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3

2015.11.16

신약 수출 대박에도 웃지 못하는 까닭

국내 제약사 독자 개발 미미…연구비 부족·글로벌 판매망 부재 등 한계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11-16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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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 수출 대박에도 웃지 못하는 까닭

    11월 초 한미약품은 다국적 제약사와 2건의 신약 개발 기술수출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됐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미약품 본사 전경.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규모 신약 개발 기술수출 계약 체결.’

    한미약품이 국내 신약 개발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11월 5일 세계 4위 제약사인 프랑스 사노피에 개발 단계인 지속형 당뇨 신약 3종의 파이프라인(개발 중인 기술)인 ‘퀀텀프로젝트’를 39억 유로(약 4조8000억 원)에 수출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 계약금만 4억 유로(약 5000억 원)로 이는 지난해 한미약품 매출액인 5820억 원에 버금가는 액수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미약품은 나흘 뒤 다국적 제약사 얀센에 자체 개발 중인 당뇨 및 비만 치료 바이오 신약 기술을 9억1500만 달러(약 1조 원)에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어 또 한 번 세간을 놀라게 했다.

    한미약품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주식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54만7000원이던 한미약품 주가는 사노피와 계약한 다음 날 70만 원까지 치솟았고 주식 품귀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미약품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도 상한가를 기록해 두 회사 합계 시가총액은 17조 원을 넘었다.

    한미약품이 거둔 이번 성과는 놀랍다. 하지만 국내에서만 놀라울 뿐이다. 글로벌 제약시장에선 신약 개발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그렇게 좋은 약을 왜 남 주느냐. 완성약을 만들어 세계에 팔면 5조 원의 10배는 더 벌 수 있을 텐데”라는 의문이 나온다. 답은 뻔하다. 국내 제약사에겐 연구비 투자 등 완제품을 만들 여력은 물론, 글로벌 판매망과 판매 노하우도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는 매우 좁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정보통계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제약시장은 1조272억 달러(약 1082조 원) 규모로 처음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지역별 시장 규모는 북미지역이 4056억 달러로 전체 시장의 39.5%를 차지하고 그 뒤로 유럽 2288억 달러(22.3%), 아시아·아프리카·호주 1992억 달러(19.4%), 일본 816억 달러(7.9%) 순이다(그래프 참조). 국내 제약시장 규모는 19조3704억 원으로 세계시장에서 1.79%의 비율을 차지한다(표1 참조). 산업 비중은 수입이 수출의 2배가량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형태다.



    독자적 신약 개발 2건? 알고 보면 아니야

    신약 수출 대박에도 웃지 못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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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 투자 규모도 다국적 제약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조금씩 늘려가는 추세다. 2014년 국내 상장 제약사의 연구개발비는 총 9501억 원가량으로 전년 대비 7.9% 증가했다(표2 참조). 투자액 규모는 셀트리온, 한미약품, 동아에스티, 녹십자, LG생명과학 순이었고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10% 이상인 기업도 바이오니아(50.9%), 셀트리온(33.8%), 한미약품(21.8%) 등 14개사나 됐다.

    국내 신약 개발은 제약사들이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그 역사가 16년밖에 되지 않았다. 최초 신약은 1999년 SK케미칼에서 개발한 항암제 ‘선플라주’로 당시로는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제약사가 신약을 개발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국산 신약은 올해까지 26개가 개발됐는데 이 가운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은 건은 2002년 LG생명과학에서 개발한 항생제 ‘팩티브’와 지난해 동아에스티에서 개발한 슈퍼박테리아 항생제 ‘시벡스트로’가 전부다.

    그러나 국내 제약사의 독자 개발로 미국에서 판매권을 따낸 2건의 경우도 뚜껑을 열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팩티브와 시벡스트로 모두 전 세계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 단계에서는 다국적 제약사와 손잡고 진행했기 때문이다. 팩티브의 경우 임상시험 완료 후 FDA 승인 단계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뒤 함께했던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전신인 스미스클라인비참이 포기를 선언하면서 결과적으로 LG생명과학이 독자개발의 성과를 누렸지만, 시벡스트로는 큐비스트의 전신인 트리어스와 끝까지 공동개발해 동아에스티는 기술료 650만 달러와 연매출 5~7%의 로열티, 한국 시장에서의 판권을 가져오는 데 그쳤다.

    이번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계약도 앞의 2건과 마찬가지로 공동개발하는 경우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노피와의 계약을 살펴보면 한미약품은 계약금 4억 유로를 받은 뒤 임상개발, 허가, 상업화 단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35억 유로(약 4조3400억 원)를 받고, 제품 출시 이후 판매 로열티를 별도로 받는다. 얀센과도 계약금 1억500만 달러(약 1160억 원)를 받은 뒤 단계별로 8억1000만 달러(약 9300억 원)를, 제품 출시 이후 두 자릿수 퍼센트의 판매 로열티를 받을 예정이다.

    한미약품이 약정 금액을 모두 받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계약금은 미국 공정거래법상 기술수출 승인이 끝나면 통상 1~2개월 후 받을 수 있다. 또한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임상시험이 실패할 경우 허가, 상업화 등 후속 단계에서 지급될 금액도 날아가게 된다. 따라서 아직까지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이처럼 신약 개발을 독자적으로 끝까지 가져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위험·장기투자 산업이기 때문이다. 2013년 발표된 미국제약협회 자료에 따르면 신약 1개를 개발하기 위해 12억 달러(약 1조3800억 원)가 투자되고, 평균 10~15년 이상 긴 연구개발 기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개발에 성공할 경우 제약사는 평균 15년간 독점 판매권을 가지며 투자비 5배 이상의 순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큰 수익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에 열을 올린다. 지난해 유럽집행위원회에서 발표한 ‘2014 유럽연합 산업별 R·D(연구개발) 투자 순위(The 2014 EU Industrial R·D Scoreboard)’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대 다국적 제약사의 총 연구개발비는 494억8000만 유로(약 61조5135억 원)로 전 세계 제약사 연구비의 51.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1위 노바티스는 71억7400만 유로(약 8조9187억 원)를 투자했고 로슈 70억7600만 유로, 존슨앤드존슨 59억3400만 유로 순이다.

    이에 비하면 국내 제약사들의 연구개발비는 미미한 수준이다. 2014년 국내 상장 제약사 전체 연구개발비 9501억 원은 세계 1위 제약사 노바티스의 연구개발비 8조9187억 원과 비교하면 10%에 불과하다. 신약 개당 평균 1조 원이 넘는 개발비가 장기간 투자되는데, 많아야 한 해 매출 5000억 원을 올리고 매출액 대비 7~8%를 투자하는 국내 제약사 처지에서 신약 개발은 이뤄내기 힘든 과제다.

    이 때문에 국내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비교적 건강한 사람 20~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상 1상’ 단계를 마치면 통상 100~2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상 2상’ 단계나 환자 수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임상 3상’ 단계부터는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수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미약품이 사노피와 계약한 퀀텀프로젝트의 경우 3개의 파이프라인이 각각 임상 2상 완료, 임상 1상 진행, 임상 1상 진입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보통 임상 3상까지 진행하고 전 세계 시장에서 제품화를 하려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 국내 제약사는 이를 감당하지 못해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수출을 하고, 다국적 제약사도 개발비 절감 차원에서 임상 1상이 끝나 상품성이 보장된 파이프라인을 사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순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글로벌지원팀장은 동아에스티의 항생제 신약 시벡스트로를 예로 들면서 “시벡스트로는 동아에스티가 다국적 제약사와 임상 2상부터 협업한 뒤 미국 FDA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이는 1000억 원 이상 들어가는 미국 현지의 대규모 임상시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임상 2상은 전 세계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해낼 수 있는 국내 제약사는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가 신약 개발 과정에서 기술수출을 단행하는 데는 연구개발비 부족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신약 개발 속도전에서 다국적 제약사를 이길 국내 제약사가 없는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전 세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임상시험의 경우 경험이 풍부해야 결과도 빨리 얻을 수 있다. 설령 국내 제약사가 돈을 빌려 독자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다 해도 시행착오는 겪을 수밖에 없다. 다국적 제약사는 글로벌 임상 부분에서 각종 데이터와 노하우를 갖고 있고 시행착오 없이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신약은 출시 시기도 중요한데 늦어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는 동안 노하우를 가진 다국적 제약사가 먼저 치고 나갈 수 있다는 것. 그는 “한미약품과 계약한 사노피는 당뇨 분야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거대 제약사다. 만약 한미약품이 독자적으로 신약 개발을 이어갔다면 사노피를 경쟁 상대로 놓고 싸워야 했을 것이다. 이 경우 승산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노피의 지난해 매출은 400억3700만 달러(약 46조2828억 원)로 한미약품의 지난해 매출 5820억 원의 약 77배에 달한다.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판매망을 갖추지 못한 것도 주원인으로 꼽힌다. SK케미칼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도 신약 개발을 어떻게든 독자적으로 할 수 있지만 글로벌 마케팅 수준은 다국적 제약사에 못 미친다. 세계 제약시장의 40%를 차지하는 북미시장에서 신약을 판매할 수 있는 국내 제약사는 없다. 이 때문에 글로벌 마케팅에서의 ‘리스크 헤지(위험성 제거)’를 위해서라도 기술수출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도 “글로벌 판매에 들어갈 때는 각 국가별로 판매 승인을 받아야 하고, 판매 네트워크도 갖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간다. 현실적으로 국내 제약사가 독자적으로 글로벌 판매까지 하기란 무리”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시장에서 약가가 지나치게 낮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약가는 일괄적으로 인하정책이 시행되고 있어 수익성이 현저히 낮다. 제약사로선 신약 개발에 투자할 돈이 쌓이지 않는다. 힘들게 신약을 개발해도 정책적으로 판매가를 낮춘다면 손익분기점은 뒤로 더 늦춰질 수밖에 없다. 또 해외 수출 시 수출국의 판매가를 기준으로 자국 판매가를 정하는 나라가 많은데 국내 약가가 싸서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신약 수출 대박에도 웃지 못하는 까닭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사들이 기술수출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글로벌 판매망을 구축한다면 글로벌 제약사 탄생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한미약품 연구실 모습.

    기술수출은 글로벌 제약사 도약 과정

    그러나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3년 내놓은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분석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의 평균 판매 관리비는 2012년 기준으로 매출액의 34.8%로 나타났는데 이는 일반 제조업의 3배 수준이다. 이 비용은 의약품 최종선택권을 가진 처방 의사, 즉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판촉활동에 주로 쓰인다. 제약사들이 매출액의 7~8%만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현실에서 한국제약협회의 “약가가 싸기 때문에 신약 개발에 쓸 비용이 모자란 것”이란 주장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약가 인상 필요성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제약산업 발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민 건강 문제와 직결된 약가 문제는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가 신약 개발 도중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수출을 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차후 임상시험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는 없을까. 이 부분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협의를 통해 임상시험을 진행하지만 주도권은 다국적 제약사가 갖게 된다. 글로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노하우가 필요한데 실질적으로 국내 제약사들은 이를 배워야 할 처지”라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사실 국내 제약사에게 글로벌 제약시장 대상의 독자적 신약 개발을 주문하는 것은 초등학생에게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내 제약산업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한미약품이 올해만 5건의 기술수출을 이뤄낸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들이 기술수출로 글로벌 신약 개발 경험을 축적한다면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제약시장은 이제 막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는 단계다. 지금은 기술수출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매출 10조 원 규모의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하려면 일단 세계 50위권 규모로 성장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미 의약품산업의 성장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다. 2013년 정부는 제약산업 육성·지원위원회(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심의를 거쳐 ‘새정부 미래창조 실현을 위한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까지 세계 7대 제약강국 도약을 목표로 △R·D 확대를 통한 개방형 혁신 △제약-금융의 결합 △우수 전문인력 양성 △전략적 수출 지원 △선진화된 인프라 구축 등 5대 핵심 과제를 포함한다.

    그러나 정부 지원을 받고 국내에서 연구한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을 해외 다국적 제약사 측에 기술수출하는 것은 당초 취지와 맞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임채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 사무관은 “기술수출 계약 때 한국 판권은 대부분 국내 제약사가 가지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이번 한미약품 경우에도 신약 개발 이후 한국과 중국의 판권을 갖게 된다. 기술수출을 해도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에 역수출해 국내 판매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술수출도 국내 신약 개발 건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 기술수출을 ‘긍정적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임 사무관은 “우리나라 신약 개발 역사는 10여 년에 불과한 반면 다국적 제약사는 10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제약사들은 지금 발전하는 과정에 있고, 계속해서 해외 기술력을 습득하는 단계를 거치면 글로벌 제약사도 탄생할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신약 개발을 지원하는 계획은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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