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7

2015.10.05

가족의 위기? 문제는 제도다

이혼율·혼외 출산 심각한 선진국에서 여전히 가족이 ‘중심축’인 이유

  •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5-10-05 11: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가족의 위기? 문제는 제도다
    만나면 즐겁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족은 서로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아이들 때문에 골머리 썩기도 하는 곳이다. 시집식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추석 명절 뒤끝에 나온 말이 아니다. 9월 26일 ‘2015 세계 천주교 성가정대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가족은 일종의 기적이고 “희망의 공장”이며 “하느님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랑과 위대함을 가족에게 주었다”고 교황은 역설했다. 신을 믿지 않는 독자라도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라면 우리가 그 어느 나라 못지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족 구조는 크게 변화하고 있고, 많은 이가 가족의 위기를 말한다. 왜 한국에서 가족이 위기인가.

    지금 노년층은 세 가지 가족 구조를 경험하고 있다. 그들은 대가족하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자랐지만 장년이 됐을 때는 핵가족을 형성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노년층 피부양 대상이 되자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대가족이 전체 가구의 19%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5%를 조금 넘는다. 반면 1인 가구 비율은 70년대 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5%가 넘는다.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계층은 20대 젊은 남성과 60대 이상 나이 든 여성이다. 한국의 가족 구조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통계만 보면 미국, 덴마크가 더 심각

    구조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가족은 형성 위기와 해체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나타내는 조혼인율은 1980년 10.6명에 달했지만 2014년에는 6.0명으로 40% 줄었다. 혼인율 저하는 출산율 저하와도 맞물려 있다. 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총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은 70년대 4.53이던 것이 현재 1.21로 떨어져 4분의 1로 줄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세대’는 한국 사회 가족 형성의 위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형성은 지체되는데 기존 가족은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가족 해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는 이혼이다.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를 의미하는 조이혼율은 2014년 현재 2.3명이다. 1970년대 0.4명이던 것이 6배 증가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이혼율은 높은 편이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9위다.

    눈여겨볼 부분은 가족 구조의 변화, 혼인율과 출생률의 저하, 이혼율 증가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OECD 회원국의 혼인율은 지난 40년간 한국과 마찬가지로 40% 줄었다. 같은 기간 OECD 회원국 전체의 이혼율은 2배 가까이 뛰었다. 예전보다 낮아졌지만 한국의 혼인율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높은 편이다. 앞서 봤듯 이혼율이 OECD 회원국과 비교해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높은 혼인율의 반작용이기도 하다.

    ‘경향신문’은 9월 25일자 보도에서 소득별 삶의 질을 짚으며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은 가족 중심의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예로 든 국가가 미국과 덴마크다. 하지만 통계 수치로만 보면 미국과 덴마크의 가족은 한국보다 더 심하게 훼손돼 있다. 먼저 두 나라 모두 이혼율이 한국보다 높다. 대통령과 정치인이 매일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미국의 이혼율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덴마크에서는 모든 결혼의 절반이 이혼으로 끝난다. 이들 국가는 혼인율도 한국보다 높지 않다.

    좀 더 살펴보자. 미국에서는 절반 가까운 신생아가 혼인과 관계없이 태어난다. 덴마크에서는 60%의 신생아가 혼외 출산이다. 한국에서는 혼전 임신 상당수가 결혼으로 연결되고, ‘속도위반’이 연예뉴스의 가십이 된다. 하지만 우리 상식과 달리 미국에서는 출산과 혼인이 분리돼 있다. 20대 초반 여성 중 남성 파트너와 같이 사는 비율이 54%인데, 그중 동거 없이 결혼해 가정을 이룬 비율은 20%, 동거 후 결혼한 경우는 20%, 나머지 60%는 현재 동거 중이다. 동거 기간에 자녀가 생겼음에도 5년 내 관계가 끝나는 경우는 40%에 달한다. 1990년대 이후 여성의 평균 첫 출산연령은 평균 첫 혼인연령보다 높다. 출산이 더는 혼인한 가족 내에서 이뤄지는 인생의 중요 사건이 아니라는 의미다. 결혼보다 출산을 먼저 한다. 남녀 모두 출산과 혼인을 분리된 생애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구조 변화 발맞춘 혁신이 관건

    통계 수치만 놓고 보면 미국과 덴마크의 상황이 더 나쁜데도, 도대체 왜 한국의 가족제도는 위기를 맞고 있고 이들 국가에서는 가족이 삶과 생활의 중심축이라고 인식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미국과 덴마크에서는 변화된 가족 구조를 정상적인 가족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각 가족 구성원이 그에 걸맞은 구실을 수행한다. 반면 한국은 새로운 가족 구조에 걸맞은 관계와 개인의 구실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미국 역시 1960년대만 해도 이혼과 혼전 임신을 가족의 큰 수치로 여겼다. 이혼녀와 미혼모는 가족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고립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미국의 많은 중산층은 이혼 후에도 각자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제구실을 충실히 이행한다. 이혼 후 새로운 가정을 이루더라도 이전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와 정기적으로 만나고 교류한다. 생부나 생모가 원하는데도 이혼 후 자녀를 전혀 만나지 않는 경우는 제도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이혼 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자녀를 데리고 이민 가는 것도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이혼으로 자녀가 부모 가운데 한쪽과 관계가 단절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고, 새로 형성된 가정에서 파트너는 이를 지원한다. 이혼은 부부 관계의 파탄일 뿐 부모-자식 관계는 유지된다. 재혼한 부모와 그 자녀, 그리고 이전 혼인 관계에서 생긴 자녀가 한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또한 미국과 덴마크에서는 동성결혼이 합법이다. 덴마크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이후 결혼율이 높아지고 이혼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동거 기간 없이 결혼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동거는 가족의 중요 형태가 됐다. 이들 국가에서 가족이 삶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족 구조와 형태의 다양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혼인율 저하, 이혼율 증가, 1인 가구 증가, 혼외 출산 증가는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가족 구조와 형태의 변화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줄어드는 현상이 아니라, 경제 발전과 더불어 증가하는 현상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에 이 경향이 반전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모든 사회에서 가족 구조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다른 나라의 사례가 제시하는 교훈은, 가족의 위기는 구조와 형태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에 발맞춰 제도와 규범을 바꾸지 않을 때 초래된다는 사실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