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부자 50%, 빈자 2.5% 주는 이상한 연금

복지 시스템 엉망인 브라질 10월 대선 치러… 차기 대통령 과제는 정치안정과 연금개혁

  • 입력2018-10-02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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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의 주요 대선후보. 왼쪽부터 자이르 보우소나루, 시루 고미스, 페르난두 아다드, 제라우드 아우크민, 마리나 시우바. [사진 제공 · 다타폴랴]

    브라질의 주요 대선후보. 왼쪽부터 자이르 보우소나루, 시루 고미스, 페르난두 아다드, 제라우드 아우크민, 마리나 시우바. [사진 제공 · 다타폴랴]

    축구의 나라 브라질은 말 그대로 자원의 보고다. 철광석과 알루미늄 생산량은 세계 2위이고 흑연 세계 3위, 질석 세계 4위, 마그네사이트 세계 5위, 망간 세계 7위 등 주요 광물이 매장돼 있다. 특히 2007년과 2008년 대서양 연안의 상투스만 심해에서 대규모 유전과 천연가스전이 각각 발견되면서 세계 10위 산유국이 됐다. 브라질은 또 매년 3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수출하는 농업국이다. 국토 면적은 870만km2로 우리나라의 85배이며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5위다. 남미 대륙에서는 전체 면적의 47%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1억8933만 명으로 세계 5위다.

    ‘물구나무 선 로빈 후드’ 정책

    감옥에 수감된 룰라(왼쪽)와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위). 브라질 상투스만 해저 유전에서 원유를 추출하는 해상 기지의 모습. [사진 제공 · Agencia Brazil, 페트로브라스]

    감옥에 수감된 룰라(왼쪽)와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위). 브라질 상투스만 해저 유전에서 원유를 추출하는 해상 기지의 모습. [사진 제공 · Agencia Brazil, 페트로브라스]

    이 같은 엄청난 자원 보유에도 브라질 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일사분기 0.1%에 이어 이사분기에도 0.2%에 그쳤다. 지난 3년간 경제성장률을 보면 2015년 –3.5%, 2016년 –3.46%에 이어 2017년 1%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7월 올해 브라질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1.8%로 낮췄다. 브라질 경제가 나빠진 이유는 국내 정치 혼란과 포퓰리즘 때문이다.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은 2016년 8월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추고자 국영은행의 자금을 불법 전용하는 등 정부 회계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탄핵됐다.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물려받았지만 정국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룰라) 전 대통령의 후계자인 호세프 전 대통령은 2011년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지만 방만한 재정확대 정책으로 브라질 경제를 망가뜨렸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호세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1400만 빈곤가구에 현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브라질 경제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하게 됐다. 테메르 대통령은 지난해 정부 지출 규모를 축소하고자 공공부문 일자리 6만 개를 줄이고 연방정부 공무원 임금을 1년간 동결하는 등 개혁을 추진했으나 노조의 반대 시위에 밀려 후속 개혁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이런 가운데 10월 7일(1차 투표)과 28일(결선투표) 실시되는 대선에서 브라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후보가 당선될지 여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브라질 통화 헤알화의 최근 가치는 1994년 이후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국가부도 위험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82bp를 기록해 1월 140bp에서 2배 이상 올랐다. 국가신용도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CDS 프리미엄이 상승했다는 것은 국가부도 위험이 커졌다는 뜻이다. 브라질 시장조사업체 툴레 프레봉의 페르난두 몬테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 추세가 계속되면 브라질 경제의 10년 평균 성장률이 100년 만에 가장 저조한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라질 경제가 골병이 든 것은 ‘물구나무 선 로빈 후드’ 정책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세 영국의 의적 로빈 후드는 부자로부터 돈을 빼앗아 빈자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브라질 정부는 방만해진 공공부문과 잘못된 복지제도로 빈자로부터 돈을 빼앗아 부자에게 나눠주고 있다. 실제로 복지지출 총액 중 50%가 소득 상위 20%에게 가고, 하위 20%에게 주는 돈은 전체의 5%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국가연금제도다. 소득 상위 20%에게 연금 지급 총액의 53%가 돌아간다. 반면 하위 20%에게 지급되는 돈은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 퇴직 판사가 수령하는 연금은 월평균 1만8065헤알(약 481만 원)이고, 퇴직 국회의원의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2만6823헤알(약 714만 원)에 달한다. 브라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6389헤알(약 968만 원)이다. 판사와 국회의원의 월평균 연금 수령액이 브라질 국민의 연평균 소득보다 많은 것이다. 이 때문에 브라질 전체 세수의 3분의 1 이상이 연금 지급에 투입되고 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라질 경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2003~2016년 집권했던 노동자당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룰라와 호세프는 2003~2010년과 2011~2016년에 각각 집권했다. 부패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룰라는 대권에 다시 도전하려고 옥중 출마까지 시도하다 결국 포기했다. 브라질 연방선거법원은 8월 31일 룰라의 대선후보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룰라는 1월 2심 재판에서 뇌물수수 등 부패 행위와 돈세탁 등 혐의로 12년 1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룰라는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브라질 국민은 룰라가 집권하던 시절 경기호황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호황은 원유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의 폭등 때문이었다. 룰라는 경기호황 덕에 각종 복지정책을 확대했다. 룰라의 출마 포기에 따라 노동자당은 대선후보로 페르난두 아다드 전 상파울루 시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당선 여부는 불확실하다.

    4%p 이내 박빙 승부

    브라질 대선은 현재 5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극우성향인 사회자유당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노동자당의 아다드,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 지속가능네트워크의 마리나 시우바, 사회민주당의 제라우두 아우크민 후보 순으로 1~5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다드 후보가 룰라의 후광에 힘입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차지할 후보가 없을 것으로 보여 결선투표까지 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타폴랴 등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1위를 달리는 보우소나루 후보와 다른 주요 후보 4명이 각각 결선투표를 치를 경우 모두 4%p 이내 박빙 승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선투표에서도 부동층이 20%에 달할 것으로 보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갯속에 빠진 브라질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차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국을 안정시키고 재정적자 축소와 연금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브라질 경제는 정치 리스크에 번번이 발목 잡혀왔다. 부패와 포퓰리즘을 단절할 지도자를 브라질 국민이 선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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