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경의 ON THE STAGE

'아름다운 청년’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음악극 ‘태일’

  •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19-04-04 1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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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목소리 프로젝트]

    [사진 제공 · 목소리 프로젝트]

    서울 종로5가 동대문종합시장과 을지로6가 평화시장을 연결하는 청계천 버들다리(전태일다리)에는 한 청년의 상반신 동상이 세워져 있다. 축 처진 어깨, 구겨진 옷, 주름진 손이 인상적인 동상의 주인공은 고(故) 전태일(1948~1970)이다. 1970년 11월 13일 그는 평화시장에서 몸에 불을 붙이며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뒤 쓰러졌다. 올해로 3년째 공연되고 있는 음악극 ‘태일’(장우성 작·박소영 연출)은 인간 전태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탓에 서울로 식모살이를 떠난 어머니를 찾아 태일(강기둥·박정원·최성원 분)은 구두닦이, 신문팔이, 삼발이 장사, 껌팔이, 우산 장사, 꽁초 장사 등을 하며 살아남고자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간혹 교복 입은 학생들과 마주치면 태일은 학업에 대한 열망과 목마름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도 너무 버거웠다. 학교는 언감생심, 꿀 수조차 없는 꿈이었다. 

    그리고 17세인 1965년 하루 하숙비가 120원인 시절 일당 50원을 받고 평화시장 삼일사 견습공으로 취직한다. 부족한 돈을 벌충하려고 오전에는 구두를 닦고 저녁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야만 하는 고달픈 하루였지만, 그는 기술을 배워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청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안정된 직장이라 생각했던 평화시장의 환경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1962년 지어진 평화시장의 현대식 콘크리트 3층 건물은 겉모습만 번지르르할 뿐이었다. 시장 내부는 영세하고 근로환경은 열악했다. 노동자들은 터무니없는 임금에도 좁디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다락방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질 수밖에 없던 어린 여공들의 모습에 충격받은 그는 불공정한 차별, 멸시, 혐오, 착취의 세상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극한의 상황을 해결하려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연대하며 대안을 제시했지만 근로조건은 개선될 기미조차 없었다. 외면하고 침묵하는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자, 그는 꿈과 열정을 꽃피우려 했던 평화시장에서 녹아내리기로 결단한다. 

    주목받는 신예 작가 장우성이 그리는 아름다운 영혼 전태일의 순수하고 영롱한 메아리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음악팀(권남훈·김보민)의 기타와 건반 라이브 연주는 청년 전태일의 목소리를 더욱 절실하게 와 닿게 만든다. 장 작가는 청년 전태일을 경직된 노동운동가로 잡아두지 않는다. 반세기 전 이 땅의 현실에 대항했던 스물두 살 청년이 꾼 꿈은 건강하고 진솔하다. 비정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음악극으로 승화된 전태일을 보며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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