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2

2019.01.11

국제

중동 각국의 ‘러브콜’ 받고 있는 시리아

독재자 알아사드, 미군 철수 결정으로 ‘어부지리’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9-01-14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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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 대원들의 모습. [kurdistan24]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 대원들의 모습. [kurdistan24]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는 4000여 년 전부터 중동지역의 수많은 세력과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다마스쿠스는 또 이슬람 최초 제국인 우마이야 왕조(661~750)의 수도였다. 우마이야 왕조는 중동지역은 물론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통치했다. 다마스쿠스에는 십자군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1137~1193)의 동상과 무덤이 있다. 소수민족이던 쿠르드족 출신의 살라딘은 분열됐던 이슬람 세력(아랍, 튀르크, 페르시아, 이집트 등)을 단결시켜 십자군을 격파했다. 

    시리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중동지역에서 지중해,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육상과 해상의 교통 요충지다. 중동지역 한복판에 자리한 시리아는 동쪽으로는 이라크, 서쪽으로는 레바논, 북쪽으로는 터키, 남쪽으로는 요르단과 접하고 있다. 이처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시리아를 차지하려고 중동 각국은 물론, 서구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여왔다. 시리아 영토가 그동안 각종 전쟁의 무대가 돼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2011년 시작된 내전과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소탕하고자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 이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이 시리아에 무장 병력을 파견해 전투를 벌였다. 특히 미국은 2015년 IS 격퇴를 위해 병력 2000여 명을 터키 국경 근처인 시리아 북동부지역에 파견했다. 미군은 이곳에서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와 아랍 동맹군으로 구성된 시리아민주군(SDF)을 지원했다. SDF는 그동안 IS 소탕작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며 시리아 북동부지역을 장악해왔다.

    육상과 해상의 교통 요충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군복을 입은 채 손들어 보이고 있다. [시리안프리프레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군복을 입은 채 손들어 보이고 있다. [시리안프리프레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9일 시리아 주둔 병력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힘의 공백’에 따라 새로운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쿠르드족이 그동안 적대해온 시리아 정부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 이유는 터키가 시리아 국경 안으로 군 병력을 진입시켜 YPG를 공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는 자국에서 분리독립운동을 벌이는 쿠르디스탄노동자당과 YPG가 같은 편이라고 보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은 최근 YPG의 요청에 따라 북동부지역 전략 요충지인 만비즈를 장악했다. YPG는 2016년 미군의 지원을 받아 터키 남부 국경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만비즈에서 IS를 몰아내고 주둔해왔다. 시리아 정부는 자국 영토에 터키군이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고자 YPG의 요청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만비즈를 차지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전투도 하지 않고 잃어버렸던 영토를 되찾게 됐다. 

    알아사드 대통령과 시리아 정부는 미군 철수 결정으로 상당한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실제로 국경을 맞댄 이라크 정부가 지금까지 소원하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IS 소탕작전에 협력할 것을 제의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이라크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라크군이 시리아 영토에서 IS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란 정부도 더욱 적극적으로 시리아 정부와 협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양국은 금융과 은행 분야에서 전면적으로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은 경제협정에 서명했다. 이란 정부는 앞으로 시리아 재건 사업에 참여할 계획이다. 시리아 정부는 내전으로 피폐해진 국가 재건에 향후 15년간 4000억 달러(약 448조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와 함께 시리아 정부를 지원해왔다. 미군이 철수하면 시리아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의중

    아랍에미리트(UAE)가 다마스쿠스 주재 대사관을 재개설하고 국기를 게양했다. [CNN]

    아랍에미리트(UAE)가 다마스쿠스 주재 대사관을 재개설하고 국기를 게양했다. [CNN]

    이슬람 수니파 아랍 국가들도 앞다퉈 시아파 일종인 알라위파의 시리아 정부에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다. 실제로 SDF를 지원해온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해 12월 27일 그동안 폐쇄했던 다마스쿠스 주재 대사관의 문을 7년 만에 다시 열었다. 바레인도 대사관을 재개설했고, 쿠웨이트도 같은 조치를 내릴 계획이다. UAE는 대사관 재개설을 계기로 아랍 국가들과 시리아 정부의 중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UAE의 대사관 재개설은 수니파 종주국이자 아랍 국가의 맏형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의중이 작용했다. 사우디는 미군 철수 이후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해 알아사드 대통령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랍 국가 모임인 아랍연맹(AL·사우디 등 수니파 21개국으로 구성된 지역협력기구)도 시리아의 회원국 자격 복귀를 검토 중이다. 아랍연맹은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이 반정부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다는 이유로 시리아의 회원국 자격을 박탈했다. 사우디의 의도는 시리아를 아랍연맹으로 끌어들여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이란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시리아의 복귀 여부는 3월 튀니지에서 열리는 아랍연맹 전체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아랍연맹이 시리아를 회원국으로 다시 받아들일 경우 알아사드 대통령과 시리아 정부에겐 반정부시위대를 무참히 학살한 만행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 

    사우디는 시리아의 재건 비용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나 이란은 시리아 재건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 국가들은 알아사드 대통령의 독재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시리아의 재건을 지원할 국가는 사우디밖에 없다. 물론 사우디 측에서 재건 비용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이란군의 시리아 완전 철수를 제시할 수도 있다. 

    이렇듯 미군 철수로 중동지역의 국제질서가 당분간 요동칠 것이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 다만 영원한 국가 이익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 파머스턴 자작 헨리 존 템플(1784~1865) 전 영국 총리의 말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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