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7

2015.12.16

클럽을 죽이고 싶을 때

골프채 화풀이 흑역사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nhy6294@gmail.com

    입력2015-12-15 15: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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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미국 플로리다 주 트럼프내셔널도럴 블루 몬스터 코스 8번 홀에서 세컨드 샷을 그린 옆 호수에 빠뜨린 로리 매킬로이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들고 있던 3번 아이언을 호수에 던져버렸다. 라운드를 마친 후 매킬로이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순간은 아니었다”면서도 “당시에는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저스틴 로즈도 같은 홀 비슷한 장소에서 똑같은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가 던진 클럽은 호수 반대편까지 날아갔다. 로즈는 파5 10번 홀에서 그린까지 딱 3번 우드의 거리를 남겨놓자, 캐디에게 자신이 던진 채를 가져오게 했다. 캐디는 페어웨이를 50야드(약 45m)나 가로질러 채를 가져왔다. 로즈는 멋진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림으로써 민망함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골프의 성인’이라 불리는 보비 존스는 ‘코스의 분노’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나는 상대 선수 때문에 분통을 터뜨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화를 낸다. 쉽게 할 수 있는 샷을 앞두고 하는 실수는 너무나 바보 같다. 그런 샷은 돌이킬 수 없는 범죄다.’ 실제 존스는 툭 하면 클럽을 내던지곤 했다. 1921년 브리티시오픈이 열린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선 스코어카드를 찢어버리고 경기를 접었고, 같은 해 US오픈에선 클럽을 던졌다 여자 갤러리의 다리를 맞히는 불상사도 있었다. 당시 언론은 그를 ‘천사의 얼굴에 이리의 성질을 지닌 선수’라고 묘사했다.  
    골프계의 ‘신사’로 알려진 진 사라젠도 마찬가지다. 조용한 말투에 침착한 성격의 사라젠은 “샷을 망치면 분통이 터질 때가 있다. 클럽을 던져 골퍼로서 지켜온 명예를 망치는 때도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퍼팅 난조로 라운드를 망치자 지인에게 빌려온 퍼터를 바이스로 고정한 후 세 조각으로 잘라버리기도 했다. 골프계에 잘 알려진 이른바 ‘퍼터 토막 처형’ 사건이다.  
    올해 미국 휘슬링스트레이츠에서 열린 PGA챔피언십에서 존 댈리는 파3 7번 홀에서 10타를 친 후 6번 아이언을 미시건 호에 던져버렸다.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그 홀에서 쓴 아이언은 4번이었는데 6번을 잘못 던졌다”고 나중에 털어놨을 정도다. 은퇴 후 골프 해설가로 일하는 데이비드 페허티는 1981년 아이리시내셔널 PGA챔피언십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보기를 하자 자동차로 클럽들을 전부 뭉개버렸는데, 후에 클럽백에 명품 시계가 들어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2012년 마스터스에서 타이거 우즈도 파3 16번 홀에서 형편없는 티샷을 한 후 9번 아이언을 냅다 차버렸다. 수장(水葬) 대신 화형(火刑)을 시도한 골퍼도 있다. 어니 엘스는 퍼팅이 뜻대로 안 되자 쓰던 퍼터를 화로에 집어넣은 후 타고 남은 부분을 불쏘시개로 썼다고 한다.
    ‘번개 토미’로 불린 토미 볼트(1958년 US오픈 챔피언)는 골프 역사상 가장 다혈질 선수로 꼽힌다. 화가 나 클럽을 물속에 던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볼트가 워낙 자주 클럽을 내던지다 보니 미국 프로골프협회(PGA)에서는 1957년 장비를 던질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토미 볼트 규칙’을 만들었다. 이 규칙이 발효된 다음 날 볼트는 퍼터를 하늘로 내던졌다. ‘자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규칙에 따라 벌금을 납부한 첫 번째 사례가 되고 싶었다’는 게 이유였다. 요즘은 선수가 이렇게 채를 던지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2000~1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골프를 좀 쳐본 사람은 누구나 골프채를 처형하고 싶을 때가 적잖다. 하지만 소시민 처지에 마음만 그럴 뿐이다. 이럴 땐 찬바람 쌩쌩 드는 창고에 미운 클럽을 방치하는 것은 어떨까. 소시민의 소심한 복수는 되지 않을까.
    클럽을 죽이고 싶을 때

    올해 초 미국 플로리다 주 트럼프내셔널도럴 블루 몬스터 코스에서 열린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캐딜락챔피언십에서 클럽을 던지는 로리 매킬로이. 방송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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