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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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람 잡네, 잡아”

2013년 빛공해 방지법 제정…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 지자체는 서울 한 곳뿐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12-07 10: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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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사람 잡네,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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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기 수원에 사는 김모(31) 씨는 집 근처 숙박업소가 건물 전면에 화려한 조명과 간판을 단 뒤부터 창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다. 한밤중에도 건물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 때문에 눈이 부시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은 겨울이라 창문을 닫아둬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여름에는 창문을 열면 그냥 밝은 게 아니라 번쩍번쩍 점멸하는 불빛이 들어왔다. 눈이 너무 아픈 데다 잔상 때문에 어지럽고 메스껍기까지 해 구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모텔이 상업지역에 있어 제재가 어렵다고 했다. 신문지로도 불빛이 가려지지 않아 암막커튼을 사서 달아놓았는데, 창문을 아예 닫고 살 수도 없고 고민”이라고 말했다.
    #2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최모(29) 씨는 병원 근무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만성 수면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최씨는 “밤 근무를 할 때면 12시간 가까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생활한다. 집에 가서도 한낮이라 암막커튼이 없으면 밝은 빛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불규칙한 생활을 하면서 반복적, 지속적으로 인공조명에 노출되다 보니 성격도 예민해졌고 우울한 기분도 지속되고 있다. 주변에서도 이런 문제로 불면증을 얻거나 생리불순, 탈모, 변비, 불임까지 겪는 간호사가 많다”고 말했다.

    수면 질 떨어뜨리고 암 유병률 높여

    전구 발명으로 인류의 삶은 쾌적해졌지만, 빛공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도시에는 소음이나 매연공해만 있는 게 아니다. 화려한 네온사인부터 지나치게 밝은 가로등, 그리고 어두운 밤을 밝히는 스마트폰 화면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강한 빛에 노출돼 있다. 빛공해는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빛이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방해하거나 피해를 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조명과 불빛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9월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시도에 접수된 빛공해 관련 민원은 2012년 2859건에서 2013년 3210건, 2014년 3850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3년간 총 1만여 건에 달하는 민원이 접수된 것이다. 해당 기간 지역별 빛공해 민원은 서울이 3197건(32.2%)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2442건(24.6%), 경남 936건(9.4%), 강원 803건(8.1%), 광주 765건(7.7%) 순이었다. 피해 유형별로는 수면방해가 4788건으로 전체 민원의 절반(48.3%) 가까이를 차지했고 농림수산업 피해 4013건(40.5%), 생활불편 850건(8.6%) 순이었다. 수면방해 민원은 2012년 1104건에서 지난해 2257건으로 급증했다.
    2014년 한국조명전기설비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고려대 의과대 빛공해 연구팀(연구책임자 이은일 교수)은 ‘빛공해에 의한 건강 영향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내용에 따르면 빛공해는 결막충혈이나 안구건조 등을 유발해 눈의 피로도를 높이고, 수면의 양과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며, 뇌의 인지기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국 각 지역 유방암 유병률과 빛공해 수준을 조사한 결과, 야간조명이 유방암의 증가 요인으로 지목됐다. 2008년 이스라엘에서도 빛공해와 유방암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 야간에 과도한 빛에 노출된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73% 높게 나타났다.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빛은 신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도심에 네온사인이 너무 많고 휴대전화나 노트북컴퓨터를 쓰면서 밤늦게까지 밝은 빛에 노출돼 있다 보니 수면 각성 리듬에 문제가 생겨 숙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일주 리듬이 망가지면 신체에 광범위한 염증 반응이 나타나거나 암 같은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잠을 잘 때는 두꺼운 커튼 등을 활용해 차광이 잘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국제조명위원회(CIE) 등이 정한 방침에 따라 빛공해를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100개 넘는 도시에서 관련 법규와 조례를 제정하고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영국은 ‘청정근린 환경법’에 인공조명 위법 사항의 제재조항을 신설해 사생활을 침해하는 불빛에 대한 이의 제기가 가능하게 했고,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 시정명령을 내려 불이행 시 최고 5만 유로(약 6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일본은 지자체별로 ‘빛공해 방지조례’를 운영하고 있다.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 턱없이 부족

    “빛이 사람 잡네, 잡아”

    환경부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빛공해 기준 초과율을 27%에서 13%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사진 제공·환경부

    우리나라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빛공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환경부는 2013년 2월부터 시행한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빛공해 방지법) 규정에 따라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빛공해 기준 초과율을 27%에서 13%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빛공해 방지법에 따라 각 시·도지사는 빛공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조명환경관리구역(4종)으로 구분 및 지정할 수 있다.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된 구역 내 조명기구 소유자는 환경부 장관이 정한 빛방사허용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기준을 위반하면 정해진 기간 내 해당 조명기구가 빛방사허용기준을 충족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해당 조명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의 사용 중지나 제한을 명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또한 시·도지사는 3년마다 1회 이상 빛공해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관할 지역의 빛환경이 주변 지역에 미치는 환경상 영향을 점검해야 한다.
    김훈 강원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국내에서는 빛공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관도 없어 사람들이 빛공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빛공해를 유발하는 조명기구가 지자체에서 설치한 가로등이나 보안등, 개인적으로 설치하는 광고조명, 모텔이나 건물 벽에 설치하는 장식조명 등 다양해서 관리 주체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걸 집약해 관리하는 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쉽지 않다. 국내에서는 2013년 이후부터 지자체가 빛공해 방지조례나 빛공해 방지위원회 등을 만들며 초석을 다져나가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현재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한 지자체는 12월까지 서울시 한 곳뿐이다. 빛방사허용기준을 초과했을 때 처벌하거나 과태료를 물리는 건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됐을 때만 가능하다. 빛공해환경영향평가를 진행했거나 추진 중인 곳은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8개에 그쳤다. 환경부 생활환경과 관계자는 “현재 조명환경관리구역이 지정된 곳은 서울시 한 군데이고, 다른 광역시·도들은 환경영향평가를 마친 상태다. 경기도나 인천, 부산 같은 경우 환경영향평가는 끝났고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 준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조명환경관리구역이 빨리 지정되도록 지자체에 협조를 구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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