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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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모르던 아웃도어의 자살골

대리점 울고, 백화점은 매출 조작…억지로 버티던 브랜드들 철수 시작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12-15 14: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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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황 모르던 아웃도어의 자살골

    2014년 12월 부산 롯데호텔에서 아웃도어 이월상품을 40~7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뉴시스

    “요즘처럼 손님이 드물기는 처음이에요. 장사가 안 되는 날에는 옷 10벌도 안 팔려요. 날씨가 추워지는 11~12월에 많이 팔려야 정상인데….”
    서울 서초구 청계산 진입로 앞에서 아웃도어 대리점을 운영하는 박모(52) 씨는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3년 전 지인으로부터 “아웃도어 산업이 활황”이라는 말을 듣고 매장을 인수했다. 하지만 박씨는 “건물 임대료 내기도 힘들다. 도무지 수익이 안 나서 곧 매장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매장에 진열된 내피복 가격은 14만9000원에서 3만 원으로, 재킷은 22만5000원에서 7만2000원으로 할인돼 있었다. 인근 다른 매장 10여 곳도 마찬가지였다. 출시된 지 서너 달 된 제품들이 30~7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매장은 손님 없이 한산했다.

    ‘그 옷이 그 옷’ 식상한 소비자들

    불황 속에서 홀로 호황을 누리던 아웃도어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아웃도어스포츠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아웃도어시장 규모는 2006년 1조 원에서 2014년 7조3000억 원대로 성장했다. 매출은 2005년 이후 매년 약 30%씩 급격하게 늘었다. 하지만 2013년 매출 증가율은 10%대로 떨어졌고 지난해 증가율은 9.4%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이대로 가면 아웃도어 산업 성장률이 곧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는다.
    아웃도어 산업이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소비자 대부분이 아웃도어 의류를 2~3벌씩 갖고 있어 더는 구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7~8년 동안 우후죽순 생겨난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에 차별성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제품마다 품질, 디자인이 유사해 소비자들이 식상해한다는 것이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 관계자 이모(35) 씨는 “해외 아웃도어업체들은 장기적인 성장을 목표로 제품 연구 및 개발에 투자하는데 국내 업체들은 ‘호황 때 누리자’는 욕심에 체계적인 준비 없이 브랜드 출시부터 서둘렀다”고 말했다.
    디자인 개발 노력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씨는 “백화점이나 대리점에서 파는 국내 아웃도어 제품의 60%는 기존 상품을 업데이트한 것이고, 40%만 신상품”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웃도어 의류 디자이너들이 근무하는 회사를 자주 옮기며 비슷한 디자인을 활용하는 편이다. 따라서 소비자 사이에는 ‘그 제품이 그 제품’이라거나 ‘국내 아웃도어 의류는 브랜드 로고를 가리면 어느 업체 상품인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다”고 꼬집었다.
    백화점·아웃렛 중심의 유통구조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아웃도어 인기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난 대리점들이 백화점과 아웃렛에 고객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서울 도봉산 인근에서 아웃도어 매장을 운영하는 장모(42) 씨는 “최근 5년 동안 아웃도어 대리점의 절반은 폐업하거나 가게만 유지한 채 브랜드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씨는 “손님들은 대리점보다 여러 브랜드를 한꺼번에 보며 할인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백화점, 아웃렛 매장을 선호한다. 따라서  대리점은 인근 백화점이나 아웃렛에서 할인행사를 펼치면 장사가 안 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제품 가격을 할인해야 했다”고 말했다.
    불황 모르던 아웃도어의 자살골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아웃도어 제품은 브랜드에 관계없이 디자인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뉴시스


    “해외 수출만이 살 길”

    백화점이나 아웃렛에 입점한 매장도 운영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이씨는 “백화점 매장의 경우 일정 이상 매출액이 나오지 않으면 매장을 철수해야 하기 때문에 매출 조작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회사 법인카드로 백화점 매장 물량을 다수 구매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수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아웃렛 매장의 경우 매출액이 높아도 할인폭이 워낙 커 손해 보고 팔 때도 많다는 이야기다. 이씨는 “아웃도어업체들은 이미 덩치가 커져버린 브랜드를 유지하려고 매년 매출 목표를 상향 조정하며 물량만 찍어냈다. 하지만 수요량이 생산량에 훨씬 못 미쳐 재고의 악순환과 할인이 반복됐고, 아웃도어의 저렴한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산업 전체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웃도어업체들도 불황을 인식하고 사업을 조금씩 철수하고 있다. 9월에는 금강제화, 휠라코리아가 아웃도어 라인 사업을 중단했으며 신세계인터내셔날은 11월 “2013년부터 유통해온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 사업 중단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국내 아웃도어업체 ‘블랙야크’ 관계자는 “아웃도어시장의 정체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아웃도어 의류의 핵심인 기능성을 차별화하지 않고 호황만을 기대했던 업체는 줄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아웃도어스포츠산업협회 관계자는 “제품 품질을 개선해 해외 수출을 늘리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아웃도어 제품의 생산량을 고려하면 소비자가 최소 5000만 명 이상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현재 95 대 5인 내수와 해외 수출 비율을 50 대 50 정도로 조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해외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 디자인, 품질, 기능을 혁신하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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