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4

2018.09.05

원포인트 시사 레슨

구스만 전에 에스코바르가 있었음을 기억하라

마약왕 등장은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

  • 입력2018-09-04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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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월 19일 비행기로 멕시코에서 미국 뉴욕으로 호송된 호아킨 구스만(가운데). [AP=뉴시스]

    2017년 1월 19일 비행기로 멕시코에서 미국 뉴욕으로 호송된 호아킨 구스만(가운데). [AP=뉴시스]

    두 차례의 극적인 탈옥으로 화제가 됐다 결국 체포된 뒤 지난해 1월 신병이 미국으로 인도된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61). 키 작은 꼬마라는 뜻의 스페인어 별명 ‘엘 차포’로도 불리는 구스만은 현재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뉴욕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런 그가 최근 다시 화제가 됐다. 구스만이 몇 달에 한 번 허드슨강 건너에 있는 브루클린 법원으로 출두할 때마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브루클린교가 전면 통제돼 끔찍한 교통체증이 빚어진다는 8월 15일자 ‘뉴욕타임스(NYT)’ 기사 때문이다. 

    특히 11월 1심 재판이 시작되면 4개월간 거의 매일 재판이 열리는데 하루에 두 번씩, 그것도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 교통통제가 이뤄질 예정이라 뉴욕시 전체가 교통지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선 중무장한 장갑차로 둘러싼 채 차량으로 호송하기보다 헬기나 배를 통해 호송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한 상태지만 교도당국은 묵묵부답이다. 설령 그런 결정을 내렸다 해도 구스만의 화려한 탈옥 전력을 감안해 당일까지는 비밀을 지킬 개연성이 크다. 

    그만큼 구스만의 탈옥 이력은 화려하다. 그는 1993년 6월 체포됐다 2001년 1월 멕시코 교정당국을 조롱거리로 만들며 유유히 탈옥했고, 13년 뒤인 2014년 2월 다시 붙잡혔지만 2015년 7월 또 탈옥에 성공,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탈옥왕 구스만

    2001년에는 멕시코 할리스코주의 연방교도소에서 빨래 바구니에 숨어 탈옥했는데, 조사 결과 교도소장을 비롯한 대다수 교도관이 뇌물을 받고 그의 탈옥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위해 구스만이 뿌린 돈이 250만 달러(약 27억 원)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감시망은 더욱 삼엄해졌지만, 2015년에는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의 알티플라노 연방교도소 내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인 자신의 독방 샤워실 바닥에서부터 교도소 외곽에 있는 주택까지 1.5km 길이의 땅굴을 파고 달아났다. 

    땅굴은 지하 10m 깊이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할 정도였고 높이 170cm(구스만의 키는 168cm), 폭 75cm에 조명등과 통풍관까지 달려 있었다. 구스만이 직접 판 게 아니라 외부에서 최신 굴착장비를 동원해 파고 들어간 게 분명했다. 게다가 그가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오토바이까지 발견됐다. 당시 교도관들은 구스만이 샤워실에 들어간 뒤 25분간 카메라에 잡히지 않자 출동해 바로 땅굴을 발견했지만 그는 이미 깨끗이 사라진 뒤였다. 



    이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멕시코 엔리케 페냐 니에토 행정부는 구스만 체포 총력전에 나선다. 콜롬비아 최대 마약조직이던 메데인 카르텔과 칼리 카르텔 검거에 큰 공을 세우고 은퇴한 콜롬비아 경찰 간부 3명을 특별초빙하고 멕시코 해병대, 해군·육군, 경찰을 총동원해 수색전과 총격전을 펼친 끝에 2016년 1월 시날로아주의 한 가옥에 숨어 있던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탈옥 6개월 뒤였다. 이후 엄중한 감시 아래 있던 구스만은 1년 뒤인 지난해 1월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됐다. 그는 현재 살인, 살인교사, 마약밀매와 140억 달러 상당의 돈세탁 등 모두 7가지 혐의로 뉴욕, 시카고, 마이애미, 텍사스주 등 6개 연방법원에 의해 기소된 상태다.

    제2의 에스코바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라파엘 카로 킨테로 지명수배 사진. [AP=뉴시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라파엘 카로 킨테로 지명수배 사진. [AP=뉴시스]

    구스만이 세계적 악명을 얻은 것은 ‘세기의 탈출’로 불리는 두 번의 탈옥 때문이지만, 사실 그는 최악의 마약왕이었다. 구스만은 첫 번째 탈옥을 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연방수사국(FBI) 10대 지명수배자 가운데 2순위였다. 당시 1순위는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었는데 2012년 빈 라덴 사망 이후 2014년 2차 체포 때까지 1순위를 지켰다. 그 기간 구스만은 멕시코 마약조직 간 평화협정을 깨고 다시 전쟁을 일으켜 6만 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머그샷(범죄인 식별 사진). [사진 제공 · 콜롬비아 경찰]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머그샷(범죄인 식별 사진). [사진 제공 · 콜롬비아 경찰]

    사실 그는 여덟 살 연상인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닮은꼴이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최대 마약조직인 메데인 카르텔의 두목으로, 1980년대부터 1993년 12월 콜롬비아 경찰의 총탄에 맞아 숨질 때까지 세계 최대 마약왕으로 군림했다. 구스만은 에스코바르가 죽기 6개월 전 체포됐는데, 감옥에 앉아 세계 최대 마약왕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집중 단속으로 카리브해를 거쳐 미국 플로리다로 이어진 마약 밀거래 통로가 차단되자 멕시코를 거쳐 미국 텍사스를 뚫는 새로운 육상 루트를 모색하면서 멕시코 마약조직이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구스만은 땅굴을 파거나 헬기와 보트를 이용하는 육·해·공을 총동원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미국 내 마약 유통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했다. 에스코바르 역시 아예 섬 하나를 통째로 사들여 항구뿐 아니라 활주로까지 깔고 값비싼 개인 비행기로 마약을 수송하는 획기적 아이디어로 마약왕국을 일궜다. 구스만은 그렇게 모은 재산이 40억~14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 2009년 미국 시사경제지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701위에 올랐을 정도다. 에스코바르의 자산은 이를 능가했다. ‘포브스’는 1989년 세계 억만장자 중에서 그를 7위에 올렸으며, 당시 그의 재산을 현 가치로 환산하면 300억 달러(약 33조2250억 원)에 이른다. 

    에스코바르 역시 체포됐다 탈옥을 감행했다. 에스코바르는 미국의 압력을 받은 칠레 정부와 내전에 가까운 전쟁을 치르다 1991년 세사르 가비리아 정권과 협상을 거쳐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갔다. 그를 미국으로 송환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까지 고치자 자신이 직접 지은 감옥에서 부하들과 초호화 수감생활을 한다는 조건으로. 간수도 그가 직접 뽑았고, 경찰은 ‘대성당’으로 불리던 그 감옥의 3km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다 1년 뒤 그가 ‘대성당’에서 자신의 부하를 직접 죽이는 일이 발생해 정부에서 그를 일반 감옥으로 이감하려 하자 보란 듯이 탈옥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전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자 에스코바르의 전설도 무너진다. 콜롬비아 정부와 미국 중앙정보국(CIA)뿐 아니라, 라이벌 조직이던 칼리 카르텔도 ‘에스코바르 사냥’에 나서면서 수족 같은 부하들을 하나 둘씩 잃고 결국 경찰특공대의 급습때 3발의 총을 맞고 숨진다. 그때까지 그의 지시로 살해된 사람이 5000명가량으로 추산된다. 

    구스만은 에스코바르의 대체재에 불과하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마약 수요처가 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얼굴을 바꾼 마약왕은 되풀이해 등장할 것이다. FBI는 4월 새로운 멕시코 마약조직 두목을 10대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구스만을 마약조직에 입문시킨 ‘과달라하라 카르텔’의 두목으로 1985년 체포돼 28년간 투옥생활을 하다 2013년 풀려난 라파엘 카로 킨테로(6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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