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80

2019.03.15

원포인트 시사 레슨

경수로가 ‘맥거핀’이라면 평화선언은 ‘라멜라’

영화이론으로 바라본 북핵 위기 해법들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9-03-21 11: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하노이 회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하노이 회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때문에 유명해진 영화용어가 있다. ‘맥거핀(Macguffin)’이다. 히치콕이 1939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강연에서 이 얘기를 처음 꺼냈고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쓴 ‘히치콕과의 대화’(1966)에 재등장하면서 유명해진 용어다. 

    “그건 아마도 스코틀랜드식 이름일 텐데 기차를 탄 두 남자의 대화에서 시작합니다. 한 남자가 ‘선반 위의 저 꾸러미는 뭐죠?’라고 묻자 다른 남자가 ‘아, 맥거핀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처음 남자가 ‘맥거핀이 뭔데요?’라고 다시 묻자 다른 남자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사자를 잡을 때 쓰는 장치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처음 남자가 ‘스코틀랜드 고지대에는 사자가 없지 않나요?’라고 의문을 제기하자 다른 남자가 답합니다. ‘아, 그렇다면 맥거핀은 없는 거네요.’ 따라서 맥거핀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언어유희 같으나, 뭔가 중요한 것 같다는 암시를 주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것이 맥거핀이라는 설명이다. 그 이름 자체는 영국 극작가 앵거스 맥페일이 히치콕의 영화 ‘해외 특파원’(1940)에서 암호명으로 처음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거기에 뚜렷한 미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히치콕이라고 봐야 한다.

    복합환영물로서 맥거핀과 라멜라

    맥거핀이 등장한 영화들. ‘싸이코’에서 여주인공 마리오(재닛 리 분)가 회사 공금을 숨겨둔 돈가방(왼쪽)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주인공 로저 손힐(케리 그랜트 분)이 전보를 치려고 손을 든 순간 그 이름이 불려 동일인이란 오해를 사게 된 ‘조지 캐플란’이 그에 해당한다. [IMDB]

    맥거핀이 등장한 영화들. ‘싸이코’에서 여주인공 마리오(재닛 리 분)가 회사 공금을 숨겨둔 돈가방(왼쪽)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주인공 로저 손힐(케리 그랜트 분)이 전보를 치려고 손을 든 순간 그 이름이 불려 동일인이란 오해를 사게 된 ‘조지 캐플란’이 그에 해당한다. [IMDB]

    그의 영화 ‘싸이코’(1960)에서 극 초반에 등장하는 돈 가방이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에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동일인으로 오해받아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계속 쫓기게 만든, 실존하지 않는 첩보원 ‘조지 캐플란’ 등이 맥거핀에 해당한다. 한국 영화 ‘곡성’(2016)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 역시 큰 의미 없이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켰다는 점에서 맥거핀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지만 효과는 정반대인 실체를 지칭하는 용어가 있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이름 붙인 ‘라멜라(Lamella)’다. 맥거핀이 ‘존재하긴 하지만 텅 빈 무엇’이라면 라멜라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고집스럽게 존속하는 것’이다. 



    라멜라에 해당하는 영화 속 존재들. ‘에일리언’ 시리즈의 괴기한 우주생명체 에일리언(왼쪽)과 영화 ‘웜 바디스’ 속 좀비들. [IMDB]

    라멜라에 해당하는 영화 속 존재들. ‘에일리언’ 시리즈의 괴기한 우주생명체 에일리언(왼쪽)과 영화 ‘웜 바디스’ 속 좀비들. [IMDB]

    라캉의 개념 설명보다 영화 속 라멜라를 보면 이해가 쉽다. 영화 ‘에일리언’의 괴기한 우주생명체 에일리언이나 영화를 통해 언데드의 대명사가 된 좀비를 떠올리면 된다. 환상이 육화(肉化)한 에일리언과 좀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환상의 잔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현실에선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간주할 때가 많다. 반대로 맥거핀은 현실에 실재하지만 그 정체가 드러난 순간 철저히 잊히는 존재다. 그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중요하게 취급된다. 

    정신분석학에선 이런 맥거핀과 라멜라를 ‘복합환영물’이라 부른다. 상징과 환상이 결합된 것이 복합환영물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의 현실이 3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는 라캉의 이론을 살짝 경유할 필요가 있다. 

    이성이 지배하는 상징계, 환상이 작동하는 상상계, 무의식적 진실이 출몰하는 실재계다. 상징계는 사람과 사람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언어가 지배하고, 상상계는 개별적 인간의 머릿속 환상이 지배한다. 

    그럼 실재계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일까. 언어와 상징으로도 포착할 수 없고 환상과 상상이 두려움으로 작동을 멈추는 그 무엇이다. 이성과 환상의 배후를 횡단하면서 아주 가끔 섬뜩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결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게 곧 실재다. 

    그럼 복합환영물은 무엇일까. 상징계와 상상계가 만나는 접점에 존재하는 것, 하지만 결코 실재는 아닌 것이다. 존재와 비존재, 논리와 환상이 결합돼 실재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흉내 내는 것을 말한다. 실재인 것처럼 위장된 환상이다. 그래서 실재의 그림자라고도 부를 수 있다. 바로 맥거핀과 라멜라다.

    북핵 위기에 작동하는 복합환영물

    1997년 8월 19일 북한 함경남도 신포에서 열린 경수로 착공식. [동아DB]

    1997년 8월 19일 북한 함경남도 신포에서 열린 경수로 착공식. [동아DB]

    1993~94년 1차 북핵 위기 때 그 해법으로 경수로가 등장했다. 당시 수많은 전문가와 언론에선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핵물질을 대량생산하는 북한의 중수로 원전을 경수로 원전으로 대체해주면 북핵 위기를 종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에 사는 많은 사람도 이를 철석같이 믿거나 아니면 짐짓 믿는 척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장 의지를 경수로 설치 요구로 위장했다. 한국과 미국은 실제 경수로를 지어줄 의지도, 관련 비용을 충당할 의지도 없었지만 당시 위기상황을 후대로 지연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북핵 동결과 경수로 2기 건설을 맞교환했다. 

    하지만 10년이 채 못 돼 경수로가 맥거핀이란 게 드러났다. 빌미는 북한이 제공했다. 2002년 핵동결 약속을 깨고 고농축우라늄을 개발 중임이 드러난 것. 그 여파로 2006년 6월 공식 중단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진행한 경수로 공정률은 34.54%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1기에 국한됐다. 결국 경수로사업은 발등의 불로 떨어진 북핵 위기를 미래 문제로 지연시키고자 ‘북핵이란 이름의 사자를 잡는 도구’로 위장된 맥거핀이었다. 그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 경수로가 북핵 위기 해소의 열쇠가 되리라는 모든 기대가 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북핵 위기관리에 주력했다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북핵 위기종식을 약속했다. 하지만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국가가 됐다. 역사 속 무수한 경제봉쇄정책처럼 대북제재 역시 한계를 드러냈고 2018년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의 위기감이 치솟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계승자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다시 위기관리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는 그것이 위기관리가 아니라 위기종식이라며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선언 및 평화선언을 맞바꾸자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들 선언은 맥거핀과 다르다. 맥거핀이 실재하지만 쓸모없는 복합환영물이라면, 선언은 실재하지 않지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라멜라에 가까운 복합환영물이다. 

    문제는 라멜라는 허구성에 기초한 환영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믿어주느냐에 따라 그 영향력이 좌우된다는 데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뿐 아니라, 남북한과 미국 국민 대다수가 그걸 믿고 지지할 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공염불이 될 수 있다.

    머글도, 몽상가도 아닌 마법사가 필요한 시간

    지난해 6월 12일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선언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종전선언과 평화선언의 라멜라가 위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 2월 27, 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그 복합환영물은 잠시 작동을 멈췄다. 

    북핵 문제 관련 전문가는 대부분 상징계의 존재다. 언어와 규칙의 노예다. 그래서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가들은 상상계에 한 발을 딛고 있다. 남북이 모두 평화를 사랑하는 동질체라는 상상,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부유한 나라가 되기를 열망한다는 상상이다. 

    상징계에 충실한 전문가들은 이런 발상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그들은 현실을 바꿀 능력이 부재한 머글에 불과하다. 반대로 상상계에서만 살아가는 몽상가 역시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 상징과 상상이 결합된 복합환영물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만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 해리 포터를 말하는 게 아니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칼로 잘라낸 알렉산더 대왕이나 달걀을 깨서 세워버린 콜럼버스 같은 이들이다. 

    그런 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이 저글링하는 복합환영물이 실재의 그림자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북핵 위기를 관통하는 실재는 무엇인가. 평화회담이 약속하는 장밋빛 청사진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 너무 무시무시해 사람들이 떠올리기도 싫어하는 ‘섬뜩한 것(the uncanny)’이다. 해리 포터가 흰 올빼미를 통해 전달된 호그와트 마법학교 초청장에 응한 이유를 기억하는가.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아니면 마법사로서 본능 때문에? 바로 볼드모트라는 무시무시한 실재가 출몰할 시간이 됐음을 해리 포터가 육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