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5

2018.09.12

법통팔달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아쉬운 점

  • 입력2018-09-11 1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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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농단’ 수사가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법원이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청구를 대거 기각함으로써 난항을 겪는 중이다. 압수수색 영장은 거의 예외 없이 법원이 발부했으며, 이는 법원과 검찰 사이에 이뤄져온 오랜 관행이다. 법관 시절 필자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영장 유효기간을 조금 제한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그 지역 법원과 검찰 내에서 큰 소동의 원인이 됐을 정도다. 

    그럼에도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서는 영장 발부가 예외적인 일이 돼버렸다. 더욱이 법원 측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영장을 청구하는 것인데, 법원이 내세우는 단골 기각 사유가 ‘임의제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이다.
     
    여기서 적잖은 사람이 대법원장에게 눈을 돌린다. 왜 대법원장은 사법농단과 사법적폐에 대한 원활한 수사를 위해 관련 증거를 검찰에 자진 제출하라고 지시하지 않을까. 검찰은 현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을 제외한 사법정책실, 지원실 등의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부 기성세력의 ‘일원’

    김명수 대법원장(맨 앞). [동아DB]

    김명수 대법원장(맨 앞). [동아DB]

    한쪽에서는 대법원장을 감싸는 태도를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옹호한다. 또 법원 판사들 사이에서 나오는 발언을 보면 “이러다 검찰이 법원의 멱살을 잡을 것” “(수사가 계속되다가는) 법원이 무너진다” 등 조직 방어 논리가 짙게 깔려 있다. 대법원장의 모호한 태도는 이 같은 판사들의 인식 때문일까. 

    김 대법원장은 새 정부의 사법개혁 의지를 바탕으로 지난해 9월 25일 취임했다. 그러나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취임 후 나타난 가시적 성과는 별로 없다. 

    촛불혁명이 국정농단의 주역들을 몰아내고 문재인 정부를 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의지를 가장 잘 반영할 인물로 김 대법원장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법원 내·외부를 막론하고 큰 신망을 쌓지 못하고 있다. 존재감 자체가 거의 없다. 



    물론 김 대법원장이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 해도, 취임 이후 가장 역점을 두고 설립한 ‘사법발전위원회’의 주축이 법조계 기성세력(establishments)이라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칠레를 제외하고 사법신뢰도가 최하위다. 사법 절차를 악용해 이뤄진 국정농단을 국민의 힘으로 뒤엎은 상황을 감안한다면 미적지근한 개혁으로 일관해선 안 된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의 독립과 함께 사법의 책임이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세계 법학계의 조류를 무시한 채 계속 사법의 독립만 입에 올리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조직의 이익’에서 벗어나는 행보를 보일 수 있을까. 그가 사법부 기성세력의 일원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그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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