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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

어둠에 발을 딛고 빛을 향해 서다

허클베리핀의 ‘오로라피플’

어둠에 발을 딛고 빛을 향해 서다

[사진 제공 · 칠리뮤직코리아]

[사진 제공 · 칠리뮤직코리아]

‘지옥’에서 한 철을 보낸 후 빠져나온 한 사내의 이야기다. 조용히 흩어졌다 돌아온 한 밴드의 이야기다. 사내 이름은 이기용이고, 그가 속한 밴드는 허클베리핀이다. 2011년 5집 ‘까만 타이거’ 이후 7년, 허클베리핀은 ‘오로라피플’로 회귀했다. 이전과는 적잖이 다른 모습으로. 

1998년 데뷔한 허클베리핀은 줄곧 믿음의 어떤 이름이었다. 기타리스트 이기용이 주도하는 음악에는 우울한 분노와 쓸쓸한 서정이 함께했다. 그 흔한 사랑 노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별을 노래한 것도 아니었다. 봄과 여름보다 가을과 겨울의 음악이었다. 빛은 서늘했고 그림자는 따뜻했다. 


[사진 제공 · 칠리뮤직코리아]

[사진 제공 · 칠리뮤직코리아]

인상적인 기타 리프는 정교한 구조로 촘촘히 얽혔고, 탁월한 가사는 늘 시적이었다. 서정적이되 성찰적인 시였다.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갈구하는 이들은 그런 허클베리핀을 흠모했다. 음악에서 문학을 찾는 이들도 그런 허클베리핀의 곁에 머물곤 했다. 

데뷔 앨범과 세 번째 앨범은 특히 1990년대 이후 명반을 뽑을 때마다 한자리에 놓였다. 많은 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텅 빈 외로움에 머문 것도 아니었다. 꾸준히 앨범을 내고 사이사이 싱글을 발표할 수 있던 동인이다. 히트곡 없이 10여 년을 성실히 버틴 건 밴드 내부의 에너지와 외부의 온도가 융합된 힘 덕분이었다. 

그 힘이, 어느 순간 깨졌다. 융합은 분열로 전이됐다. 내부의 핵이던 이기용이 흔들렸다. 마음에 병이 싹텄다. 공백의 원인이었다. “음악만 제대로 가고 있었고 다른 건 다 망가진 상황”이었다고, 서울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기용은 회상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상승하는 해수면에 서서히 잠식되는 외딴섬 같던 그의 마음에 두 번의 해일이 닥쳤다.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가 대선에서 당선한 날이었다. 두 번째 해일이자 파도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날에 몰려왔다.
“그 후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지 못했다. 우리 노래를 사용한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보러 극장에 갔다. 조명이 꺼지자마자 그 안이 배처럼 느껴져 숨도 못 쉬었다. 나와서 토하고….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 됐다.” 

많은 뮤지션이 공통적으로 겪은 그날의 아픔, 그 시간의 무거움은 이기용을 마침내 붕괴시켰다. 가족도, 밴드도, 모든 것을 놓고 제주로 내려갔다. 들뜬 목소리로 “그래, 사람이라면 이런 데서 살아야지”라고 하던 그는 들뜰 기력도 고갈된 채 떠났다. 완결이 아닌 방치 상태로 홀로 내려갔다. 

제주 동북쪽 김녕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또한 황량하다. 옆 동네인 월정에 비하면 사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원인은 바람이다. 바람 세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모슬포 사람조차 딸이 김녕으로 시집간다고 하면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넓고 푸른 바다는 바람이 불어도 들뜨지만 푸름이 잿빛으로 바뀌면 무거워진다. 심한 조울증처럼 변화의 폭이 가파르다. 

이기용은 이곳에서 작은 숙소를 운영하며 지냈다. 마당 한편에 있는 컨테이너 한 칸이 그의 숙소였다. 얇은 철제 벽을 사이로 여름의 태양과 가을의 태풍이 그를 두들겼다. 자연만이, 풍경만이 그에게 허락됐을 뿐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았다. 둘 수 없었다. 기타도 잡지 않은 그는 그저 6.6㎡ 남짓한 컨테이너 안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냈다. 

바닥의 바닥에 존재하는 심연에 머무르던 그에게 조금씩 끈을 드리운 건 역시 자연이었다. 풍경이었다. “원래 풍경을 황홀해할 정도로 좋아한다. 김녕은 개발이 안 돼 하늘과 바다가 바로 보이는데, 차를 가지고 해가 질 때까지 사람 없는 길을 다니면서 공간을 봤다.”


제주 김녕 바닷가에서 건진 음악

[사진 제공 · 칠리뮤직코리아]

[사진 제공 · 칠리뮤직코리아]

조금씩, 일상에 걸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추상적인 깨달음에 스스로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음악이 다시 다가왔다.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방에 갇혀 있던 물이 둑이 터진 후 쏟아져 나오듯 음악이 솟구쳤다. 기타도 없이 차 안에서 저절로 곡이 나올 정도였다. 


[사진 제공 · 칠리뮤직코리아]

[사진 제공 · 칠리뮤직코리아]

2집 ‘나를 닮은 사내’부터 줄곧 이기용이 만든 노래를 불러온 이소영에게 그제야 연락했다. “내 노래는 네가 불러야 한다”고. 불투명한 현실에서 이소영 역시 서울에 가만히 있던 무렵이었다. 그녀도 짐을 챙겨 제주로 내려왔다. 4집에서 만돌린을 맡았던 성장규도 멤버로 합류했다. 기타와 프로그래밍 등 멀티 포지션을 담당했다. 

2015년, 다시 음악을 시작했다는 편지를 세상에 띄웠다. 이 디지털 싱글의 제목만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 이기용의 시간과 세월호의 상처를 이은 곡이다. 

음악이 쌓이고 쌓였다. 너무 깊은 노래들은 버렸다. 무저갱의 벽화는 일단 검은 숲 안에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를 숲 밖으로 끌어내게 한 풍경의 선물들을 실었다. 섬으로 향하기 전 만들었던, 하강나선형의 시작점에 있는 노래들도 추려 담았다. 앞발과 뒷발이 빛의 끝자락에 걸쳐 있을 때 음악들이다. 

이 노래들을 한 앨범에 담는 원칙은 자연과 풍경의 묘사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멤버들과 함께 보며 빛과 어둠이 화학적으로 공존하는 이 그림을 소리로 옮기고자 했다. 이기용은 이소영과 성장규에게 끊임없이 공간을 담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리는 빛을 향해 가야 한다”고. 연희동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소리의 붓은 그렇게 풍경의 음악을 그렸다. 

풍경이 아름다운 건, 인간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자연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자연은 그대로 그곳에 있을 뿐이다. 흔히 ‘자연’ ‘풍경’이란 단어로 묘사되는 음악들의 이미지와 ‘오로라피플’은 일부분만 겹친다. 기존 허클베리핀 음악에서 자주 사용되던 거친 기타 사운드와 격렬한 드럼 없이도 그들은 거대한 먹구름을 그려낸다. 찰랑거리는 아르페지오 없이도 무풍의 들판을 묘사한다. 

첫 곡 ‘항해’부터 마지막 곡 ‘남해’까지 10개의 노래는 10개의 캔버스가 된다. 각각의 캔버스에는 프레스코화로 그린 수난의 여정, 크로키로 묘사한 무념의 산책, 수묵으로 칠한 초겨울의 흙냄새가 사운드로 들어선다. 이 앨범을 설명하는 장르로는 포스트 록이 가장 무방하겠지만, 이런 개념은 오히려 선입견이 된다. 

국경 없는 풍경이다. 구분 없는 자연이다. 인위적 개념에서 앨범은 슬며시 탈주한다. 어둠에 발을 딛고 빛을 향해 서 있다. 그 빛이 어떤 색을 띠고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오로라피플’이 허클베리핀 재융합의 시작점임을 말하고 싶어진다. 그걸 기다려왔다.




주간동아 2018.11.30 1166호 (p78~79)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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