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7

2015.12.16

열기에 단련된 깊은 맛이 온다

달콤한 코냑 ‘마데이라’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12-15 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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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기에 단련된 깊은 맛이 온다

    세르시알 마데이라(왼쪽)와 5년 숙성된 마데이라 리저브. 사진 제공 · Justino’s Madeira

    대항해시대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가 꼭 들르던 작은 섬이 있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Lisbon)에서 남서쪽으로 900km 떨어진 대서양의 외딴섬 마데이라(Madeira)가 바로 그곳. 이곳에서 배는 마지막 정비를 마치고 식량과 와인을 실은 뒤 먼바다로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밀폐가 가능한 유리병이 귀했던 시절. 긴 여행 중에 나무통에 담긴 와인이 신선함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와인이 상하는 것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와인에 독한 증류주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배가 적도를 지나는 동안 화물칸에 있는 와인이 더운 열기 속에서 숙성되며 맛이 깊어져 훌륭한 와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 와인을 비뉴 다 호다(Vinho da Roda)라고 불렀다. 포르투갈어로 ‘긴 여행을 하고 온 와인‘이라는 뜻이다. 와인의 인기는 치솟았지만 와인을 숙성시키자고 매번 배를 띄울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와인을 와이너리의 가장 더운 곳인 지붕 아래 다락에 두는 방법을 이용했다. 아열대 섬 마데이라의 태양은 적도를 지나는 배 못지않게 뜨거운 열기로 와인을 숙성시켰다. 이제는 섬 이름을 따서 마데이라라 부르는 이 와인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로 숙성시키는 와인이다. 예전처럼 와인을 지붕 밑에 두기도 하지만 와인이 담긴 스테인리스 탱크나 콘크리트 탱크에 온수 파이프를 둘러 열을 가하기도 한다. 숙성 기간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수십 년에 이른다.
    열기에 단련된 깊은 맛이 온다

    마데이라 섬의 포도밭. 사진 제공 · Justino’s Madeira

    마데이라 와인은 포도즙 안에 들어 있는 당분이 알코올로 다 발효되기 전 증류주를 부어 만들기 때문에 달콤한 맛이 난다. 여러 포도 품종을 섞어 만들기도 하고 한 가지 품종으로만 만든 것도 있는데, 단일 품종 마데이라 와인은 포도에 따라 단맛 강도가 다르다. 단맛이 가장 약한 세르시알(Sercial)은 산도가 강하고 보디감이 가벼워 마데이라 가운데 가장 경쾌하다. 향에서도 레몬, 허브, 미네랄이 느껴져 산뜻한 편이다. 베르델류(Verdelho)는 세르시알보다 좀 더 달고 향신료, 연기, 캐러멜향이 은은하다. 보알(Boal)은 베르델류보다 달고 커피, 캐러멜, 초콜릿, 건포도향이 진하다. 말바지아(Malvasia 또는 Malmsey)는 가장 묵직하고 당도가 강한 스타일로 말린 과일, 볶은 견과류, 초콜릿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블렌드 마데이라 와인은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품종 외에 틴타 네그라(Tinta Negra)라는 적포도를 섞어서 만든다. 숙성 기간에 따라 품질과 맛이 다른데 파이니스트(Finest)는 3년, 리저브(Reserve)는 5년, 스페셜 리저브(Special Reserve)는 10년, 엑스트라 리저브(Extra Reserve)는 15년간 숙성시킨 것이다. 특정 해에 수확한 포도로만 만드는 빈티지(Vintage) 마데이라는 최소 숙성 기간이 20년이다.
    마데이라는 긴 시간 높은 온도에서 숙성되는 동안 산화가 진행돼 병입 상태로 100년을 버틴다. 병을 연 뒤에도 잘 변하지 않으므로 냉장고 안에 두고 마시면 한 달 이상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마개도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안쪽에 코르크가 달려 있다. 향이 진하고 묵직한 마데이라 와인은 달콤한 코냑(Cognac) 같다. 늦은 밤 견과류나 다크초콜릿 몇 조각과 함께 마데이라 한 잔을 기울이는 것, 수고한 당신이 즐길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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