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6

2015.12.09

마침내 드러난 아베의 ‘혼네’本音

도쿄재판 검증으로 전후체제 흔들기 본격화…최종목표는 ‘자주헌법’

  • 배극인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입력2015-12-07 11: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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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 전 선인(先人)들은 대의(大義) 아래 자민당을 창당했다. 그 대의는 일본 재건이다. 헌법 개정, 교육개혁 등 점령기에 만들어진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심했다.”
    창당 60주년을 맞은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1월 29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목에 힘을 주며 ‘전후체제 탈피’를 외쳤다. 자리를 가득 메운 3000명의 역대 당 총재와 국회의원, 지방의원, 사카키바라 사다유키(原定征) 게이단렌(經團連·일본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제기된 일본 재건의 궁극적인 목표는 개헌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 길목에서 중대 고비가 될 내년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언급하며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빛나는 승리를 거둬 자민당의 다음 60년을 향해 큰 일보(一步)를 내딛자”고 주문했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하원)과 참의원 모두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아베 총리의 ‘돌격 앞으로’에 호응이라도 하듯 자민당은 이날 청일전쟁(1894〜1895) 이후 역사를 검증하는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생각하는 본부’(본부)를 정식 발족했다. 사실상 역사 수정주의의 대본영으로 평가받는 이 본부는 일본인 A급 전범을 단죄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을 핵심적인 검증 대상으로 삼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책임을 압박하는 난징(南京)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본부장에는 중도 성향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자민당 간사장을 임명했다. 하지만 이는 대외 포장용에 불과했다. 실제로 본부를 이끌 본부장 대리는 자민당 내 여성의원 가운데 대표적인 우파로 평가받는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정무조사회장이 맡았다. 그는 6월 도쿄전범재판에 대해 “판결 이유에 있는 역사 인식은 너무 날림이다. 일본인에 의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우익들로부터 박수를 받은 바 있다.

    “승자에 의한 일방적 단죄”

    마침내 드러난 아베의 ‘혼네’本音

    2011년 8월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김포국제공항으로 입국하다 법무부에 의해 거부당한 이나다 도모미 중의원 의원(앞줄 왼쪽). 최근 일본 자민당이 극동국제군사재판 검증을 위해 발족한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생각하는 본부’의 실질적인 리더를 맡았다. 동아일보

    ‘전후 질서’를 부정하는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이런 움직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베 총리는 창당 기념식 전날인 11월 28일에도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초당파 의원 연맹인 ‘창생일본’ 모임에서 “헌법 개정을 비롯해 (연합군) 점령 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이 (자민당) 창당의 원점”이라며 “그런 것을 추진해가기 위해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여러분의 강력한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극우 정치인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전 총무상은 “창당의 원점은 자주독립의 완성이며, (자민당) 정책의 기본은 헌법의 자주적 제정이다. (이러한 원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지금 일본이 미국의 점령 상태에 있는 듯 묘사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자주독립’을 완성하기 위해 타도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행 평화헌법은 이미 ‘뇌사 상태’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실현하고자 날치기로 제·개정한 11개 안보법제가 내년 3월부터 시행되면서 1946년 평화헌법 제정 이래 70년간 지켜온 전수방위(專守防衛·오직 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 원칙이 깨졌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벌써부터 남중국해에 자위대 파견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나서는 등 자위대의 전 지구적 활동 반경 확장에 잰걸음을 걷고 있다.
    1946년 1월 설치된 도쿄전범재판에 대해서도 일본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적잖다. 일본은 도쿄전범재판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고 이후 최단 기간에 강력한 경제 부흥을 이룰 수 있었다.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라는 ‘천황제(일왕제)’가 존속하게 된 것도 도쿄전범재판이 일본에 베푼 은혜였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와 자민당이 역사 검증과 개헌을 통한 전후질서 흔들기에 나서는 것은 ‘일본이 피해자’라는 비뚤어진 역사 인식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2013년 3월 중의원에서 도쿄전범재판에 대해 “연합국 측이 승자의 판단에 따라 단죄했다”고 주장했고, 한 달 뒤에는 참의원에 출석해 “침략의 정의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여기에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관측이다. 패전 직후 기시 전 총리는 A급 전범으로 기소돼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 수감됐다. 1948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 7명이 처형됐지만, 그는 그해 성탄절 전날 3년 만에 풀려났다. 전쟁 말기 도조 내각에 맞섰다는 점을 참작해 미국이 그의 재능을 활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시 전 총리는 형무소에 있는 동안 연합국에 분노했다. A급 전범 7명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다음 날 그는 일기에 ‘이번 재판은 사실을 왜곡한 일방적 편견에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난폭하기 이를 데 없다’고 적었다. 옥중 심경을 기술한 ‘단상록’에는 ‘대동아전쟁을 일본의 침략전쟁이라고 전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회고록에서도 도쿄전범재판에 대해 ‘승자에 의한 일방적 단죄이며, 법률을 위반했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적고 있다. 복권 이후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재기한 기시 전 총리는 1955년 보수합동 정당인 자유민주당의 입안자였다. 당시 자민당이 내건 강령이 반공주의와 자주헌법 제정이었다.

    미국의 인내는 어디까지?

    이런 외할아버지의 생각을 아베 총리는 복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빼닮았다. 아베 총리는 2006년 내놓은 자전적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현행 평화헌법에 대해 ‘연합군의 처음 의도는 일본이 두 번 다시 열강으로서 대두하지 않도록 그 손발을 묶는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나라의 골격은 일본 국민 스스로의 손으로 백지부터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처음 진짜 독립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2년 정권을 다시 잡은 아베 총리는 이듬해 12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고 미국이 ‘실망했다’는 경고음을 낼 때까지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역사 수정주의 발언을 이어갔다. 이후 잠깐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안보법제 통과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타결로 미국의 입을 막은 뒤로는 다시 거칠 게 없어졌다.
    하지만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역사 뒤집기 행보는 ‘미·일동맹 복원’을 외치는 아베 내각의 실제 정책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무엇보다 ‘일체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위대의 미군 후방부대로서의 구실 확대와 일본의 자주독립이 어떤 관계인지 불투명하다. 일본에서 도쿄전범재판을 부정하는 ‘자주독립’ 분위기가 고조되면 그 칼끝은 결국 미국 등 국제사회로 향할 공산도 크다. 아베의 도박은 시작됐다. 미국의 인내 한계도 아울러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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