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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록이 찬란했던 날들을 날것 그대로 담은 史草

하워드 스미스의 ‘스미스 테이프’

록이 찬란했던 날들을 날것 그대로 담은 史草

록이 찬란했던 날들을 날것 그대로 담은 史草
아날로그 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건 채널을 갖고 있다는 것은 권력 중 권력이었다. 지면에 필봉을 휘두르고 전파에 목소리를 실어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모든 권력이 그러하듯 저널리스트의 권력 또한 잘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기레기’는 창궐하는 법. 다행히 시간이란 물결은 대체로 독은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약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보존한다. 통찰에 입각한 현장과의 호흡,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충만한 꼼꼼한 기록 같은 것들 말이다.


스미스 씨, 록스타들을 만나다

록이 찬란했던 날들을 날것 그대로 담은 史草
1.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과 그의 뮤즈였던 독일 출신의 모델 겸 가수 니코, 워홀과 손잡고 영화를 찍었던 영화감독 폴 모리시(왼쪽부터).
2.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의 음반 프로모터로 유명한 피트 베넷과 비틀스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 ‘스미스 테이프’의 저자 하워드 스미스(왼쪽부터). 1970년 5월 1일 미국 뉴욕 베넷의 사무실에서.
3. ‘제퍼슨 에어플레인’과 ‘그레이트풀 데드’ 같은 사이키델릭 밴드의 콘서트로 큰 성공을 거둔 공연제작자 빌 그레이엄이 1970년 1월 1일 자신이 미국 뉴욕에 세운 공연장 필모어 이스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4. 존 레넌, 오노 요코 부부와 함께한 하워드 스미스. 1971년 10월 9일 레넌의 서른한 번째 생일을 맞아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의 파티장에서 촬영됐다.
5. 1966년 촬영된 미국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프랭크 재파(맨 앞)와 밴드 ‘머더스 오브 인벤션’의 프로모션 사진.

여기, 현대 대중문화의 황금기를 누볐던 한 남자가 있다. 하워드 스미스, 미국 뉴욕 출신으로 ‘플레이보이’와 ‘뉴욕타임스(NYT)’ 등에 칼럼을 기고했던 그는 ‘빌리지 보이스’의 장수 칼럼 ‘풍경들(Scenes)’ 필자로 미국 대중문화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이 칼럼을 통해 그는 부상 중이던 카운터 컬처의 여러 인물을 소개했을 뿐 아니라 뜨거운 내부자와 차가운 관찰자 사이의 균형 있는 시선을 지킴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만들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펜만이 아니었다. 마이크도 있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스미스는 뉴욕 지역 라디오 WPLJ FM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진행했다. 당대를 풍미하던 유명 뮤지션을 두루 인터뷰하고 1960년대 청년 문화의 절정이던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데일리 리포트를 방송, 그 역사적 순간을 가장 생생하게 담아냈다. 

‘스미스 테이프’는 1969년부터 1972년까지 그가 방송을 통해 만났던 유명 인사들과의 인터뷰집이다. 스미스는 당시 녹음 테이프를 다락방에 보관했고 이를 토대로 회고록을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4년 그가 사망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됐다. 아들이 뒤늦게 이 테이프들을 발견해 50년 전 대화가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영화감독 에즈라 북스타인이 이 방대한 녹음 내용을 편집, 정리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면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만나는 것처럼 정돈된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면면은 화려하다. ‘록이 찬란했던 날들의 기록’이라는 부제답게 많은 음악가가 줄줄이 등장한다. 존 레넌, 조지 해리슨, 루 리드, 캐럴 킹, 믹 재거,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에릭 클랩튼 등 음악에 큰 관심 없는 사람도 솔깃할 만한 이들이다. 그들과 대화는 두서없고 방만하다. 편집에 대한 개념이 지금처럼 정교하지 않던 시절이라 그렇기도 하고, 유명인이 언론을 통해 자신을 좀 더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때였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모두가 젊었기 때문이리라.


존 레넌에게 ‘평화 팔이’를 묻다

스미스는 인터뷰를 통해 논쟁을 불사한다. 존 레넌, 조지 해리슨과 평화를 논하고 믹 재거, 짐 모리슨을 통해서는 성공한 록스타의 이면을 파헤치려 노력한다. 질문은 직설적이다. 존 레넌에게 “아마 내가 더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왜 평화를 팔아먹느냐고 물어봤겠죠?”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존 웨인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전쟁을 팔아먹곤 했어요.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모든 건, 평화에 대한 세계와 영화노래를 가능한 한 많이 만들려고 시도하는 겁니다. 그게 다죠. 기회를 한 번 주세요”라고 답하는 존 레넌의 말은 점잖으면서도 뭔가 허를 찔렸다는 느낌을 준다. 

2010년대 우리가 만나는 과거는 대부분 역사가의 시선과 선택에 의해 재구성된 결과물, 즉 맥락의 소산이다. 하지만 ‘스미스 테이프’는 1969년부터 1972년까지 타오르던 불길을 여과 없이 오늘로 소환한다. 사서라기보다 사초에 가깝다. 이 원석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비슷하고 비즈니스는 냉혹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보여주는 두 사례가 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을 만든 4인 가운데 한 명이지만 다른 동업자들과 결별하고 모든 권리를 빼앗긴 아티 콘펠드. 그는 시종 이상론으로 일관한다. 왜 우드스톡이 한 번만 열리고 말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반면 샌프란시스코의 전설적 공연기획자인 빌 그레이엄은 자신의 공연장에 몰려드는 히피들이 얼마나 추악하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걸 어떻게 보여주는지 낱낱이 증언한다. 대중문화의 황금기에도 당연히 존재하던 이상과 현실, 예술과 사업의 조화에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의 차이가 느껴진다. 

그 간극을 파고들고자 장광설을 마다하지 않은, 그리하여 방만한 대화 속에서 끝내 인물의 캐릭터를 이끌어내는 스미스의 성찰과 화술이 없었다면 지루한 옛이야기로 끝날 법했던 언어의 향연이 ‘스미스 테이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간동아 2018.08.22 1152호 (p76~77)

  •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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