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7

2015.12.16

언더독 수원FC의 유쾌한 반란

‘회장님 구단’ 부산 아이파크 꺾고 3년 만에 K리그 클래식으로 고속 승격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5-12-15 15:11:4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언더독 수원FC의 유쾌한 반란

    조덕제 수원FC 감독. 스포츠동아

    2015년 한국 프로축구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주인공은 2년 연속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한 전북 현대가 아니었다. 승강 플레이오프(PO) 승자 수원FC였다. 3부 리그 격인 내셔널리그에서 시작해 2013년 챌린지(2부 리그)에 입성한 수원FC는 승강 PO에서 부산 아이파크에 2연승을 거두며 3년 만에 클래식으로 고속 승격하는 기적의 역사를 완성했다.
    지난해 광주FC도 수원FC처럼 챌린지 준PO, PO와 승강 PO를 거쳐 클래식 승격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올해 수원FC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광주FC의 승강 PO 상대는 같은 도·시민구단인 경남FC였다. 그러나 수원FC는 달랐다. 부산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구단주를 맡고 있는 ‘회장님 구단’인 데다, 더욱이 1990년대 대우 로얄즈 시절 K리그를 주름잡았던 명문구단이다. 특히 도·시민구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적 여유가 있는 ‘기업 구단’이라는 점도 관심을 배가했다. 팀 역사나 객관적 전력, 1년 운영비 등에서 수원FC가 절대 열세일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이를 비웃듯 홈에서 1-0 승리를 거둔 뒤 원정에서마저 2-0 완승을 거두며 2승(합계 스코어 3-0)으로 ‘완벽한 승격’을 쟁취했다. 수원FC가 클래식 승격에 성공하면서 K리그는 내년 시즌 ‘수원 더비’라는 새로운 흥행 카드를 손에 넣었다.

    ‘4년 차 사령탑’ 조덕제 감독의 힘

    수원FC의 모태는 2003년 창단한 수원시청축구단이다. 창단 이후 곧바로 경기도 지역 아마추어 축구를 평정한 수원시청은 2005년 K2(현 내셔널리그) 전기리그 우승,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을 하면서 내셔널리그 강자로 떠올랐다. 2007년부터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챔프전 준우승을 달성한 뒤 2009〜2010년 통합우승 2연패에 오르면서 내셔널리그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2012년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정점을 찍고 이듬해 새로 출범한 K리그 챌린지에 참가했다. 그러나 챌린지는 만만치 않았다. 올해 성적은 정규리그 4위. 그러나 극적으로 챌린지 생활 3년 만에 클래식행 티켓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원FC의 한 해 운영비는 50억 원으로 기업 구단의 4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 32명 선수단에 들어가는 인건비는 25억 원 정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FC)의 연봉(60억 원·추정치)은 고사하더라도, 클래식에도 10억 원 넘는 고액연봉자가 수두룩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수원FC 토종 A급 선수의 연봉이 7000만 원 정도이고, 그 아래 선수들은 당연히 이보다 낮다. 지난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수원FC의 평균 연봉(4100만 원)은 K리그 클래식 평균 연봉(1억6300만 원)에 훨씬 못 미친다. 수원FC가 억대급 연봉자로 구성된 부산을 꺾은 것은 유쾌한 ‘언더독의 반란’이라 할 만하다.
    수원FC가 달걀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었던 데는 ‘4년 차 사령탑’인 조덕제 감독의 힘이 컸다. 1988년부터 8년간 부산의 전신인 대우에서 뛴 조 감독은 미드필더 출신으로 아주대 감독을 거쳐 2012년부터 수원FC 사령탑을 맡았다. 부임 첫해 내셔널리그에서 우승했고, 2013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챌린지 생활도 모두 지휘했다.
    재정 형편이 좋지 않아 선수층이 얇을 수밖에 없는 현실 탓에 그는 머릿속에 ‘주전 명단’ 없이 4년을 보냈다. 치열한 경쟁체제를 통해 선수들이 자신만의 장점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했고, 이를 팀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외국인 선수라고 예외가 없었다. 다른 팀에선 처우에 불만을 품은 용병이 말썽을 부리기 일쑤였지만, 조 감독의 인품과 지도력에 반한 수원FC 용병들은 먼저 팀에 녹아들기 위해 애썼다. 조 감독은 인화력과 함께 선수들의 장점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갖췄고, 그라운드에서 전술적 다양함과 시의적절한 선수 기용 등으로 획기적인 ‘저비용·고효율 팀’을 만들어냈다.
    수원FC가 내년 시즌 클래식 진입에 성공하면서 ‘수원 더비’가 한국 축구 흥행의 새로운 기폭제가 되리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수원에는 2014〜2015시즌 2년 연속 클래식 준우승을 차지한 수원 삼성이 있다. 1995년 팀 창단 이후 줄곧 수원을 연고로 해온 수원 삼성은 비록 연봉공개제도 도입 이후 구단 살림살이가 줄고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면서 과거와 달리 위축된 분위기지만, 수원시가 ‘축구 수도’로 불릴 수 있도록 결정적인 기여를 한 K리그 대표 명문팀 가운데 하나다.
    언더독 수원FC의 유쾌한 반란

    12월 5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꺾고 내년 시즌 K리그 클래식 승격을 확정한 수원FC 선수들. 수원FC는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PO)에서 2연승을 거두며 기적을 연출했다. 스포츠동아


    K리그의 새로운 흥행 기폭제

    1983년 출범한 한국 프로축구에서 진정한 더비가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마에서 유래한 ‘더비(derby)’는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라이벌 경기를 일컫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맨체스터 더비’, 아스널 FC와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마드리드 더비’, AC 밀란과 FC 인터 밀란의 ‘밀라노 더비’ 등이 세계 최고 더비로 불린다.
    K리그에는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슈퍼매치’가 있지만 이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와 같은 라이벌전이지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더비가 아니다. 1996년까지 일화, 유공, LG가 서울을 연고로 하면서도 더비 개념이 없었고, 이후 K리그(클래식)에는 한 도시에서 2개 클럽이 뛴 적이 없었다.
    마침내 K리그에, 그것도 ‘축구 수도’라고 자부하는 수원시를 연고로 한 ‘수원 더비’가 성사되면서 내년 시즌 K리그는 더욱 풍성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수원FC 홈구장인 수원시종합운동장과 수원 삼성 홈구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위치한다. 시민구단, 열악한 재정환경의 수원FC와 기업 구단, 화려했던 과거와 내실 있는 현재를 자랑하는 명문구단 수원 삼성은 여러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 같은 수원을 안방으로 하지만, 더비 성공의 제1조건인 그 나름의 ‘라이벌 구도’를 갖춘 셈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수원 더비가 자리 잡으려면 수원FC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축구인은 “당장 내년 초반에는 팬들도, 언론도 관심을 기울이겠지만 일방적으로 수원 삼성이 리드하는 더비 구조가 된다면 수원 더비에 대한 주목도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올해 대전시티즌이 그랬듯, 수원FC가 1년 만에 다시 챌린지로 강등될 정도라면 수원 더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수원FC가 수원 삼성의 지역 라이벌로서 ‘기본 품격’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수원 더비가 수원시민의 축제를 넘어 K리그 클래식 흥행을 이끌기 위해서는 수원FC의 경쟁력이 관건인 셈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