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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비운의 한국 술, 그 이름은 淸酒

전통 방식대로 만든 청주, 주세법상 청주라 못 해

비운의 한국 술, 그 이름은 淸酒

강원 원주 ‘모월’, 경기 여주 ‘순향주’, 인천 송도 ‘삼양춘’, 충북 청주 풍정사계 ‘춘’, 강원 홍천 ‘동몽’, 전남 함평 ‘자희향’, 경북 문경 ‘문희주’(왼쪽부터). 현재 주세법상 약주로 분류되지만 전통 누룩을 사용한 진짜 우리 청주다.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강원 원주 ‘모월’, 경기 여주 ‘순향주’, 인천 송도 ‘삼양춘’, 충북 청주 풍정사계 ‘춘’, 강원 홍천 ‘동몽’, 전남 함평 ‘자희향’, 경북 문경 ‘문희주’(왼쪽부터). 현재 주세법상 약주로 분류되지만 전통 누룩을 사용한 진짜 우리 청주다.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우리가 마시는 ‘한국 술’ 소주, 탁주, 청주 가운데 가장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주종은 청주(淸酒)다. 탁주는 농사일을 하며 마시는 술, 소주는 서민의 애환을 담은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에 비해 이름 그대로 ‘맑은 술’ 청주는 주로 차례와 제사에 사용되며 귀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청주는 실제로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에서는 술을 총 세 번 올리는데 동동주, 탁주, 청주 순이다. 종묘제례를 관장하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 따르면 청주는 한 항아리에서 나오는 술 중 가장 귀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가 그러한 청주가 우리나라 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청주를 만드는 과정은 막걸리와 비슷하다. 지에밥과 물, 그리고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면 알코올 도수 15도 전후의 술 원액이 만들어진다. 막걸리를 만들려면 여기에 물을 넣어 알코올 도수를 6도 전후로 맞추면 된다. 청주를 만들 때는 맑은 부분을 따로따로 분리해 숙성시킨다. 제조사마다 다르지만 막걸리는 발효에서 숙성까지 2주가량 걸린다. 청주는 100일 전후다. 즉 막걸리가 짧은 발효·숙성으로 원료의 신선함을 즐기는 술이라면, 청주는 그윽한 숙성의 맛을 즐기는 술인 것이다.


일제가 청주를 일본주로 빼앗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양조장. [사진 제공 · 포천 산사원]

일제강점기 시절의 양조장. [사진 제공 · 포천 산사원]

그런데 청주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있다. 정종(正宗)이다. 정종은 일본식 청주, 사케의 유명 브랜드에서 나왔다. 근대 청주의 역사는 일제 침탈과 함께 시작된다. 일본 자본이 한국에 청주 공장을 세운 것이다. 일제는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고 10년 후 부산에 처음 일본식 양조장의 문을 열었다. 조선인에게 술을 팔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세수 확보 목적이 더 컸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양조장의 한국 진출을 적극 권장했으며, 일본 청주 공장은 뱃길이 좋아 물류가 모이는 부산, 마산, 군산 등에 진출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09년 주세법이 발포되면서 집에서 빚은 가양주(家釀酒)에 대한 신고가 의무화됐다. 1916년 더욱 세분화된 주세령이 발포돼 가양주는 판매하지도, 가업으로 이을 수도 없게 됐다. 동시에 일본은 술을 조선주와 일본주로 나눴다. 탁주와 약주는 조선주, 청주는 일본주로 분류했다. 조선인이 아무리 술을 맑게 만들어도 청주라 부르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청주라는 이름을 일제에 빼앗겼다. 



일제강점기 이른바 조선술인 탁주와 약주를 살펴보면 제대로 된 용기조차 드물었다. 그저 주전자나 나무 항아리에 담아 팔았다. 그 시절 고급술은 유리병에 라벨을 붙인 일본식 청주였다.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마사무네(正宗)’, 우리말로 ‘정종’이었다. 고급 청주는 곧 정종이었고, 이것이 일반명사가 돼 청주를 다른 말로 정종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조선술은 싸구려, 일본술은 고급술이란 인식도 점차 굳어졌다. 

혹자는 일제가 조선술을 산업적으로 발전시키려 주세법과 주세령을 제정해 가양주를 금지시켰다고 본다. 해외 사례를 봐도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한 세수 확보를 목적으로 양조장 체제를 만들고, 그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인 일이 종종 있었다. 문제는 우리 술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다. 


1936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주조사’. 1907년부터 1935년까지 조선 주류업에 관한 공식 기록서다. [사진 제공 · 명욱]

1936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주조사’. 1907년부터 1935년까지 조선 주류업에 관한 공식 기록서다. [사진 제공 · 명욱]

1936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의 기록을 보면 세무국장 이노우에는 이렇게 언급한다. ‘조선주는 매우 간단히 만들어지므로 제조 방법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것이 없었다. 그 근본적인 것을 충분히 정하기 위해 각종 조사를 하여 상당한 방침을 수립해 수행했던 것이다.’ 이는 일제가 조선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무시한 상태에서 주세법과 주세령을 시행했음을 보여준다. 일본 잔재를 지금이라도 정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청주가 사케? 약주는 청주?

일본에서 들여온 쌀 흩임누룩(입국 · 왼쪽). 한국 토종 누룩은 뭉쳐진 형태인 데 반해, 일본 누룩은 뻥튀기처럼 흩어져 있다.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일본에서 들여온 쌀 흩임누룩(입국 · 왼쪽). 한국 토종 누룩은 뭉쳐진 형태인 데 반해, 일본 누룩은 뻥튀기처럼 흩어져 있다.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안타깝지만 지금도 한반도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 청주 제조법으로는 술을 담그기 어렵다. 현행 주세법 시행령을 보자. ‘청주 제조에 있어서 쌀의 합계 중량을 기준으로 하여 누룩을 100분의 1 미만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토종 전통 밀누룩을 1% 미만으로 쓰라는 것으로, 밀누룩을 쓰지 말라는 뜻이나 진배없다. 우리 방식의 누룩을 사용하면 청주라는 이름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그 대신 일본식 청주(日本酒)에 주로 쓰이는 ‘쌀 흩임누룩(입국)’을 사용해야 한다. 

토종 누룩을 사용하면 주세법상 청주가 아닌 ‘약주’로 분류된다. 약재를 넣지 않았고, 약용을 강조하지 않아도 약주라고 해야 한다. 소비자 처지에선 헷갈린다. 아무리 맑고 청아하게 만든 술이라도 청주라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주세법상 청주의 맛은 어떨까. 한국 청주의 정체성을 갖고 있을까. 현재 한국에서 제조되는 최고급 청주는 크게 두 종류다. 롯데주류의 ‘설화’와 경주법주의 ‘초특선’이다. 두 제품 모두 일본식 청주(사케)가 지향하는 도정률(搗精率)을 강조한다. 설화는 제품 라벨에 ‘대음양주(大吟釀酒)’라고 해 도정률이 50%가 넘는다고 밝히고 있다. 도정률이 높을수록 순수한 전분만으로 술을 빚게 돼 잡미가 사라지고 향이 풍부해진다. 일본에서는 도정률이 50% 이상인 사케를 ‘대음양주’(일본어로는 ‘다이긴죠슈’)라고 한다. 일본은 과거 도정률에 따른 사케 등급을 특선, 상선, 초특선으로 나눴는데 경주법주는 여기서 제품명 초특선을 따왔다. 결국 이들 술은 여러모로 우리 전통 청주와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유명 사케 업체 ‘기쿠마사무네’의 사케. ‘정종(正宗)’을 제품명으로 사용한다(오른쪽).
해방 전후의 주류 라벨. 대부분 일본식 청주나 소주의 라벨이다. [사진 제공 · 명욱]

일본 유명 사케 업체 ‘기쿠마사무네’의 사케. ‘정종(正宗)’을 제품명으로 사용한다(오른쪽). 해방 전후의 주류 라벨. 대부분 일본식 청주나 소주의 라벨이다. [사진 제공 · 명욱]

이 두 제품의 맛은 일본 고급 사케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부드러운 목 넘김, 풍부한 향, 긴 후미(厚味)와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맛을 자랑한다. 일본 청주 기술이 들어오고 1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주조 기술도 발전했기 때문. 맛으로만 따진다면 수입 사케를 구매하느니 설화나 초특선을 사는 편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는 이 두 제품을 전통주라 생각하고 구매한다. 소비자 처지에서 보자면 한국 전통 방식으로 담근 청주와 한국에서 생산하는 일본식 청주를 구분할 수 있는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다.


전통 밀누룩 사용을 許하라!

최근 국내 중요 행사에서 만찬주로 쓰이는 술을 보면 앞서 설명한 청주는 거의 선정되지 않고 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만찬주로 쓰인 풍정사계 ‘춘’, 최근 청와대의 설 선물로 선정된 경남 함양 ‘솔송주’, 삼성 회장단의 건배주로 유명한 백련 ‘맑은술’은 모두 약주다. 

약주란 이름도 나쁘지 않다. 약용이라는 의미를 떠나 약과 같이 귀한 술, 우리 몸을 생각한 술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청주가 108번 언급되는 것에 비해 약주는 50여 번에 그친다. 왕실에선 청주가 약주보다 보편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전통 밀누룩을 사용해도 청주란 이름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슬픈 역사 속에서 정체성이 모호해진 한국 청주. 이제는 법률적 정의가 개선돼 정통성을 갖춘 진정한 우리 술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본다.






주간동아 2019.03.01 1178호 (p48~51)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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