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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케이팝은 양 날개로 난다

기획사의 시스템과 아티스트로서 자아

케이팝은 양 날개로 난다

방탄소년단(BTS) [사진 제공 · CJ ENM]

방탄소년단(BTS) [사진 제공 · CJ ENM]

2018년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대격변이 일어난 해다. 방탄소년단(BTS)의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빌보드 200) 정복은 한국이 더는 세계 음악시장의 주변부가 아닌 주요 생산기지가 됐음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이 삼분하던 북미 음악시장을 아시아권 회사의 아시아계 인종 아티스트가 아시아권 언어로 정복하는 초유의 일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200 정상에 오른 날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일본 지인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역사를 만들고 있다.’ 맞다. 그들이 만들고자 한 역사에는 한국 대중음악을 ‘내수’에서 ‘수출’ 상품으로 확산하려는 욕망이 포함돼 있었다. 

그 욕망을 실현하고자 1996년 현대식 아이돌그룹의 원조인 H.O.T. 이래 22년간 많은 시도가 있었다. 단순히 해외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선이 아니었다. 기획과 제작 방식의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서였다. 방탄소년단이 그 변화의 최종 단계였음은 물론이다. 

향후 케이팝(K-pop) 시스템은 또 한 번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SM엔터테인먼트의 남자 아이돌 NCT가 그 내면을 엿보게 해준다. 유닛 NCT U로 2016년 데뷔한 이들은 SM의 향후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팀이다. NCT는 ‘한 팀’이 아니라 ‘모듈’처럼 운용된다. 이 팀은 NCT라는 브랜드 아래 NCT 드림, NCT U, NCT 127 등 세부 그룹으로 나뉜다.


케이팝 시스템은 진화 중

NCT [사진 제공 · SM엔터테인먼트]

NCT [사진 제공 · SM엔터테인먼트]

아이돌그룹이 내부에 유닛 단위의 팀을 두는 건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NCT는 그 개념이 다르다. 각 팀은 NCT라는 이름을 공유하지만 모두가 모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유할 뿐 연합활동이 주가 아니다. 한국 팀이 NCT 127이라는 서울 경도(127도)에 토대를 둔 이름을 갖고 있다면 향후 베트남 팀은 하노이 경도에 기초한 NCT 105, 대만 팀은 타이베이 경도에 바탕을 둔 NCT 121로 분화 가능한 것이다. 나이에 따라서는 미성년자들로 구성된 NCT 드림, 나이 제한 없는 NCT U 등으로 나뉜다. 



한국인 멤버의 입대나 외국인 멤버의 탈퇴 등으로 흔들리는 리스크를 없애고 NCT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목표 아래 탄생한 것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NCT 유닛이 세계에서 동시에 공연하거나 방송 출연하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멤버의 일정을 맞추려는 수고도 필요 없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NCT가 존재한다.
 
그렇다. 이것은 프랜차이즈다. 가장 발전한 형태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다. 이미 프로듀싱부터 스카우팅까지 국제적 네트워크를 완성한 SM이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NCT는 ‘Neo Culture Technology’의 약자다. 케이팝 시스템을 세계 도처에 설치해 지역별로 아이돌을 양산하겠다는 야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보이스토리 [사진 제공 · JYP엔터테인먼트]

보이스토리 [사진 제공 · JYP엔터테인먼트]

SM만이 아니다. 2018년 9월 JYP엔터테인먼트는 중국에 보이스토리라는 보이그룹을 데뷔시켰다. 박진영이 현지에서 발굴한 13세 안팎의 소년들로 구성된 이 그룹은 데뷔와 동시에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박진영이 작사, 작곡한 노래 ‘Enough’로 9월 정식 데뷔한 보이스토리는 이후 QQ뮤직 및 중국 최대 MV(뮤직비디오) 사이트 인위에타이의 종합 MV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샤오미의 스마트워치 광고 모델로도 발탁됐다. 

JYP가 기획과 제작을 담당했지만 비용은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텐센트가 전액 투자했다. 중국 자본과 한국 기획력이 합작한 것이다. 중화권시장을 겨냥해 중국인 멤버를 영입하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전략이다. 한국의 기획력과 중국 현지 자본의 ‘꽌시(關係)’를 활용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리스크는 줄어든다. 슈퍼주니어, EXO의 중국인 멤버들이 성공한 뒤 팀을 탈퇴해 현지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여파로 발령된 한한령(限韓令) 같은 피해가 보이스토리에게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완다그룹이 할리우드 ‘레전더리 픽처스’(현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자국의 문화장벽을 뛰어넘은 것처럼 중국 자본이 한국 기획사를 파트너 삼아 새로운 케이팝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다. 


코드브이(CODE-V) (왼쪽), 치푸 [출처·싱글 앨범 ‘두근거려’ 재킷사진, 뉴스1]

코드브이(CODE-V) (왼쪽), 치푸 [출처·싱글 앨범 ‘두근거려’ 재킷사진, 뉴스1]

그리고 또 하나의 모델이 있다. 마마무의 소속사인 RBW다. 이 회사의 수익에서 30%가량을 차지하는 건 해외 콘텐츠 제작이다. 해외 자본의 의뢰를 받아 현지 아이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중국에 5팀, 일본에 3팀, 인도네시아에 2팀, 베트남에 5팀이 있다. 특히 베트남의 켈빈 칸과 치푸, 일본의 코드브이(CODE-V) 등은 현지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SM과 JYP, 그리고 RBW 이 세 회사의 사례는 결이 다르다. SM이 자사 아이돌 자체를 프랜차이즈화한다면 JYP와 RBW는 기획부터 제작, 활동 전반까지 책임진다. 공통점은 20년 가까이 축적된 아이돌 시스템과 노하우 자체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한다는 것이다. 멤버라는 ‘개인’이 아니라 기획과 제작이라는 ‘시스템’이 상품이 되는 것이다.


시스템이냐 아티스트냐

이는 다시 한 번 아이돌산업의 본질을 말해준다. 아이돌산업이란 결국 ‘아티스트’ 중심의 창작이 아니라 ‘기획사’ 중심의 제조업에 가깝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국적은 탈색된다. 최종적으로 남는 건 콘텐츠 자본이다. 지금 케이팝이 나아가는 하나의 길이다. 

또 하나의 길이 있다. 방탄소년단이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기존 케이팝 시스템에 몇 가지가 더해지고 빠진 결과다. 그들은 처음부터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 활동했다.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썼다. 보아가 그랬듯, 스스로 아티스트로서 포지셔닝했다. 빅뱅 같은 ‘아티스트형 아이돌’이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빠르고 풍부한 콘텐츠로 ‘BTS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런 전략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아닌 ‘방탄소년단’이 전면에 드러나는 효과를 불렀다. 소녀시대와 동방신기 등이 서구에 알려진 결정적 계기가 ‘SM타운 콘서트’였음을 떠올려보자. 또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촉발된 계기가 많은 팔로어를 갖고 있던, 미국 YG팬의 트위트에서 시작됐다는 사실도 떠올려보자. 

방탄소년단이 그런 기획사의 배경 없이 독자적 힘으로 빌보드를 제패한 힘은 아이돌, 또는 틴 팝보다 아티스트를 우대하는 서구 음악시장의 경향에서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가장 크고 강력한 국제적 시스템을 구축한 SM의 아이돌보다 방탄소년단이 먼저 ‘대업’을 이뤘다. 그들은 또한 히트곡 ‘IDOL’에서 탈춤을 응용한 안무를 선보이며 지역성을 강조한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노래한다. 아티스트의 속성을 좀 더 강화한 것이다. SM의 시스템, 방탄소년단의 자아. 케이팝은 양 날개로 난다.






주간동아 2018.12.28 1170호 (p78~79)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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