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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은 왜 드론(수벌)으로 불리게 됐을까

태초에 ‘여왕벌’이 있었다

드론은 왜 드론(수벌)으로 불리게 됐을까

1918년 제작된 미국의 자폭무인기 ‘케터링 버그’. [사진 제공 · 미 육군]

1918년 제작된 미국의 자폭무인기 ‘케터링 버그’. [사진 제공 · 미 육군]

드론은 무인비행기(UAV·Unmanned Aerial Vehicle)의 별칭이다. 요즘엔 UAV에만 머물지 않고 무인지상차량(UGV·Unmanned Ground Vehicle), 무인함정(USV·Unmanned Surface Vehicle), 무인잠수함(UUV·Unmanned Underground Vehicle)까지 드론이라고 부른다. 수벌을 뜻하는 영어 단어(drone)가 어떻게 ‘무인으로 움직이는 것’의 대명사가 된 걸까. 

많은 이가 무인비행기가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작은 비행체라 윙윙대는 벌을 연상케 한다고 해 애칭으로 불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으리라 추론한다. 하지만 초기 드론은 프로펠러가 아니라 고정 날개가 달린 비행체였다. 프로펠러 회전익으로 나는 멀티콥 형태의 드론은 21세기가 돼야 등장한다.


170년 된 드론의 역사

1941년 최초의 성공적 무인기 ‘여왕벌’의 비행을 참관한 윈스턴 처칠. [사진 제공 · 영국전쟁박물관]

1941년 최초의 성공적 무인기 ‘여왕벌’의 비행을 참관한 윈스턴 처칠. [사진 제공 · 영국전쟁박물관]

드론이란 호칭에는 무인비행기 개발의 오랜 역사가 녹아 있다. 사람을 태우지 않는 비행체의 역사는 169년이나 된다. 1849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이 베니스공화국을 포위, 공격할 때 투입된 열기구폭탄을 그 기원으로 삼기 때문이다. 과거 연이나 풍등에 폭약을 달아 날려 보낸 것과 차이점은 열기구 내부에 구리 전선과 연결된 배터리 기폭장치를 달아 목표 지점에 도달했을 때 전자기력을 이용해 폭파되도록 한 점이다. 하지만 실전에선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베니스 시민에게 불꽃놀이 구경거리를 제공한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진정한 무인기 개발은 1903년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한 후 여기에 헤르츠의 무선통신기술을 접목한 시도를 통해 본격화한다. 특히 세르비아 출신 미국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무선보트와 무선자동차에 이어 무선비행기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 큰 기여를 했다. 현재 자율주행차 개발의 선두주자인 일론 머스크의 회사명이 테슬라인 것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테슬라의 무인기 구상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과 영국에서 구체화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18년 미국 발명가 찰스 케터링(1876~1958)이 제작한 ‘케터링 버그’로, 무선조종으로 폭탄을 싣고 120km가량을 날아가 자폭하는 소형 복엽기다. 당시엔 ‘공중 어뢰’로 불린 자폭무인기들은 순항미사일의 원조로도 꼽히지만 실전배치될 무렵 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1925년 영국에서 개발한 ‘라링스’(Larynx·링스 엔진을 장착한 장거리포의 약자)는 구축함에서 탄도미사일처럼 발사된 뒤 무선조종을 통해 목표물에 적중하도록 설계된 단엽기 형태의 무인기였다. 당시 그 어떤 비행기보다도 빠른 시속 321km까지 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현 탄도미사일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역시 7대만 시험제작됐을 뿐 실전배치되지는 못했다. 

이후 탄도미사일이 오늘날 형태에 가깝게 개발되면서 영국은 무인기 기술을 해군 군함의 방공포격 훈련용 무인표적기 개발에 적용한다. 그 첫 작품이 1932년 페어리(Fairey) 항공사의 복엽 정찰기 ‘페어리 Ⅲ’를 무선조종이 가능한 무인기로 개조한 ‘페어리 퀸’이었다. 페어리 퀸은 모두 3대가 제작됐는데 시험비행 과정에서 2대가 추락하면서 개발이 무산됐다.


수벌의 운명을 빼닮다

1945년 드론 공장에서 프로펠러를 조립 중이던 메릴린 먼로. [사진 제공 · 미 육군]

1945년 드론 공장에서 프로펠러를 조립 중이던 메릴린 먼로. [사진 제공 · 미 육군]

이때 쓰디쓴 경험을 바탕으로 1935년 새롭게 제작된 무인기가 ‘DH-82B 여왕벌(Queen Bee)’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항공기술자 제프리 드 하빌랜드(1882~1965)가 개발한 나무동체의 복엽기 ‘DH-82A 불나방(Tiger Moth)’을 무선조종 무인기로 개조한 기종이다. 하빌랜드는 자신이 제작한 DH(드 하빌랜드의 약자) 시리즈 항공기의 애칭으로 나방, 모기, 잠자리 같은 곤충 이름을 달곤 했다. DH-82B는 ‘페어리 퀸’의 영향으로 퀸이란 표현이 들어가는 여왕벌을 애칭으로 삼았다. 

불나방은 하빌랜드의 항공기 가운데 가장 오랜 생명력을 자랑해 요즘도 연습용 비행기로 사랑받고 있다. 여왕벌 역시 ‘최초의 성공적 무인기’라는 평가를 받으며 470대나 생산됐다. 영국 해군은 이를 토대로 1935년 비행 중인 여왕벌을 쏴 맞히는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이를 참관한 사람 가운데 미국 해군 제독 윌리엄 해리슨 스탠들리(1872~1963)가 있었다. 그는 1936년 미국으로 돌아와 비슷한 무인기 개발 착수를 지시한다. 

그 개발을 맡은 미 해군 항공국의 델마 파니 소령은 1936년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드론’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한다. 영국 해군 여왕벌의 짝이 될 수벌이라는 의미에서 썼는지, 아니면 당시 드론이 일벌의 대명사처럼 쓰였다는 점에서 수많은 일벌의 어미인 여왕벌에 대한 경의의 의미로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 첫 성과로 1938~ 39년 복엽기인 ‘커티스’와 ‘스티어맨’을 개조한 무인표적기가 미 해군 방공포격 훈련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훈련을 참관한 미 육군과 공군에서도 무인표적기 도입을 결정하면서 드론이란 용어도 확산되기 시작한다. 특히 영국 출신 영화배우 레지널드 데니(1891~1967)가 세운 ‘라디오플레인’은 1만5000대의 무인표적기를 미군에 공급했다. 1945년 라디오플레인 공장에서 부품 조립과 스프레이칠을 하던 여공을 모델로 한 전시 여성 동원 홍보사진이 촬영된다. 당시 모델로 발탁된 18세 여공 노마 진 도허티가 훗날의 메릴린 먼로다. 

수벌은 오로지 여왕벌과 교미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유전자도 절반만 지니고 있고, 일벌이 지닌 침도 없어 짝짓기가 끝난 뒤엔 용도 폐기된다. 그래서 수명이 3~4개월에 불과하다. 초기 드론 역시 방공포격의 움직이는 표적이 돼 산화하는 게 존재 이유였다. 사람을 태울 필요가 없었기에 무게가 절반 이하에 불과했고 무장할 필요도 없었다. 드론이 드론으로 불리게 된 진짜 이유 아닐까.




주간동아 2018.10.26 1161호 (p6~7)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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