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3

2015.11.16

총선 향한 청와대 독주 관전법

고인 물 두고 새 물 뺀다?…외연 확대보다 ‘배신의 정치’ 심판에 무게

  •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taegonyoun@gmail.com

    입력2015-11-16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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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향한 청와대 독주 관전법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청와대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20대 총선을 5개월 앞둔 11월 둘째 주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으로 시작됐다. 정 장관은 일요일인 11월 8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근래 내 거취와 관련해 여러 의견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국정운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이 시점에 사의를 밝히는 것이 옳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8월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총선 필승’ 건배사로 논란을 빚은 후 “출마 생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진로를 수정한 것이다. 정 장관의 사의 표명에 대해 총선용 개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11월 9일 월요일, 친박(친박근혜) 핵심 재선의원인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상 빈소에서 “대구지역 시민들이 똑똑하다. 내가 초선일 때 대구 의원이 7명 물갈이됐다”고 말했다. 유승민 및 그와 가까운 의원들에 대한 노골적 압박이라는 해석, 상갓집의 금도를 범했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그리고 10일 화요일, 박근혜 대통령이 못을 박았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제 국민 여러분도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달라”며 “앞으로 그렇게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명확한 기조, 분명한 전략, 독보적 실행력

    동원령은 이미 떨어졌다. 16개 부처 가운데 최근 사퇴한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유일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포함하면 7명이 직간접적으로 총선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수석과 비서관, 행정관급 인사, 전직 국가정보원 차장, 감사위원, 인권위원, 공기업 간부들도 그 명단에 포함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거구 재획정안도 마무리 짓지 못했고 공천 룰도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레이스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홀로 달리고 있다. 현재 명확한 기조, 분명한 전략, 독보적 실행력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곳은 청와대뿐이다.



    이러다 보니 비판이 쏟아지지 않을 수 없다. “국정은 뒷전이고 선거만 신경 쓰나” “자기 사람만 챙기나” 같은 이야기가 진보, 보수를 막론한 언론의 단골 레퍼토리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당도 입을 비죽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는 “그렇다. 이번 총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선거다. 박 대통령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대답하는 분위기다. ‘역풍을 감수하겠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분명한 전략인 셈.

    임기 중 치르는 총선에 대통령이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을 키워서 총선에 내보내는 것도 상례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과거와 상당히 다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나 내각에서 경력을 쌓은 인사들을 영남권 공략의 선봉장으로 삼았다. 접전지, 적진에 힘을 쏟았고 당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박 대통령 주위 인사들은 주로 대구·경북(TK), 서울 강남권 등 이른바 여권 강세지역에 집중 투하되고 있다. 여당 소속 의원들의 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얼굴’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유 전 원내대표의 부친상 빈소에 대통령 명의 조화가 가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혹여 언론과 국민이 ‘화해의 제스처’로 ‘오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화를 보내지 않은 데는 ‘나는 유승민을 용서하지 않았다. 특히 대구·경북에 미래권력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선거는 내 이름으로 치를 것이고 내가 승리할 것이다’는 명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이 있다. 실은 새누리당의 영남 물갈이, 새정치민주연합의 호남 물갈이는 상수다. 지역구도에 안주해 선수를 쌓고 중앙무대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내보낸 뒤 참신한 이미지를 갖춘 신진들을 그 자리에 채워왔다. 그런데 청와대의 이번 물갈이 시도는 오히려 초선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진박’의 유효기간

    대구는 국회의원 12명이 전원 새누리당이고, 그 가운데 5명이 다선의원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이한구 의원을 제외하면 유승민, 서상기, 주호영, 조원진 의원이 남는다. 여기서 가장 위태로운 사람은 차기 주자로까지 꼽히는 유승민 의원이고, 초선 7명의 공천도 보장할 수 없다. 그중 행정고시를 합격한 경제관료 출신 3명과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의원 1명에게 경쟁자가 몰리고 있다. 이들은 언론이나 동료 의원들로부터 대체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발탁해 가산점까지 줘가면서 지난 총선에 공천한 사람도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었다. 고인 물은 두고 새 물을 빼는 독특한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유승민과 가깝다’는 평판.

    이런 식이면 역풍이 불 수밖에 없다. 지역으로 보면 수도권에서 여당에 불리한 여건이 조성될 테고 계층으로 보면 교과서 문제로 이미 흔들린 중도층의 이반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다. 외연을 확장하고 중도층을 공략해 정권 재창출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여당의 선거 전략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청와대는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뒤따르겠지만 총선을 새누리당 선거가 아니라 박근혜 선거로 본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 모르겠다. 새누리당 전체 의석수라는 분모보다 ‘진박’(진짜 박근혜)계라는 분자의 숫자가 중요하고, 분모에 대한 분자 비중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청와대의 기획은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대구·경북지역에서 박 대통령 지지층이 무섭게 결집하고 있다. 한 신문의 11월 10일자 대구 현지 르포 기사 제목은 ‘“대통령이 찍으라카면 다 찍어줄기다” 대구 가보니…’였을 정도다.

    총선 이후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 차기 대권주자군의 다양화를 언급한 지 한참 됐다. 홍문종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20대 총선이 끝난 이후 개헌을 해야 된다는 것이 지금 현재 국회의원들 생각이고 국민의 생각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다”며 이원집정부제 개헌까지 언급했다. 모두 대통령의 임기 끝까지, 그리고 임기 후에도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들이다. 박 대통령이 독주하는 현 정국을 보면 가능성이 적잖아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의 희망이었지만 최종적으론 무산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 ‘가박’(가짜 박근혜)으로 지목된 사람 모두 1~2년 전까지 ‘친박’이라 불리던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번에 금배지를 달게 될 ‘진박’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일지가 관건인지 모른다. 이번 총선 이후엔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할 기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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