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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불 꺼진 상가

자영업 대란, 임대 대란으로 전이?

신촌  ·  이대역 앞 빈 상가 급증  …  오피스텔, 원룸촌으로 변신 중

자영업 대란, 임대 대란으로 전이?

신촌오거리에서 이대역 방면 대로변은 물론 ‘이화여대 정문 인근에도 세입자를 구하는 빈 상가가 적잖다. [구자홍 기자]

신촌오거리에서 이대역 방면 대로변은 물론 ‘이화여대 정문 인근에도 세입자를 구하는 빈 상가가 적잖다. [구자홍 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과 합정역 사이에는 대학이 여러 개 자리 잡고 있다. 충정로역은 한국예술원과 경기대, 아현역은 추계예술대, 이대역은 이화여대, 신촌역은 연세대와 서강대가 가깝다. 홍대입구역 가까이에는 홍익대가 자리 잡고 있다. 여러 대학이 있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 중에는 젊은 학생이 많은 편이다. 특히 저녁 무렵에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연트럴파크나 홍대 앞 클럽 등에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버스나 지하철이 늘 붐빈다. 

대학가와 인접한 신촌역과 이대역 주변 상가는 젊은 층을 주 소비자로 하는 의류·화장품·액세서리 숍과 미용실, 카페, 음식점 등이 주를 이룬다. 이화여대 정문 쪽 상가 밀집지역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1번지, 유행 1번지로 통했다. 개성 넘치는 최신 유행의 옷과 구두, 액세서리를 사려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1999년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가 1호점을 이대역 인근에 오픈할 만큼 이대역 상권은 한국 젊은이의 소비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와 같았다. 

그러나 홈쇼핑과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된 2000년대 중반 이후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 빈 공간을 한동안 유커 등 중국인 관광객이 메웠다. 중국 내 한류열풍에 힘입어 ‘Tax free(면세)’를 내세운 대형화장품 매장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그러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반짝 살아나는 듯하던 이대역 상권이 다시 시들해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대로변 상가 건물에 ‘임대’라고 써 붙인 종이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유동인구가 많은 이대역 출구 주변 건물에 세입자를 구하는 ‘임대’ 안내문구가 여럿 나붙었다. 도대체 신촌과 이대역 인근 상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퇴색한 패션 1번지의 명성

“써 붙인 게 다가 아니에요. 지금 장사하는 가게 중에도 새로운 세입자를 찾아달라거나 아예 가게를 팔아달라고 내놓은 곳이 많아요.” 

이대역 근처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A씨의 얘기다. 그는 “중국인 관광객 특수와 청년층의 창업 열기로 반짝 살아나는 듯하던 상권이 올해 들어 침체기로 돌아섰다”며 “임대계약이 만료되면 폐업하겠다는 상인이 적잖다”고 말했다. A씨는 “매출은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임대료 부담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까지 커져 상인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이 서울 강북의 손꼽히는 상권인 신촌과 이대역 주변 상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신촌역에서 이대역을 지나 아현역에 이르는 대로변 건물 1, 2층에서는 ‘임대’라고 써 붙인 종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아래에 적힌 휴대전화번호는 대부분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의 번호였다. 일부 상가의 경우 ‘권리금 없음’이라며 건물주가 직접 임대한다고 써 붙이기도 했다. 신촌오거리에서 이대역 쪽으로 언덕을 조금 올라가니 멀티플렉스 극장 등에서 여가를 즐기려는 젊은이와 대형어학원에서 공부하려는 젊은이가 뒤섞여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동인구가 더 많아 보였다. 그런데 최근 이곳 대형건물 1층 상가가 폐업했다.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이 가까워 1급 상권지로 알려진 1층 상가가 권리금까지 포기하고 폐업한 것이다. 

근처 부동산중개업소의 B씨는 “신촌과 이화여대 앞 도로는 20, 30대가 많이 찾아 안테나숍이나 플래그십스토어를 열기 좋은 위치”라며 “그런데 최근 기업들이 투자를 꺼려 문을 닫는 상가가 하나 둘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C씨는 “대로변 상가의 경우 3.3㎡당 지가가 1억 원을 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임대료가 책정된다”며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브랜드 매장이 철수한 이후 빈 점포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촌과 이대역 앞 상가 임대료는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횡단보도로부터 거리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3.3㎡당 최저 10만 원대에서 최고 30만 원대까지 형성돼 있다. 건강보조식품을 판매하는 매장의 점원은 “82.5㎡(25평) 규모의 매장 임대료가 월 660만 원 정도”라고 전했고, 1층 코너에 위치한 39.6㎡(12평) 남짓한 부동산중개업소의 임대료는 월 330만 원가량이었다. 이대역에서 아현역 방향으로 있는 상가의 임대료는 39.6㎡ 규모임에도 월 220만 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매출 감소와 높은 임대료 부담, 인건비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는 공실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올해 이사분기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상가 공실률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 공실률은 중대형 상가 10.7%, 소규모 상가 5.2%였다. 신촌의 경우 이사분기 공실률이 6.8%로 일사분기 5.2%보다 1.6%p 높아졌다. 한국감정원은 상가 공실률이 상승한 원인으로 소매업 판매 감소와 소비심리 위축 등을 꼽았다.


원룸, 오피스텔촌으로 변신 중

이대역 주변으로 상가 대신 원룸과 오피스텔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 이대역 주변 오피스텔 빌딩 조감도. [동아DB]

이대역 주변으로 상가 대신 원룸과 오피스텔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 이대역 주변 오피스텔 빌딩 조감도. [동아DB]

신촌과 이대역 주변을 돌아본 소감은 상가 공실률이 100곳 중 7곳 정도 비어 있다는 6.8%와는 차이가 있었다. 통계보다 빈 점포가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조사 시점이 6월 말 기준이라 7, 8월 이후 빈 점포가 더 많이 생겼을 개연성이 있다. 신촌기차역 인근에 문을 연 부동산중개업소의 D씨는 “대학가 앞은 방학 때가 비수기”라며 “최근 들어 문 닫는 가게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도 “대학가 주변 상가의 경우 방학 등 계절적 원인으로 일부 상가가 업종을 바꾸는 경향이 있어 통계 작성 시점에 비해 일시적으로 공실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대역 주변에 빈 상가가 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경기침체에 따른 매출액 감소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임대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대역 인근과 신촌 상가의 경우 월 매출이 4000만 원에서 5000만 원은 돼야 유지가 가능한데, 최근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에 한계가 오면서 빈 상가가 증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집계한 전국 소상공인 매출 통계를 보면 올해 일사분기 전국 자영업 점포 개당 월평균 매출은 3372만 원으로, 지난해 동기 월평균 3846만 원과 비교하면 12.3% 하락했다. 특히 소매업 매출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월 5761만 원에서 3375만 원으로 41.4% 급감했다. 소매업에는 음식료품과 가방·신발·액세서리, 화장품 판매업 등 이대역 주변에 많은 상가가 대부분 포함된다. 

문 닫는 상가가 부쩍 늘었지만 아직 임대료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이대역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E씨는 “건물주들이 재력이 있어 그런지 세가 한동안 나가지 않아도 임대료를 낮추려 하지 않는다”며 “그러다 보니 임대료를 감당 못 한 상가가 폐업하면 고스란히 빈 상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임대료를 낮추면 건물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건물주들이 임대 소득이 줄더라도 임대료를 낮추지 않고 빈 상가로 내버려두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신촌기차역 앞과 이대역 출구 주변에 유독 빈 상가가 눈에 많이 띄었다. 일부 상가는 점포 이전을 알렸지만, 나머지 상가는 점포 안에 각종 전단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어 꽤 오랜 시간 비어 있는 상태로 보였다. 신촌기차역 주변 한 상가는 올해 초 작성된 단전·단수 경고 안내문이 붙어 있어 폐업한 지 반년 이상 됐음을 짐작게 했다. 특히 문 닫은 상가의 경우 관리가 상대적으로 소홀해 쓰레기가 쌓여 있는 등 방치된 모습이었다. ‘쓰레기를 버릴 경우 신고하겠다’는 경고 문구를 붙여놓았지만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이대역 주변 상권이 침체를 겪는 주요 원인은 상권이 홍대입구역이나 합정역 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홍대입구역 주변에 메가 상권이 형성되면서 주변 상권을 빨아들이는 빨대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상혁 선임연구원은 “상권이 형성된 뒤 성장기와 성숙기를 거쳐 쇠퇴기로 이어지는 상권 순환 사이클이 있는데, 이대역 인근과 신촌의 경우 2000년대 전후 시점이 성숙기였고 지금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 상권 빨아들이는 빨대효과

오피스텔촌으로 변신 중인 이화여대 정문 앞 간선도로.

오피스텔촌으로 변신 중인 이화여대 정문 앞 간선도로.

이대역과 신촌역 사이 대로변에 빈 상가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두 블록 안쪽으로는 10층 넘는 고층 오피스텔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2013년 서울시의 신촌 지구단위계획에 따른 것이다. 당시 시는 신촌로터리를 중심으로 특별계획구역을 지정해 구역별로 건축물의 권장용도를 제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연세대 앞은 ‘대학 문화권역’으로 지정돼 공연장과 전시장, 연구소 등이 들어서고 이화여대 앞은 ‘관광·쇼핑권역’으로 지정돼 옷가게와 미용실, 웨딩업체 등이 들어선다. 눈에 띄는 대목은 간선변 ‘상업·업무권역’에 숙박과 업무시설 등이 들어서도록 했다는 점. 이 계획에 따라 이대역 대로변에서 한두 블록 떨어진 곳에는 10층 이상의 오피스텔, 원룸이 대거 들어설 수 있게 됐다.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상권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해진 대신, 오피스텔과 원룸이 크게 늘었다”며 “지금 분양하는 것 외에도 2~3년 뒤에는 더 많은 물량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가는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없고 나가겠다는 사람만 많아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그 대신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하려는 대학생의 전월세 수요는 꾸준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패션 1번지로 명성을 날리던 이화여대 정문 앞 거리가 경기침체 여파로 오피스텔과 원룸촌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혁 선임연구원은 “상가로서 매력을 잃은 건물은 오피스텔이나 오피스 등 업무공간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것이 새로운 활로를 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
“ ‘가성비’ 높은 차별화된 업종으로 전환 필요”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과 이대역 상권이 침체된 주요 원인으로 젊은 층의 소비패턴 변화를 꼽았다. 그는 “경기침체가 전국적 현상이라면 젊은 층이 많이 찾던 상권이 쇠퇴한 것은 여가와 쇼핑을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소비패턴의 변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 강북의 대표 상권이던 신촌에서 이대역으로 이어지는 대로변에 지금은 빈 상가가 늘고 있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전국적으로 상가 부동산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다. 대표적인 상권 중심지로 여겨지던 서울 강남역 주변 상가들도 임대료가 내려가고 공실률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침체가 전국적 현상이라면 신촌과 이대역 인근은 대학생 등 젊은 구매층의 소비패턴 변화까지 겹쳐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젊은 층의 소비패턴이 어떻게 변화했나. 


“오프라인보다 인터넷과 모바일 등 온라인 쇼핑을 즐긴다. 안테나숍이나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해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른 뒤 실구매는 저렴한 온라인에서 하는 방식이다. 이런 소비패턴 변화가 이대역 인근과 신촌의 상권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요즘 젊은 층은 쇼핑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친구를 만나 옷을 사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대형쇼핑몰에서 쇼핑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신촌과 이대역 인근 상가가 과거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현재 신촌과 이대역 상권의 침체는 몇몇 가게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동인구가 줄면 매출이 떨어지고, 매출 하락은 임대료 하락의 압박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역 상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방자치단체와 건물주,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권을 되살릴 마스터플랜을 짜야 한다. 무엇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 높고 차별화된 업종 등 젊은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주간동아 2018.08.22 1152호 (p30~33)

  •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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