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9

2015.12.30

잊힌 끝나지 않은 MERS

의심환자 3명 추가 발생…“중동에서 발병하는 한 완전 종식 없다”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12-29 1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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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힌 끝나지 않은 MERS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2015년 11월까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환자가 이곳에 입원해 있었다. 조영철 기자

    “2015년 8월부터 11월까지 매월 10여 명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환자가 입원했습니다. 메르스가 종식됐다고요? 중동국가에서 종식되지 않는 한 한국에서 완전 종식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인천의료원) 원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인천의료원은 인천국제공항과 인접해 있어 공항검역소에서 메르스 의심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중동지역에서 온 입국자의 체온이 37.5도 이상이면 곧바로 인천의료원으로 옮겨진다. 환자 1명이 2박3일간 입원하기 때문에 2015년 11월까지 한 달 내내 의심환자가 드나든 셈이다.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도 8~11월 공항 또는 보건소를 통해 총 19명의 메르스 의심환자가 입원했다. 7월 27일 자가격리자가 일시적으로 전원 해제되면서 ‘메르스 전염이 끝났다’는 분위기였지만, 이후에도 의심환자는 꾸준히 발생해왔다. 12월 23일 0시 현재도 중동지역에서 온 의심환자 3명과 신규 능동감시자 86명이 있다.

    메르스 지침? 잊은 지 오래

    보건복지부는 2015년 12월 1일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관심’으로 하향 조정했다. 5월 20일 첫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하기 전 단계로 돌아간 것이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의 ‘메르스 환자 일일현황’은 5월 26일 시작해 10월 2일 멈췄다. 80번째 의심환자 A씨가 음성 판정을 받은 다음 날이었다. 하지만 A씨는 10월 12일 다시 양성 판정을 받았고 11월 25일 끝내 숨을 거뒀다. 보건복지부는 12월 23일 낸 보도자료에서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라 마지막 확진환자가 사망한 날부터 28일이 되는 2015년 12월 23일 자정 메르스 상황이 종료된다’고 발표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 메르스 종식을 선언’이라고 보도했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종식 선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종식은 재발 가능성이 없다는 뜻으로 상황 종료와는 의미가 다르다”며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국내 첫 확진환자로부터 메르스가 감염될 수 있는 상황이 종료됐다는 것이다. WHO 기준에 따라 객관적인 팩트(사실)를 국민에게 전달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메르스 재발 가능성은 지금도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김윤 서울대 의과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대한의학회 기획조정이사)는 “보건복지부의 방역대책 계획을 보면 1, 2차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이 빠져 있다”며 “정부가 중·장기적인 방역체계를 세우려면 1, 2차 의료기관에서의 감염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1차 의료기관은 보유 병상 수 30인 미만으로 일반 동네의원이 해당된다. 2차 의료기관은 30인 이상 병상을 갖춘 병원이고, 3차 의료기관은 모든 진료과목 전문의와 500인 이상 규모의 병상을 보유한 대학병원 등 대형종합병원을 뜻한다. 김 교수는 “메르스 사태 때 1, 2차 의료기관에서 바이러스를 전파한 환자가 많았는데 정부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전염병 비상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전국에 최소 70~80개의 감염병전문센터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는 서울에 4개, 인천·영남권·호남권에 1개씩 총 7개 감염병전문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특히 동네의원이 메르스에 무방비 상태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적잖다. 서울 강남구에서 내과의원을 운영하는 이모(61·여) 씨는 “메르스 환자가 내원한다 해도 감염을 방지할 최소한의 도구조차 없다. 값비싼 방호복 구매나 격리시설 확충은 동네의원들에겐 꿈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한 병원에서 가정의학과를 진료하는 유모(54) 씨는 “요즘은 환자에게 기침 증상이 있으면 메르스를 의심하지 않고 ‘동절기 유행성 감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의료계 전반적으로 메르스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진 분위기라 2015년 6월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중소병원 메르스 대응 지침’은 안 읽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법령만 정비했다는 지적도 있다. 2015년 9월 1일 발표한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에 구체적인 예산도 없이 공약만 남발돼 있다는 것이다. 개편방안의 핵심은 2020년까지 음압병실을 전국 1500개로 확충하고 역학조사관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잊힌 끝나지 않은 MERS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격리병동. 총 7개 병실이 있다. 조영철 기자

    예산 없는데 인력 확보부터

    엄중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정책이사)는 “정부는 감염 방지 인프라 확충 및 전문인력 확보를 약속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예산이 배정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감염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경로는 병원에서 병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막기 위한 시설은 일부 대형병원과 공공의료원을 제외하면 전혀 구축이 안 돼 있다”며 “예산과 재원이 마련되지 않으면 제2 전염병 비상사태가 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계획은 ‘일단 전문가 수를 늘려놓는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 30명과 공항검역관 15명을 최대한 빨리 증원할 예정”이라며 “역학조사관 30명은 모두 정규직인 공무원 신분으로 채용할 예정이다. 아직 세부적인 예산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최대한 인건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 전문가들은 “방역을 위해선 지역사회·병원·정부 간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 교수는 “메르스가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전염병에 대해 안심할 때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재난의료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질병 위기는 또다시 닥칠 것”이라며 “질병관리본부에서 2016년부터 운영 예정인 24시 ‘긴급상황실(EOC)’이 제구실을 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는 메르스 재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심환자를 바로 신고, 격리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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