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9

2015.12.30

수도권 새누리, 너 떨고 있니?

안철수 탈당 불똥, 등 떠밀기 험지출마로 잠재울 수 있을까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5-12-29 11: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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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 새누리, 너 떨고 있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015년 12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동아일보

    잘나간다 생각했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문재인 대표도 잘 버티는 중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내년 총선은 압승이 확실했다. 180석을 넘어 200석까지 노려볼 만했다. 그런데 새정연 안철수 의원이 탈당했다. 당에 남아 문 대표에게 흠집만 내길 바랐는데, 덜컥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안철수 신당이 새정연 지지율을 5~10%p만 가져간다면 야권표 분산으로 어부지리를 얻을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200석 석권 가능성도 그만큼 더 높아졌다. 잇따른 호재에 내심 표정 관리가 힘들 지경이었다. 일부 중도보수 성향의 당원이 동요할지 모르지만, 그 또한 결정적이지 않을 것으로 봤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이런 초기 판단은 일주일 만에 빗나가기 시작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에 대한 지지율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때문이다.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에 대한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5~19% 선을 오간다. 이 정도면 새정연에게는 이미 충분히 위협적이고 새누리당으로서도 더는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임신 계획을 밝힌 상태에서 이 정도이니 출산 즈음이면 지지율은 배가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새정연을 훌쩍 뒤로 따돌린 상태에서 새누리당을 능가하려 들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여권표에 변동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은 5%p 정도가 안철수 신당 지지로 돌아설 조짐이 보이지만, 안철수 신당 창당 즈음에는 이탈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자칫 3자 구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안철수 신당이 약진해 만약 새누리당 30%, 안철수 신당 40%, 새정연 30%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제1당 자리를 안철수 신당에 내줄지도 모른다.

    문재인은 살리고 안철수는 죽여라

    뭔가 대응이 필요해졌다. 대응전략은 간단하다. 문재인은 살리고 안철수는 죽여라! 안철수 신당의 창당을 최대한 막아보고, 이것이 힘들면 최대한 깎아내리는 전략이다. 반면 새정연 문재인 대표는 적당히 살려 2016년 총선의 제물로 삼아야 한다. 새누리당 지지층에 균열을 초래할 중도보수 성향의 안 의원보다 새누리당 지지층의 단결을 불러올 진보 성향의 문 대표를 상대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3자 구도라 하더라도 새누리당 40%, 새정연 30%, 안철수 신당 30% 선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면 여전히 압승이 가능하다. 이마저도 먹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천전략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일여이야(一與二野) 구도에서 야권표 분산으로 어부지리를 얻는 전략을 3자 구도에서 자력으로 당선하는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50%, 새정연 30%, 안철수 신당 20% 구도를 만드는 전략이다.
    이 경우 관건은 수도권이다. 수도권은 5%p 박빙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최대 접전지다. 여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 필요성이 높아졌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거물급 차출이다.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명망가를 투입해 야당 후보들을 압도하는 전략이다. 전통적으로 쓰던 방법이고 그나마 유효한 방법이다. 그래서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 나온 대안이 ‘험지출마론’이다. 벌써 김무성 대표가 부산 해운대에서 출마하려던 안대희 전 대법관과 서울 종로구에서 출마하려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만나 설득에 나섰고, 두 사람은 험지출마를 수용했다.
    그러나 험지출마론만으로 안철수 신당 바람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험지출마론 또는 중진차출론 따위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과거처럼 긍정적이지 않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거물급 정치인의 지역 충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역 유권자보다 공천을 준 사람에게 더 충성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다음 선거에는 또 다른 거물급 정치인이 낙하산을 타고 나타난다. 공수부대 연습장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떠돌이를 파견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그 결과 이른바 험지는 최근 중진 정치인의 무덤이 되고 있다.

    ‘진박’ 공천 요구에 ‘진국’ 씨 마를 판

    수도권 새누리, 너 떨고 있니?

    새누리당으로부터 험지출마를 요구받고 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위)과 안대희 전 대법관. 동아일보

    그나마 솔선수범형 험지출마는 수용할 만한데, 등 떠밀기형 험지출마는 여간 꼴불견이 아니다. 등 떠밀기형 험지출마에 저항해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택해 내분만 야기한 경우도 없지 않다. 최근 김무성 대표가 추진 중인 험지출마는 전형적인 등 떠밀기형일 뿐 아니라, 정작 본인에 대한 험지출마 요구는 단칼에 잘라버렸다. 그런데 안대희 전 대법관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험지출마에는 적극적이다. 이런 등 떠밀기형은 ‘니가 가라 하와이’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대해 해당 지역 유권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험지출마를 명분으로 한 차출은 자칫 지역구 2개를 잃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차출 당한 거물급 정치인이 애초 출마하려 했던 지역의 유권자로서는 후보자를 강탈당하고 쭉정이만 배정받은 모멸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험지출마론을 능가할 대안은 없을까. 있다. 정공법이다. 지역일꾼론 말이다. 새누리당은 2015년 4·29 재·보궐선거 당시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서도 4곳 가운데 3곳에서 승리했다. 그때도 중진차출론이 거셌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는 이것을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승리했다. 이런 성공 사례를 토대로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전면 도입하고자 했지만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대로 접은 상태다. 전략공천도 절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우선추천 또는 단수공천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사실상 포기했다. 이제는 김 대표 스스로 이 후보자, 저 후보자 만나 험지출마 요구를 하고 돌아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진박’(진짜 친박계) 공천 요구도 거세다. 각지에 출몰하는 진박들의 진상에 ‘진국’(진짜 국민파)은 씨가 마를 지경이다. 국민은 이제 진국, 곧 지역일꾼을 원한다.
    이런 국민적 요구를 외면하면 할수록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은 높아져만 갈 것이다. 그 결과 2016년 총선이 새누리당 대 안철수 신당이라는 양자 구도로 치러질지도 모른다. 새누리당 40%, 안철수 신당 40%, 새정연 20% 구도다. 새누리당 친박계와 새정연 친노(친노무현)계가 악수를 계속 두는 속에 안철수 신당은 혁신공천에 성공하는 아주 예외적 상황이긴 하다. 정치권에서는 아주 가끔 그런 이변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미 변동성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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