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7

2015.10.05

해도 너무한 법무부 사과 없이 홍보만…

‘이태원 살인사건’ 패터슨 송환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5-10-05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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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도 너무한 법무부 사과 없이 홍보만…

    9월 23일 미국으로 도주한 지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된 ‘이태원 살인사건’의 주역 아서 존 패터슨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의 실제 주역인 아서 존 패터슨이 9월 23일 국내로 송환됐다. 사건 발생 18년 만에 35세 나이로 한국 공항에 다시 나타난 그는 여전히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이 사건은 1997년 4월 3일 밤 10시쯤 서울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세) 씨가 흉기로 수차례 찔려 숨지면서 벌어졌다.

    18년의 세월, 날벼락처럼 아들을 잃은 피해자의 부모와 친지들에겐 너무도 가혹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유죄판결을 위한 증거 확보에 주력해야 할 때다. 지금 되새겨보면 그 기나긴 세월 동안 국가와 우리는 무엇을 했나 싶다. 당시 살인사건 현장에는 숨진 조씨와 유력한 용의자 패터슨, 그리고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 등 단 3명뿐이었다. 당연히 범인은 패터슨 또는 에드워드 리 둘 중 한 명이다. 검찰도, 법원도, 심지어 양 당사자도 그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단지 서로를 지목하며 그가 범인이라고 떠넘겼던 것이다.

    검찰은 둘 가운데 덩치가 큰 에드워드 리를 살인범으로 지목했고 수사를 잘했다고 자화자찬하며 패터슨에게는 흉기 소지 및 증거 인멸에 따른 죄만 물었다.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일을 저질렀다고 고백한 뒤 체포 전 피 묻은 옷을 갈아입었던 패터슨은 1998년 1월 2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자 상고를 포기했고, 거듭 패터슨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던 에드워드 리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99년 9월 30일 무죄가 확정됐다.

    그사이 패터슨은 수감 태도가 좋다는 이유로 형집행 정지를 받아 1998년 8월 15일 천안소년교도소를 나왔다. 법원에서 진범이 누구인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당시 법무부는 외국인 수형자 77명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일괄적 형집행 정지에 패터슨을 포함시켰다. 이렇게 그가 석방된 3개월 후 유족은 그를 살인 혐의로 고소했고 이는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로 이어졌다. 그런데 담당 검사가 인사 이동을 앞두고 3개월마다 출국금지 기간을 다시 연장해야 한다는 것을 깜빡한 사이, 이틀의 공백을 놓치지 않은 패터슨은 유유히 미국으로 떠났다.

    이러한 무능과 무성의에 망연자실한 조씨 부모는 국가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에서 거듭 패소했고, 2005년 9월 9일 대법원에 가서야 위자료로 1500만 원씩을 배상받았다. 유족은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2억여 원의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도 받았다. 하지만 둘 다 외국에 있으니 실제 배상으로 이어지긴 어렵다. 진범에 대한 처벌은커녕 실효성 없는 종이만 손에 쥔 꼴이다.



    우리 법무부는 2009년 10월 15일 미국 법무부로부터 패터슨 관련 정보를 전달받았다. 그가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검찰과 법무부는 이때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연말이 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일의 진척을 문의하자 범죄인 인도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은 2012년 10월이 돼서야 패터슨을 한국으로 송환하라고 판결했으며, 그 직후 패터슨이 제출한 인신보호청원 역시 2013년 6월 기각했다. 이번 송환이 가능했던 것은 패터슨이 실수로 상고하지 않은 사이 송환 판결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패터슨이 16년간 자유를 누린 배경에는 우리 정부의 거듭된 실수와 무능, 무성의한 탁상행정이 있었다. 우리 정부는 매번 결정적 순간을 놓쳤고 패터슨은 그 틈에서 요행을 누렸다. 이제 와서 법무부는 ‘극적 사법공조’의 개가라며 홍보했지만 유족이 겪은 18년간의 고통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국가는 누구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깊이 성찰해야 할 사건이다. 다시 한 번 조중필 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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