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中 일대일로, 빛 좋은 개살구 신세

프로젝트 참여국 상당수 ‘빚의 덫’에 걸려

  • 입력2018-08-21 11: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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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국 정부 인터넷 사이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국 정부 인터넷 사이트]

    파키스탄 과다르항은 전 세계 원유의 25%가 지나가는 호르무즈해협에서 서쪽으로 400km, 최대 도시 카라치에서 동쪽으로 434km 떨어진 심수항(深水港)이다. 아라비아해에 면하고 있는 과다르항은 수심이 14.5m로 파키스탄에서 유일하게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다. 이에 과다르항은 원유가 풍부하게 매장된 중동, 천연자원이 많은 중앙아시아, 원유와 천연자원을 대량 수입하는 중국과 아시아를 잇는 물류 요충지라는 말을 들어왔다. 또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사기지로서 역할도 가능한 전략 요충지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와 파키스탄 정부는 과다르항에서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카스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3000km의 경제회랑(Economic Corridor) 사업에 합의했다. 460억 달러(약 51조9600억 원) 규모의 이 사업은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대표적 사례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이 경제회랑에 고속도로, 철도, 송유관, 광케이블, 산업단지 등을 건설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또 제2 도시이자 펀자브주 주도인 라호르에서 20억 달러 규모의 경전철 구축 사업과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도 벌이고 있다. 

    파키스탄은 이런 사업들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도입해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국가부채가 외환보유액 214억 달러(약 24조1700억 원)의 2배가 넘는 564억 달러에 달했다. 7월 25일 총선에서 승리해 8월 18일 취임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국가부도를 막고자 국제통화기금(IMF)에 12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2013년 IMF로부터 53억 달러(약 5조9800억 원)의 구제금융을 받은 것을 포함해 1980년대 말 이후 12차례나 IMF의 지원을 받았다. 칸 총리는 또 이슬람개발은행(IDB)에서 40억 달러를 대출받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IDB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 하에 이슬람권 경제를 개발하고자 설립된 은행이다. 칸 총리는 의료 서비스 제공, 사회안전망 확충 등 ‘이슬람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했으나, 자칫하면 4년 임기 내내 빚을 갚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에 처했다.

    중화제국 부활 프로젝트

    파키스탄처럼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78개국 가운데 상당수가 ‘빚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다. 78개국은 대부분 저개발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국가위험도 분류(Country Risk Classification)’에 따르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78개국의 평균 국가위험도는 7점 만점에 5.2점으로 나타났다. 신흥국의 평균 국가위험도가 3.5점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국가위험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주로 경제상황이며 전쟁 가능성과 자연재해도 포함된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78개국의 평균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또는 채무불이행 위험수준인 ‘Ba2’로 평가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일대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뻗는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구축하는 것이고, 일로는 남중국해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양과 중동 및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를 말한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2049년까지 추진해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중국몽은 21세기 중화제국의 부활을 의미한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복구를 위해 추진했던 ‘마셜 플랜’과는 성격이 다르다. 당시 미국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 국가의 재건을 돕고자 조건 없이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 국유(국영)은행을 통해 저개발국가에 자본을 빌려주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특히 중국은 저개발국가와 차관 계약을 맺으면서 철저하게 ‘차이나 스탠더드’ 적용을 요구했다. 차이나 스탠더드는 중국산 기자재를 쓰고, 건설 공사는 중국 업체가 맡으며, 심지어 운영도 상당 기간 중국 기업이 하는 것을 말한다. 투명성 확보와 부패 방지 방안 마련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는 선진국이나 국제금융기구 등으로부터 차관을 빌리기 어렵던 저개발국가는 중국의 달콤한 유혹(차관)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개발국가는 중국이 제공한 자금으로 야심차게 인프라 구축을 시작했지만,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빚만 늘어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인프라 사업을 통한 경제발전을 기대했지만 중국이 제공한 자금을 중국이 다시 가져가고 자신들에겐 부채만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중국 차관이 일종의 ‘독(毒)’이 된 셈이다.

    중국의 채무 제국주의로 변질

     스리랑카 함반토타항의 모습. 2017년 중국이 99년간 이 항구의 운영권을 갖게 됐다. [위키피디아]

    스리랑카 함반토타항의 모습. 2017년 중국이 99년간 이 항구의 운영권을 갖게 됐다. [위키피디아]

    미국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CGD)는 3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8개국이 이미 ‘빚의 덫’에 걸렸고, 감당하기 힘든 규모라고 밝혔다. CGD가 지목한 국가는 동아프리카 지부티,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동남아시아 라오스, 인도양 섬나라 몰디브, 몽골,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 파키스탄 등이다. 대표적 피해 사례로는 스리랑카를 들 수 있다. 스리랑카는 2010년 중국 차관으로 전략 요충지인 함반토타항을 건설했지만, 적자가 쌓이자 결국 부채 11억 달러를 탕감 받는 조건으로 지난해 11월 중국 국유기업에 이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넘겨주기로 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미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빚더미에 올라앉는 국가가 늘어나자 일대일로 참여국은 대부분 중국의 저의를 의심하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아예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사업들을 접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중국 남부와 자국을 연결하는 200억 달러 규모의 동부해안철도 공사를 사실상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네팔 정부도 지난해 11월과 올해 상반기 중국 기업이 맡기로 했던 발전소 건설 계획을 취소했다. 미얀마 정부도 차우퓨항만 개발 사업 규모를 73억 달러(약 8조2400억 원)에서 13억 달러로 축소했다. 패트릭 멘디스 미국 하버드대 중국연구센터 연구원은 “일대일로 참여국은 자칫하면 일대일로가 부채의 덫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마뜩지 않게 봐왔던 미국이 중국 차관으로 인프라 사업을 벌였다 국가부채가 늘어난 국가에 IMF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며 “미국 국민의 세금이 중국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간과하지 않겠다”고 지원 불가 방침을 밝혔다. 미국은 IMF의 최대 출자국(투표권 비중 16.5%)이기 때문에 미국이 반대하면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특히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이런 사태를 호재로 여기고 있다. 미국 정부가 7월 30일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하고자 1억1300만 달러(약 1276억 원) 규모의 초기 투자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도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아무튼 시 주석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세기의 계획”이라고 강조했지만 지금까지는 ‘채무 제국주의(Debt Imperialism)’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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