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8

2015.10.12

명장 김경문의 선 굵은 야구 통했다

NC 창단 3년 만에 정규리그 2위, 500승 위업…한국시리즈 우승컵만 남았다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donga.com

    입력2015-10-12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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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장 김경문의 선 굵은 야구 통했다

    9월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 경기가 열렸다. 17-5 대승을 거둔 후 NC 김경문 감독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KBS 2TV 인기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남긴 개그맨 박성광의 유행어다. 스포츠에서 준우승은 종종 ‘아름다운 2등’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오래 기억되는 것은 역시 1등이다.

    김경문(57·NC 다이노스) 감독. 그는 2000년대 중·후반 두산 베어스를 강팀 반열에 올린 주역이다. 야구장 특성에 팀 전력을 맞춘다는 기발한 전략이 걸작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과 비교해도 외야가 매우 넓은 편에 속하는 서울 잠실야구장은 투수 친화적인 야구장이다. 반면 홈런 타자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 김경문 감독은 홈런 타자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안타를 치고 2루까지 뛸 수 있는 발 빠른 외야수를 집중 육성했다. 잠실야구장이 넓어 홈런은 어렵지만 2루타, 3루타는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착안한 선택이었다. 발 빠른 외야수들은 타석에서 한 베이스를 더 가는 타격을 했고 수비 때는 반대로 상대 팀의 장타를 막아냈다.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코치 시절 김경문 감독의 잠실야구장 맞춤 진법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취임 이후 잠실야구장과는 정반대로 홈런 타자에게 유리한 목동야구장을 최대한 활용해 강팀을 만들었다. 장타자를 키웠고, 투수의 경우 투심 패스트볼을 잘 던져 땅볼을 유도해 홈런을 최대한 피하는 선수를 선택하는 데 집중했다. 김경문 감독과의 잠실야구장 성공 사례를 모델 삼아 목동야구장에서 정반대 전략을 구현한 셈이다.

    김경문 감독은 2013년 신생팀 NC를 맡아 1군 데뷔 2시즌 만인 지난해 팀을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끌었다. 3번째 시즌인 올해는 페넌트레이스 2위까지 이끌었다. 김 감독의 주요 이력 가운데 하나인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제외하고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 성적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명장이라 부를 만하다.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 주역

    그러나 그는 한 번도 1등을 하지 못했다. 감독으로 유일한 우승은 KBO가 아닌 올림픽에서였다. 한국시리즈에서 수차례 명승부를 펼쳤지만 그가 몇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몇 차례 준우승을 했는지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기 때문일까.

    김경문 감독은 특유의 야구 색깔로 인기가 높다. 한국 프로야구 지도자 가운데 가장 메이저리그 스타일에 가까운 선 굵은 야구를 한다. 또한 매우 빠르다. 마산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NC 지휘봉을 잡은 후 홈런 타자가 팀 공격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빠르고 공격적인 시원시원한 야구를 펼친다. 최근 NC는 다른 팀에서라면 1번을 맡을 수 있는 이종욱, 박민우 등 발 빠른 타자를 1번에서 3번까지 연속 배치하고 있다. 출루율과 주루 능력을 극대화하는 진법으로 3번부터 장타자가 나오는 다른 팀과 차별성이 있다. 포스트시즌 단기전이라도 자신의 뚝심을 밀고 나가는 소신이 강하다.

    번트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경기 중반까지 강공을 즐긴다. 경제적인 득점 면에서는 손해지만 선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고 경기를 보는 팬으로서도 시원시원하다. 왼손 투수가 나오면 오른손 타자를 선택하는 플래툰 시스템도 싫어한다. 올 시즌 NC는 타자 9명이 규정타석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상대편 선발투수가 왼손이어도 고집스럽게 좌타 라인 출장을 보장한 결과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김 감독의 개성이 페넌트레이스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다양한 작전과 심리전, 변칙 플레이까지 등장하는 치열한 전장 포스트시즌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실제로 2014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오른 NC는 4위 LG 트윈스에 1승3패로 패하며 탈락했다. 팀에 에이스 찰리 쉬렉이 있었지만 창단 첫 포스트시즌 경기를, 그것도 홈 마산야구장에서 치른다는 상징성을 고려해 팀의 미래이자 국내 투수인 에이스 이재학을 선발 출장시켜 1차전을 내준 영향이 컸다. 지극히 김 감독다운 결정이었지만 결과는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4위 경쟁을 한 LG에게 패배한, 시리즈 탈락이었다.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김 감독이기 때문에 택할 수 있는 승부법이었고, 그러한 뚝심은 왼손 투수에게 왼손 대타 카드를 꺼내 대성공을 거둔 베이징올림픽에서처럼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라며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전문가도 많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50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은 정확히 10명이다. 김영덕, 김응용, 강병철, 김인식, 김재박, 이광환, 선동열 감독이 500승 이상을 달성했다. 현역 감독 중에는 한화 이글스 김성근, kt 위즈 조범현, NC 김경문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10명의 500승 감독 가운데 9명은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아직 김 감독만 우승을 하지 못했다.

    명장 김경문의 선 굵은 야구 통했다

    2008년 8월 23일 중국 우커송야구장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한국 대 쿠바의 야구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김경문 감독과 선수들이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500승 감독의 자존심

    감독으로 500승 이상을 올렸다는 것은 장시간 강팀을 지휘했다는 지표다. 프로야구에서 감독은 성적이 따르지 않으면 단명할 수밖에 없다. 두산 사령탑 시절인 2004년부터 2011년까지 2006년과 2011년 단 두 시즌을 빼고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2005, 2007, 2008년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다. NC에서도 1군 데뷔 시즌이던 2013년을 제외하고 올해까지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아직 우승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항상 강력한 상대와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두산은 김 감독 재임 시절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에 비해 전력 보강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팀이 아니었다. 2005년 첫 번째 한국시리즈 진출 당시 만난 삼성은 당시 1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심정수와 박지만을 영입하는 등 전력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두산은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힘의 차이는 컸고 두산의 4연패로 시리즈가 끝났다.

    김 감독의 두 번째 한국시리즈는 2007년이었다. 역시 2위로 시즌을 끝냈고, 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두며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한국시리즈를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 SK는 강했다. 조범현 전 감독이 4년 동안 최정, 정근우, 김강민 등을 집중 육성했고, 그해 SK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신인 김광현을 중용하며 팀 전력을 키웠다. 두산은 에이스 대니얼 리오스의 활약으로 1~2차전을 먼저 이겼지만 나머지 4경기에서 내리 지며 허망하게 우승을 내줬다. 김 감독은 2008년 SK를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만났지만 가까스로 1차전을 이긴 뒤 다시 4연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김 감독은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다시 자신의 팀을 2위로 끌어올리며 시즌을 마쳤다. 신생팀이 3시즌 만에 거둔 성적이기 때문에 이미 큰 성공이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라는 더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KBO 리그 포스트시즌의 특성상 2위 팀은 3~5위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플레이오프 1차전은 10월 21일 시작된다. NC는 약 2주 동안 휴식과 보강 훈련을 할 수 있다. 만약 5전 3선승제 플레이오프를 3연승으로 끝내면 나흘 쉬고 삼성과 한국시리즈 1차전을 치른다. 전력을 추스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김 감독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 도전은 플레이오프가 얼마나 빨리 끝나느냐가 1차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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