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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1군 데뷔, 이강인의 숨은 조력자들

감독, 에이전트, 부모 등 모두 제 역할하며 특급 선수 될 멍석 깔아줘

  • 입력2018-11-19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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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인 인스타그램]

    [이강인 인스타그램]

    열여덟, 고작 고교 2학년생이다. 스페인 프로축구팀 발렌시아 CF 소속인 이강인이 지난달 말 2018-2019 코파 델 레이(국왕컵) 32강전에서 1군 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지난여름 프리시즌 중 1군과 함께하며 친선 경기에 나섰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단순 출격이 아니라 왼발 슈팅으로 골대도 때렸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감이 안 올 수도 있다. 먼저 나아간 선배들의 자취를 돌아보자면, 영국 프리미어리그 특급 윙어 손흥민이 첫 1군 경기에 임한 때가 만 18세 112일, 파울루 벤투호의 황태자로 다시 태어난 남태희가 이보다 조금 빠른 만 18세 36일. 이강인은 더 이른 만 17세 253일에 이를 해냈다. 1군 데뷔 속도만 놓고 이 선수가 얼마나 크게 될지 점치는 건 섣부르지만, 손흥민(독일)과 남태희(프랑스)보다 이강인이 데뷔한 리그나 클럽 수준이 더 높다는 점 역시 짚고 갈 만하다. 

    축구에 정통한 유럽 현지 매체는 저마다 ‘눈여겨봐야 할 유망주 ◯人’ 등을 선정하곤 한다. 특정 선수의 미래 시장가치까지 끌어당겨 평가하기도 한다. 스페인 매체는 이강인을 가만두지 않았다. ‘보석’이란 표현 등을 서슴없이 썼다. 한 술 더 떠 다비드 실바(맨체스터 시티)나 이스코(레알 마드리드) 같은 월드클래스 반열에 든 선수들에게 빗대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어린 선수들이 괜히 헛바람 들지는 않을까 우려해 구단 차원에서 미디어와 접촉을 막는다. 만 18세가 안 된 이강인도 아직은 발렌시아 측의 특급 보호를 받고 있다.

    감독은 이강인의 떡잎을 봤다

    이강인은 어떻게 1군 경기에 얼굴을 내비쳤을까. 먼저 타고난 폼이 축구에 딱 들어맞았다. 170cm 초·중반 키는 공을 지키면서 속임수 동작을 쓰거나 돌아서는 동작에 최적화돼 있다. 단순히 신장이 적합하다기보다 격한 움직임에도 몸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밸런스가 탁월하다. 또 공간을 인지하고 재단하는 능력이 출중한데, 또래와는 격이 다른 시야로 상대팀에 치명상을 입히곤 한다. 

    대개 이런 원석 주변에는 “그러니까 잘될 수밖에 없었지”라고 수긍할 만한 인물들이 버티고 있다. 수년간 지켜본 이강인이 그랬다. 축구와 관련된 기술은 완벽에 가까웠고, 그 밖에 자신감이나 겸손함 등 정신적인 준비도 돼 있었다. 이는 좋은 감독, 좋은 에이전트, 좋은 부모가 내려준 자양분을 빨아들인 덕이 컸다. 



    먼저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발렌시아 1군 감독. 이강인이 성인 무대의 빛을 볼 수 있게 된, 어쩌면 대차게 판을 깔아준 가장 결정적 존재다. 지난여름 이강인의 재계약 때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그다. “내가 앞으로도 강인이를 데려갈 테니 진행해달라”는 의사를 구단 측에 전달했다. 

    당시 이강인 측과 구단 사이에 신경전이 있었다.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마찰 아닌 마찰이 일었다. 유럽 축구는 시스템이 철저히 세분화돼 있다. 감독은 선수단 전반을 관리하지만, 선수의 수급 및 운영은 ‘디렉터’가 맡는다. 또 어린 선수만 콜업해 성인 레벨에 추천하는 ‘유스 디렉터’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당시 두 디렉터가 동시에 바뀌면서 본디 발렌시아 내에서 받았던 평가나 대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새 디렉터들이 “네가 그렇게 좋은 선수면 직접 증명해보라. 그 전엔 요구 조건을 들어줄 수 없다”며 고집이라도 부리면 머리가 상당히 아파진다.

    착실한 품성에 현지 에이전트도 열심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발렌시아 CF 감독. [발렌시아 CF 홈페이지]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발렌시아 CF 감독. [발렌시아 CF 홈페이지]

    선수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토랄 감독이 직접 나섰다. 이강인을 1군 훈련에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몇 차례 세션 뒤에는 구단 스태프를 통해 “강인이는 좋은 선수가 될 자질을 갖췄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10대 후반 선수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선물이었다. 그 뒤 토랄 감독은 재계약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이강인을 따로 불러 구단 측 의사를 전하고, 선수의 속사정을 들으며 중재자 구실을 했다. 

    선수 에이전트의 역할은 중요하다. 선수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구단의 요구사항도 적절히 맞춰야 한다. 금액 일부를 수수료로 떼어가 지갑을 채우는 만큼 파이를 키우는 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제 몫 챙기려다 선수와 등을 지는 경우도 숱하다. 에이전트 욕심에 축구선수로서 인생을 망쳤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도는 이유다. 

    이강인은 유년 시절 스페인 현지 에이전트인 하비에르 가리도가 정성 들여 관리해왔다. 그는 이강인이 뛰는 경기를 거의 모두 따라다녔다. 유럽은 물론 지난해 U-19 대표팀 소집 당시에는 한국까지 찾아왔다. 공식 대회가 아닌 단순 훈련 및 연습경기 일정에도 나타나 “우리는 강인이의 가능성을 굉장히 높게 본다”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가벼운 피드백에서부터 진지한 상담까지 동반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강인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어린 선수에게 이 정도로 과감히 투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구단과 계약에서도 확실했다. 발렌시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터라 선수 성장을 최대치로 이끌어낼 방법을 찾아냈다. 

    개인적으로는 이강인의 정신 자세를 높게 평가한다. 어렸을 때부터 매체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인기를 얻었지만 전혀 들뜨지 않았다. 청소년 단계에서 월반했을 때도, 성인 무대에 이어 1군 생활이 일상이 됐을 때도 이강인은 “더 열심히 해야죠”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애늙은이’다운 의젓함까지 느껴졌다. 

    선수의 성향은 주변인 영향을 굉장히 크게 받는다. 특히 부모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선수는 참 괜찮았는데 부모가 다 망쳤다”는 말이 축구계에서 종종 들리는 것도 그 때문. 곁에서 지켜본 이강인의 부모도, 두 누나도 그를 치켜세우기보다 엄하게 다루면서까지 일상에 신경을 썼다. 그런 가정에서 자랐으니 일희일비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일은 꿈도 못 꿨다. 

    축구 유망주로 불리는 이를 숱하게 만났다. 수년간 꾸준히 관찰했고, 그 자취를 빼곡히 기록하며 추적했다. 그러면서 형성된 평가 기준에 댔을 때, 이강인은 굉장히 특별한 기운을 풍겼다. 이미 전문가들도 인정한 축구 차원에서는 더 논할 게 없다. 여기에 선수가 쉬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주변 인물들까지 있었으니 이보다 더 든든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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