정해야 한다는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반 과세유 판매가격은 한국석유공사가 운영 중인 ‘유가정보 서비스 오피넷(www.opinet.co.kr)’에서 확인이 가능했으나, 면세유 판매가격은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없어 농민들이 면세유를 구매할 때 불편을 겪어왔다. 산업부는 2015년 11월 20일 면세유 가격표시판에 면세금액을 추가로 표기토록 하는 내용의 ‘석유류 가격표시제 등 실시요령 개정안’을 내놨다. 우선적으로 정보 공개에 동의한 농협주유소(658개소)와 일반주유소(480개소)의 면세유 판매가격이 공개됐고, 나머지 주유소(4544개소)의 면세유 판매가격 공개를 위해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해 2016년 상반기 중 시행할 계획이다.
    산업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과세유는 일반적으로 차량이 주유소에 방문해 구매하지만, 면세유는 배달 판매 구조인 경우가 많아 과세유보다 가격이 좀 더 높았다. 하지만 농식품부와 국회 쪽에서 면세유 유통 과정을 좀 더 투명하게 하는 데 협조해달라는 요청이 왔고, 이에 시장에서의 자연스러운 경쟁을 통해 가격이 합리적으로 형성되도록 면세유 가격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조세특례제한법 등 관련 법령을 운용하고 유종별 연간한도량 결정, 면세유 대상 농업기계 선정 등을 담당하지만 면세유 마진율에 대해서는 간섭할 권한이 없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부가가치세제과 관계자는 “기획재정부는 세법을 만드는 곳이고, 면세유 판매가격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며 “‘농·축산·임·어업용 기자재 및 석유류에 대한 부가가치세 영세율 및 면세 적용 등에 관한 특례규정’에 따르면 농식품부 장관이 면세유류 관리기관(농협)을 감독하게 돼 있다. 농식품부 측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정부는 ‘나 몰라’, 책임은 핑퐁

    2015년 11월부터 농협주유소와 정보 공개에 동의한 일반주유소 1100여 곳의 면세유 판매가격 정보가 인터넷 ‘유가정보 서비스 오피넷’에 공개됐다(위). 2011년 10월 18일 지식경제부 석유산업과에서 농협중앙회에 회신한 공문.


    법은 어기지 않았지만…

    관련 특례규정에 따르면 농식품부 장관과 산림청장은 면세유가 적정하게 공급되도록 농어민 등과 석유 판매업자에 대한 조사·단속 및 면세유류 관리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면세유류가 적정하게 공급되도록 농업인, 석유 판매사업자, 면세유류 관리기관 등에 대한 조사, 단속, 관리·감독 등의 사후관리 업무 일부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에게 대행하게 할 수 있다. 현재 농업용 면세유 판매업자 지정 권한은 지역 단위농협 측이 갖고 있다. 농식품부 농기자재정책팀 관계자는 “면세유는 농식품부와 산업부에서 관리한다. 유류는 산업부, 면세유 관리 기관은 관련법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나 단위농협인데 이를 농식품부에서 관리·감독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관련 특례법에 따라 유류를 농협에서 파는 것뿐인데 그걸 ‘왜 비싸게 팔았느냐’고 농식품부에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산업부에서 국정감사 이후 ‘석유류 가격표시제 등 실시요령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전국 농협주유소별 면세유 판매 현황’에 따르면, 2014년 면세휘발유 판매가와 매입가 차이가 521원으로 가장 컸던 경남 곤명농협 곤양주유소의 2014년 면세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1988원이었으나, 오피넷에서 면세유 가격 정보가 공개된 2015년 현재 면세휘발유 가격은 600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곤명농협 관계자는 “국회에서 면세유 마진율을 낮추라고 해서 바꾼 것으로 안다. 단가는 주유소에서 기안해 올리니 상세한 내용은 해당 주유소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해당 주유소 관계자는 관련 내용에 대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면세유 가격 공개에 대해 “가격이 공개되면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농협주유소는 시중의 일반주유소와 달리 구조적으로 경직돼 있고, 소비자인 농민이 선택할 수 있는 판매자 폭도 다양하지 않다. 농협의 면세유 가격 책정이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농민과의 사이에서 농협이 갖는 갑을관계가 있으니 결국 농민단체가 면세 폭만큼 가격을 낮춰달라고 조직적으로 협상하고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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