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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국민연금을 어이할꼬

또, ‘더 내고 덜 받게’ 고친다고?!

노여움 부른 국민연금 개정안… 기금 고갈 걱정보다 ‘사회적 합의’가 먼저

또, ‘더 내고 덜 받게’ 고친다고?!

[shutterstock +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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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정 논란이 폭염만큼이나 뜨겁게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8월 17일 공청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던 민간 자문위원회(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의 국민연금 제도개선 권고안의 일부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더 내고 덜 받게 국민연금 제도를 개정하려거든 차라리 폐지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급기야 8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부 보도대로라면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이튿날 국민연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박능후 장관 또한 가장 반발이 컸던 연금 수령 시점을 65세에서 68세로 늦추는 안에 대해 “민간 자문위원회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얘기”라며 “정부가 그런 것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당장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오르고, 가입 기간은 늘며, 수령 시기가 늦춰지진 않겠지만, 국민연금 제도 개선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번에 진행된 4차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기가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졌다. 저출산으로 돈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고령화로 연금을 받는 사람은 크게 늘기 때문이다. 향후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란 예측도 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낸 돈보다 훨씬 많이 돌려주는 구조’

또, ‘더 내고 덜 받게’ 고친다고?!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보장 수준이 거듭 낮아지는 역사를 거쳐왔다. 도입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은 2008년 50%로 내려갔고, 이후 20년 동안 해마다 0.5%p씩 줄어 2028년에는 40%가 된다. 한편 연금을 수령하는 나이는 ‘젊을수록’ 불리한 구조다. 만 나이로 1953년 이전 출생자 60세, 1953~56년생 61세, 1957~60년생 62세, 1961~64년생 63세, 1965~68년생 64세,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부터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소득대체율이란 전체 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을 의미하며,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한다. 40년간 가입한 사람의 평균 소득이 100만 원이라면 매달 국민연금으로 40만 원을 받게 된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도입된 지 30년밖에 되지 않은 까닭에 가입자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법에 명시된 소득대체율보다 한참 낮은 24%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용돈 연금’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런 형편인데도 민간 자문위원회가 재정 안정화를 이유로 보험료율을 내년부터 당장 인상하고, 장기적으로 더 인상하며, 수령 시기를 늦추고, 기대여명이 늘면 연금액을 자동으로 깎는 권고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자 국민 반발이 컸다. 이에 더해 국민연금의 최근 기금운용 수익률이 0%대로 매우 저조한 것으로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이럴 바엔 차라리 국민연금을 폐지하라”는 청원이 빗발쳤다. 

그러나 연금 전문가들은 ‘수익률이 나쁜 데다 기금마저 곧 고갈되면 그간 내온 국민연금 보험료를 떼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은 오해이자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국민연금공단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이 우려되는 주요 이유는 저출산·고령화지만, 그에 앞서 애초 국민연금이 낸 돈보다 훨씬 많이 돌려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40% 소득대체율이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납부액에 이자만 조금 더해 돌려주는 수준으로 바꾸면 소득대체율은 20%대로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과 달리 급여 부족분을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이 관련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 국민연금법 제3조는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돼 있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부족분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나 몰라라’ 할 순 없다. 국가가 존속하는 한 연금은 어떤 식으로든 지급된다고 연금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 국회에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명문화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국민연금을 붓느니 개인연금으로 노후에 대비하겠다”는 것은 현실을 오해한 생각에 불과하다. 먼저 수익률을 보자면 국민연금 성적이 개인연금보다 월등하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2~2016년 개인연금 평균 수익률은 3.3%로, 같은 기간 국민연금 평균 수익률(5.2%)에 한참 못 미친다. 또한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개인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수익률과 관계없이 법적으로 정해진 수급액을 보장한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인연금을 노후소득 대비책으로 삼을 수 없는 이유는 중도 해약이 쉽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개인연금 해약률은 45%에 달한다.


‘재정 안정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국민연금 제도개선 권고안 논란에 대해  “정부는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68세로 늦출 생각이 없다”고 해명했다. [박해윤 기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국민연금 제도개선 권고안 논란에 대해 “정부는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68세로 늦출 생각이 없다”고 해명했다. [박해윤 기자]

전문가들은 이번 국민연금 개정안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재정 안정화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재정을 안정화하려면 더 내고 덜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 3차례의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 때마다 재정 안정화를 이유로 보험료율 인상 방안이 제시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3년 1차 때는 보험료율을 11.85~19.85%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0~60%로 조정하자는 방안이, 2008년 2차 때는 12.49%, 2013년 3차 때는 12.91%로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이 나왔지만 불발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소득대체율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더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다. 의무가입 공적연금을 운영하는 OECD 22개 회원국의 평균 보험료율은 15.4%로, 한국의 9%보다 한참 높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OECD 회원국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45.7%이다. 

김연명 교수는 “국민연금이 노후 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보장해줄 수 있을지 그림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더 내라, 덜 받아라 하니까 국민이 반발하는 것”이라며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노후소득을 어디까지 보장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 재원 조달 방법은 그 후 논의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3일 국민연금 논란과 관련해 “국민연금 개편은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기본 원칙 속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시각을 재정 안정화에서 보장 확대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 내용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김 교수는 “5년마다 재정 재계산을 하다 보니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에만 초점을 맞춰 개선안이 제시되는 한계가 있다”며 “차제에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을 진단한 객관적인 보고서를 만들기만 하고, 국회가 그 보고서를 기반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논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부과식으로 기금 조달 방식을 바꾸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 안정화에 너무 많은 무게를 실을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민연금 재정은 부과식(pay-as-you-go)과 적립식(funded)을 절충한 부분적립식(partially funded)으로 운용되고 있다. ‘받는 돈’(보험료)보다 ‘쓰는 돈’(연금지급액)이 훨씬 많아 적립식으로만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부과식이란 기금 적립 없이 매해 연금지급액을 미리 산정한 후 근로자로부터 그에 맞는 보험료를 거둬 연금 수급자들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거둔 보험료로 은퇴자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바꾸면 기금 고갈 여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견해를 밝혔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또한 “부과식이 자식 세대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일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오히려 막대하게 쌓아놓고 국내주식시장 등에 투입한 국민연금 기금을 빼낼 때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걱정”이라며 “국민연금 기금 조달 방식을 부과식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제도개선 권고안 주요 내용
“보험료율 인상, 더는 늦출 수 없다”
2003년 참여정부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축소를 추진하자 한국노총 및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 [동아DB]

2003년 참여정부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축소를 추진하자 한국노총 및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 [동아DB]

8월 17일 공청회를 통해 공개된 민간 자문위원회(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의 국민연금 제도개선 권고안은 사전에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득대체율을 45%로 유지하든, 40%로 유지하든 20년째 9%로 묶인 보험료율을 인상할 것을 권했다. 

권고안은 궁극적 재정 목표를 ‘2088년까지 적립배율 1배’로 잡았다. 적립배율이란 국민연금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와 연금으로 지급하는 금액의 비율. 현재는 28배로,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28배 많다. 하지만 앞으로는 돈 내는 사람은 적어지고 받는 사람은 많아져 적립금이 빠르게 감소한다. 2088년 적립배율 1배를 달성하려면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6~24%로 인상해야 한다. 

가입 연령은 현행 60세에서 65세까지로 늘린다. 현재 만 60세 이후에도 연금 수령액을 늘리고자 ‘임의 계속 가입’을 통해 국민연금을 계속 납부하는 가입자들이 있다. 이 경우 현재는 가입 연령이 60세까지로 묶여 있어 그 후에 근무하더라도 회사 지원(보험료 절반 지급)을 받을 수 없다. 가입 연령을 65세로 늘리는 것은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더 내면 더 받는 구조라 가입 연령을 65세로 높인다고 해서 국민연금 가입자가 불이익을 받는 부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자문위원회는 재정 안정화 방안으로 2개 안을 제시했다. ‘가안’은 소득대체율을 45%로, ‘나안’은 40%로 유지하는 것이다. 가안은 현행 제도보다 노후소득을 더 많이 보장하는 안인데, 이를 위해 2019년 보험료율을 11%로 인상하고, 2034년까지 12.31%로 인상한 후 추후 재정 재계산 때마다 부족하면 더 올리는 방안을 제안한다. 나안은 현재의 소득대체율 40%를 그대로 둔 채 재정 안정화를 위해 2019년부터 10년간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3.5%로 올리고, 2030년 이후부터는 수령 개시 연령을 67세로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안이다. 

이번 권고안은 기대수명 변동에 보험료와 수령액을 조정하는 기대여명계수(LEC) 도입을 제안한다. 이는 기대수명이 연장되면 연금 수령액을 자동으로 줄이는 것으로, 핀란드가 도입한 바 있다. 한편 자문위원회는 공무원연금처럼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국가가 급여 지급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법에 명문화하는 것은 권고 사항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관계자의 작심발언
“자문위 보고서? 날림으로 만들어졌다”
또, ‘더 내고 덜 받게’ 고친다고?!
민간 자문위원회(자문위)가 내놓은 국민연금 제도개선 권고안은 문재인 대통령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누누이 강조했듯 정부안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참여한 자문위가 내놓은 ‘민간 자문안’일 뿐이어서 정부가 꼭 이 안을 수용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이 보고서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향후 정부 및 국회가 관련 논의를 이어가는 기본 자료가 된다. 

그런데 한 자문위 관계자가 ‘주간동아’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자문위는 역대 자문위 가운데 가장 날림으로 진행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문위 보고서는 안(案)의 적절성에 대한 토론 없이 그저 전문가 각자가 내놓은 안을 뷔페식으로 취합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 1 · 2 · 3차 재정 재계산 때는 위원들의 견해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거쳤지만, 이번에는 위원들 각자가 맡은 세부 주제에 대한 안을 가져오면 그대로 보고서에 포함시켰을 뿐이라는 것이다. 자문위가 이렇게 진행된 이유에 대해 그는 “30여 회 회의를 했지만 전문가 각자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일관된 논리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회의 출석률도 50%에 못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재정 안정화를 위한 방안들도 그저 몇 가지 수치를 넣어 만든 산술적 계산일 뿐,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결과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2018.08.22 1152호 (p18~21)

  •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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