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5

2018.09.12

커버스토리

시금치가 金금치 됐네

kg당 3만 원 넘어 … 폭염 · 폭우로 채소 · 과일값 무섭게 올라

  • 입력2018-09-11 11:02:3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9월 4일 오후 1시. 평일 낮 시간임에도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은 장을 보러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넓은 매장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 ‘핫코너’는 무를 파는 매대. 마트 직원들이 강원 홍천 고랭지 햇무인 ‘운두령 무’를 상자에서 꺼내 진열하기 무섭게 카트에 담는 손길들이 분주했다. ‘정부 긴급수매물량 할인행사’ 표지판 옆에는 ‘본 행사의 무 한정수량을 1인 2개로 제한하오니, 고객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바로 옆은 역시 정부 긴급수매물량 할인행사로 판매하는 배추 매대. 벌써 1일 한정수량이 다 팔려나갔는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는 개당 1800원, 배추는 한 포기에 4000원. 인근 대형마트에서 파는 무, 배추의 절반 값이니 사람이 몰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나로마트 직원 채모 씨는 “정부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9월 22일까지 긴급수매물량을 매일 공급하겠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팔고 싶어도 무, 배추 물량이 제대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폭염 탓에 “오이에서도 쓴맛”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같은 날 인근 이마트 양재점에서는 400g가량으로 보이는 시금치 한 팩을 8580원에 팔고 있었다. 이마트 직원 박모 씨는 “2주 전에는 9900원이었다”며 “일주일에 500원씩 떨어지고 있으니, 시금치 값 고공행진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시금치는 제사를 지내야 하는 손님들만 어쩔 수 없이 구매한다”고도 덧붙였다. 저녁 찬거리로 삼겹살을 사러 나왔다는 주부 윤모 씨는 “상추가 너무 비싸 양배추를 대신 샀다”면서 “채소 값이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며 고개를 저었다. 

    채소 · 과일값이 폭등했다. 봄철 이상저온과 7~8월 폭염, 그리고 최근 태풍과 폭우 등으로 작황 사정이 여느 때보다 나빠진 까닭이다. 배추는 1월 포기당 3000원이던 것이 8월 8300원까지 올랐다 정부의 긴급 공급 영향으로 6926원(9월 5일 기준)으로 내렸다. 그래도 평년(4718원) 대비 50% 가까이 비싸다. 농수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대파, 청상추, 파프리카, 당근, 사과, 포도 등의 가격이 모두 올랐다(표 참조). 

    특히 시금치 값 폭등이 두드러진다. 9월 5일 시금치 1kg은 3만1672원으로 전년(1만4234원) 대비 123%, 평년(1만2041원) 대비 163% 올랐다. 뜨거운 햇살에 시금치가 녹아내려 수확량이 크게 감소한 탓이다.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의 한 상인은 “7~8월에는 시금치를 구경조차 못 했다. 추석 지나고 10월은 돼야 시금치를 갖다 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 마포구 한 김밥집 주인은 “시금치가 너무 비싸 김밥에 시금치 대신 오이를 사용한 지 두어 달 됐는데, 오이 값마저 꽤 올랐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한숨이 늘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출납 사항을 빼곡히 기록해놓은 수첩을 살펴보며 “채소를 납품 받는 데 6월에는 50만 원, 7월에는 70만 원, 8월에는 80만 원을 지출했다”며 “9월에는 이 비용이 더 오를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했다. 그는 “부대찌개나 곱창전골에 고명으로 쑥갓을 올리는데, 쑥갓 한 상자가 1만5000원에서 7만8000원까지 올랐다. 기본 반찬으로 나가는 꽃상추도 지난주에는 상자당 1만5000원이었지만, 이번 주에는 2만5000원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허술하게 음식을 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충이 크다”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도시락 사업을 하는 이모 씨는 “오이, 파프리카, 부추, 대파, 시금치 등의 값이 오른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품질 좋은 채소나 과일이 드물다는 점”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날이 가물어 수분이 부족하면 쓴맛이 나는데, 요즘 특히 오이와 미나리에서 쓴맛이 나 애먹고 있다”고도 했다.

    선물용 ‘추석사과’ 구하기 어려울 듯

    채소·과일의 고물가 현상은 추석, 그리고 그 후에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올해 추석에는 ‘추석사과’로 불리는 상급 홍로를 구경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 청송에서 사과농장을 하는 김남희 씨는 “홍로는 더울 때 크는 사과인데, 이번 여름에는 너무 더워 오히려 잘 크지 않았다. 어느 농가든 낙과율이 30%가량으로 평년에 비해 두세 배 높다”고 전했다. 김진구 하나로마트 양재점 매니저는 “배는 올해 출하량이 20%가량 줄었는데, 최근 폭우로 배보다 사과 피해가 더 크다”고 했다. 매년 9월 초에 나오는 추석선물용 홍로 상자가 올해는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폭우를 버텨낸 사과들이 더 빨갛게 될 때까지 수확을 최대한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주영달 생산지원부 차장은 “2001년 한살림에 합류했는데 농가들이 이 정도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을 처음 본다”며 “추석 이후에도 주요 채소·과일값의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폭염으로 콩, 녹두 등 잡곡 수확량이 감소하고, 김장 필수품인 건고추 역시 사정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콩, 녹두는 여름에 자라 가을부터 수확하는데, 폭염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단감도 봄철 냉해로 작황이 좋지 않고, 고추도 여름에 너무 더워 꽃 수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주 차장은 “11월에 배추를 수확하려면 9월 초인 지금 정식(아주심기)을 해야 하는데, 비 소식이 잦아 농가에서 정식에 나서지 못하고 있어 배추 수급은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무는 배추보다 생육기간이 길어 수급 불안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봄철 이상저온과 여름철 폭염의 장기화로 추석 물가가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9월 3일 ‘추석 성수품 수급안정대책’을 가동했다. 보통은 추석 2주 전부터 특별 대책을 가동하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3주 전부터 ‘액션’에 나섰다. 이 대책에 따라 추석을 앞둔 3주간 배추, 무, 사과, 배, 쇠고기, 돼지고기, 달걀, 밤, 대추 등 추석 때 특히 소비량이 많은 농축산물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물가 안정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대책 기간 중 전체 공급량을 지난해 8만1726t에서 올해 12만3279t으로 전년 대비 51% 늘렸다”며 “사과 등 일부 품목은 수급에는 문제가 없지만, 기상 불량의 영향으로 상품과(上品果) 비중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쇠고기는 수요 증가로, 닭고기는 폭염에 따른 폐사 등으로 평년 대비 가격이 다소 높고, 햇밤·햇대추는 출하량이 줄겠지만 전년 생산된 밤·대추 저장물량이 충분해 수급 차질은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9월 6일 발표한 추석 성수품 가격 조사 결과도 만만찮은 추석 물가를 예고한다(그림 참조).

    달걀값은 하락

    전국 19개 주요 지역의 18개 전통시장과 27개 대형유통업체 등을 대상으로 추석 성수품 28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추석 차례상 차림비용은 전통시장에서 23만2000원, 대형유통업체에서 32만9000원이 들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지난해 대비 각각 6.9%와 4.9% 상승한 수준이다. 전년 대비 20% 이상 가격이 상승한 품목은 쌀, 무, 시금치, 밤, 사과 등이고, 달걀은 산란계 사육마릿수가 크게 증가한 영향으로 전년 대비 13.8% 저렴해졌다. 북어와 조기(부세)는 재고량이 충분한 덕분에 가격이 다소 하락했다.

    쌀값 폭등, 진실은?
    지난해 쌀값이 워낙 쌌던 탓 … 쌀 소비량도 덜 줄어

    [뉴시스]

    [뉴시스]

    ‘쌀값 폭등’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요즘이다. 언론에는 ‘쌀값이 지난해보다 40% 이상 올랐다’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쌀 소매가격은 9월 5일 현재 4만9087원(20kg 기준)으로 전년(3만6259원) 대비 35%, 평년(4만2634원) 대비 15% 올랐다. 쌀값마저 왜 올랐을까. 고온성 작물임에도 쌀까지 전례 없는 폭염 피해를 입은 것일까.

    요즘 쌀값에 대해 전문가들은 “폭등이라기보다 정상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2017년 쌀값이 워낙 많이 떨어져 올해 쌀값이 무척 비싼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이러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뒷받침한다. 2018년 평균 쌀값은 4만3000원이 조금 넘는데, 이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평균 쌀값과 유사한 수준이다. 다만 2016년(3만9698원)과 2017년(3만7388원)보다는 비싸다(그래프 참조).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 관계자는 “2017년에 쌀값이 너무 많이 떨어져 정부가 예년보다 많은 쌀을 수매해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줄어든 데다, 정부 예측보다 쌀 소비량이 덜 줄어 올해 쌀값이 빠르게 올라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쌀값 안정화를 목표로 매해 예측되는 쌀 소비량(수요)을 초과하는 쌀 생산량(공급)을 사들인다. 2016년에는 전체 생산량 420만 t 가운데 35만t을 사들였는데, 2017년에는 397만t 가운데 72만 t을 매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80kg 기준 16만~27만 원대이던 쌀값이 지난해 12만 원으로 떨어지자 농업인 단체와 국회 등에서 정부 수매량을 100만t 이상으로 늘리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전했다. 인당 쌀 소비량이 해마다 1~2kg씩 감소하는 추세에 따라 2017년 쌀 소비량은 인당 60kg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올해 1월 집계된 2017년도 쌀 소비량은 인당 61.8kg으로 정부 예상보다 1.8kg 많았다. 

    쌀값이 오르자 정부는 올해 들어 세 차례 비축해둔 쌀 22만t을 시중에 풀었다. 4월 공공비축미를 방출한 데 이어 6월과 8월에는 ‘격리곡’을 공매했다. 이후 쌀값의 급격한 상승세는 멈춘 상태다. 3월 4만5713원이던 쌀값은 8월 4만8853원으로 7% 오르는 데 그쳤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비축한 쌀을 방출한 것이 쌀값을 떨어뜨리진 못했지만, 상승폭을 완화한 효과를 냈다고는 본다”고 말했다. 

    쌀값 인상에 심리적 원인이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시중에 쌀이 모자란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부담을 느낀 산지유통업체들이 8월 공매에서 다소 높은 가격에 입찰했고, 그것이 최근 쌀값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최근 기상 상태가 올가을 벼 수확에 미치는 영향은 좀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조남욱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쌀이 고온성 작물이라 해도 유난했던 이번 폭염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중부 · 남부지역에 집중된 게릴라성 폭우 역시 생육에 지장을 줬을 것”이라며 “9월 초순인 현재는 등숙기(벼알이 성숙하는 기간)라 올해 수확량 추이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