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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보다 권리금이 더 문제

임차 기간 연장도 필요 주장…현행 5년→10년 법안 제출

임대료보다 권리금이 더 문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오피스 건물. 사무실 임차인을 찾지 못해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동아DB]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오피스 건물. 사무실 임차인을 찾지 못해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동아DB]

“임차료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죠.” 

서울 시내 번화가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이 말만 들으면 한국 세입자와 임대인 간 갈등의 핵심은 임대료인 것 같다. 일단 매달 나가는 돈이라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액수도 상당하다. 상가 임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면 주택 임대료의 수십 배에 육박하는 번화가 상가 임대료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하지만 정작 임대차 갈등을 겪는 사람은 임대료보다 권리금이나 계약기간 보장에 관심이 더 많다. 현행 임대차 보호기간인 5년 동안 열심히 영업해 손님을 늘려도,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부하면 그대로 나와야 한다. 잘되는 가게의 경우 건물주가 직접 장사를 하려고 들 수도 있다. 즉 임차인은 대부분 5년간 시한부 영업을 하게 되는 것.


해외 비하면 임대료 저렴해

5월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모습(왼쪽).  미국 뉴욕 맨해튼 번화가는 한국에 비해 임대료가 몹시 비싼 편이다. [동아DB, 뉴시스]

5월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모습(왼쪽). 미국 뉴욕 맨해튼 번화가는 한국에 비해 임대료가 몹시 비싼 편이다. [동아DB, 뉴시스]

일단 한국 임대료는 비싼 수준이 아니다. 한국감정원 집계에 따르면 올해 일사분기 서울 강남지역 번화가의 평균 임대료는 ㎡당 월 7만5500원. 국내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는 명동은 약 3.3㎡(1평)당 월 89만6544원(㎡당 월 27만1680원)이다. 96㎡ 소규모 카페를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강남은 매달 724만8000원, 명동은 2608만1280원을 임차료로 내야 한다. 한국납세자연맹 집계에 따르면 2016년 한국 직장인의 초봉은 평균 2225만 원. 직장인 초봉보다 명동 카페의 월 임대료가 더 비싸다. 

가격만 보면 입이 떡 벌어지지만, 해외 번화가와 비교할 경우 국내 번화가의 임대료는 저렴한 편이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가 2016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주요 상권 임대료를 분석한 결과 뉴욕 5번가 중심의 평균 임대료는 ㎡당 월 309만 원으로 명동의 10배를 가볍게 넘겼다. 뒤를 이어 타임스스퀘어와 메디슨가의 임대료는 각각 216만 원, 146만 원으로 집계됐다. 

다른 나라의 번화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조사에서 홍콩 코즈웨이베이는 ㎡당 월 297만 원으로 미국 맨해튼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는 월 141만 원, 영국 런던 뉴 보드 스트리트는 월 132만 원, 일본 도쿄 긴자는 월 128만 원이었다. 

게다가 서울 시내 번화가의 임대료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지난해 일사분기 평균 임대료가 월 8만6900원이었지만, 올해 동기에는 7만5700원으로 12.9% 감소했다. 명동 임대료도 지난해까지는 3.3㎡당 91만4595원(㎡당 27만7150원)이었다. 서울지하철 2호선 합정역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42) 씨는 “지난해에 비해 월세(임대료)가 조금 떨어졌다. 문제는 그만큼 손님도 줄었다”고 밝혔다. 

이씨의 말처럼 상가 임대료가 떨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상권을 찾는 사람이 감소했기 때문. 유동인구가 줄어드니 폐업하는 가게가 늘어 공실률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 3대 상권으로 꼽히는 명동, 테헤란로, 홍대 앞도 이런 추세를 피하지 못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시내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이사분기 9.6%에서 1년 만에 1.1%p 오른 10.7%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명동은 4%에서 6.4%로 올랐고, 테헤란로는 9.3%에서 11.9%로, 홍대 앞은 3.7%에서 17.2%로 급등했다. 최근 떠오르던 이태원 상권도 맥을 못 추는 것은 마찬가지. 같은 기간 공실률이 14.9%에서 21.6%로 크게 상승했다. 홍대 앞 인근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건물이 비어 있으면 그대로 손실을 보기 때문에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점포를 들이려는 임대인이 많다”고 밝혔다.


임대료 함부로 낮추기 어려워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궁중족발’ 건물. [뉴시스]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궁중족발’ 건물. [뉴시스]

아무리 떨어지고 있다지만, 매달 나가는 돈인 만큼 임차인에게 임대료는 항상 큰 부담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임대료 상한제 등 강한 규제를 통해 임대료를 낮추려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대다수 실패했다. 독일은 2015년 6월 베를린 등 4개 도시에서 ‘최초 임대료 상한제’를 시행했다. 제도 시행 1년 뒤인 2016년 독일경제연구소(DIW)는 ‘최초 임대료 상한제가 임대료 상승을 막지 못했고 오히려 단기 임대료 급등을 불러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예외 조항을 악용해 임대료를 올리거나, 제도 시행 전 임대료를 미리 올린 것이었다. 독일세입자협회도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계획했던 임대료 상한선보다 30% 이상 최초 임대료가 올랐다’고 밝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역시 주거 임대료 상한제를 시행했으나 공급 감소와 임대주택 질 저하로 1995년 관련 규제를 폐지했다. 현재 매사추세츠를 포함한 미국 26개 주에서는 임대료 규제가 법으로 금지돼 있다. 

국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임대료보다 임대차 보호기간이다. 일단 보호기간에는 임대료 인상 상한선이 있다. 정부는 1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임법) 시행령을 개정해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9%에서 5%로 낮췄다. 하지만 상임법 제10조 2항에 따르면 임차인 보호기간은 5년에 불과하다. 끝나면 다시 상한 없이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장기간 이어지는 임대차 갈등은 대부분 이 5년 상한이 끝난 뒤 벌어진다. 

6월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서 ‘궁중족발’집을 운영하는 김모(54) 씨는 가게 임대료 문제로 건물주 이모(60) 씨에게 망치를 휘둘러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와 이씨는 임대료 인상을 둘러싸고 2016년부터 다퉈왔다. 그해 1월 건물을 사들인 이씨가 김씨의 가게 임대료와 보증금을 크게 올렸다. 당초 보증금 3000만 원-월 297만 원이던 임대료를 보증금 1억 원-월 1200만 원으로 올린 것. 이에 김씨가 반발하자 이씨는 명도소송을 냈다. 임대차 보호기간 5년이 지났으니 법원은 당연히 이씨 손을 들어줬다. 이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집행관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총 12차례 강제집행을 시도했으나 김씨와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 활동가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임차인들이 이렇게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보호기간이 끝나고 임대인이 임대료를 크게 올려 퇴거를 요구해도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 게다가 재건축을 하면 보호기간과 상관없이 건물을 비워줘야 한다. 상임법 제10조 1항의 예외조항에 따르면 안전상 이유로 재건축을 한다면 임대차 보호기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임대인의 요구로 가게를 비워야 한다면 다른 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해당 가게를 운영하며 쌓아온 단골이나 상권 형성 등에 대한 보상은 받을 수 없다. 물론 계약기간 5년 안에 다른 임차인에게 가게를 넘긴다면 ‘권리금’으로 이를 보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이 끝나면 권리금 보장이 안 된다. 건물주가 새 임차인을 받고 싶거나, 그 자리에 직접 점포를 내고 싶다면 임대 재계약을 거부하면 된다. 물론 임차인이 기간 만료 6개월~1년 전 재계약을 요구하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긴 하다. 거부하려면 임차인에게 상당한 수준의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피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임대료를 시세 이상으로 확 올려버리면 된다. 이는 재산권 행사이니 법적 규제도 불가능하다. 물론 임차인도 이에 대해 소송을 걸 수는 있다. 하지만 소송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가게 영업이 불가능하니 소송까지 불사할 임차인은 많지 않다. 

게다가 권리금도 받을 수 없다. 현행법상 권리금은 임차인 간 주고받는 돈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처음으로 건물에 입주해 권리금을 형성한 업주도 억울하겠지만, 거액의 권리금을 내고 새로 들어온 임차인은 더 황당하다. 다른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 이미 낸 권리금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맘상모 관계자는 “결국 임차인은 권리금은 물론, 매장 인테리어 비용조차 못 건지고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해외에는 권리금도 없다고?

7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국민운동본부’ 출범식. [뉴스1]

7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국민운동본부’ 출범식. [뉴스1]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임차인과 정부, 시민단체는 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7월 11일 국회에서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국민운동본부’(본부) 출범식이 열렸다. 본부는 소상공인연합회,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연합 등 239개 단체가 모여 계약갱신요구권(보호기간) 연장 등 임차인 권리 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일을 한다. 이날 출범식에서 본부 측은 “원칙적으로는 기간에 제한이 없는 임대차 계약갱신요구 기간을 보장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원하는 법안은 이미 여러 번 발의됐다. 현재 국회에는 보호기간 관련 내용을 담은 법안 7건은 물론, 총 25건의 상임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는 상태다. 출범식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상임법 개정안이 국회에 언제 제출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됐다. 이렇게 오랫동안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해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국민운동본부까지 출범한 데 대해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올가을 정기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대차 보호기간 연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위험성이 있는 데다, 임대료가 오를 수도 있기 때문. 실제로 1989년 주택 임대차 존속기간 보장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자, 제도 개정 후 2년간 서울지역에서 연 20%가량씩 전세금이 오른 사례가 있다. 

권리금 같은 관행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상권 개척에 대한 비용을 임차인끼리 주고받으니 피해가 커진다는 것. 하지만 권리금은 한국만의 관행은 아니다. 임차인이 쌓아놓은 영업적 가치 등을 보장하는 법적 제도나 관행은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권리금 대신 각각 ‘영업권’ ‘영업재산’ 등의 이름으로 임차인의 상권 개척에 대한 노력을 인정해준다. 당연히 관련 보상체계도 갖추고 있다. 

영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업권(한국의 권리금)을 별도 재산권으로 인정한다. 하나의 재산권이기 때문에 임차인이 타의에 의해 더는 영업할 수 없거나 강제로 폐업하게 되면 임대인 등에게 영업권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임대차 기간에도 법적 제한이 없다. 임대인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임차인의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없다. 또 특별한 사유가 임차인과 관련 없다면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퇴거에 대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임대료 연체 등 임차인의 잘못이 있다면 계약갱신 거부가 가능하다. 

프랑스는 한국과 유사한 제도를 갖고 있다. 권리금을 ‘영업재산’이라 부르며 일부 인정해주는 것이다. 영업재산은 임차인의 소유고, 다른 임차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 하지만 임대차 계약갱신 거부 등 받을 임차인이 없으면 양도가 불가능하다. 이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고액의 퇴거 보상을 해줘야 한다. 또 임차인의 영업 안정을 위해 임대차 보호기간이 9년으로 설정돼 있다. 

미국은 고객 관계, 노하우 등 유무형의 영업자산을 ‘영업양도권’이라 부른다. 이는 계약에 넣을 수 있는 사항일 뿐,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약에 영업양도권이 들어가면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 없이 임차권을 다른 임차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 사적 자치의 나라답게 임대차 보호기간도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임대차 보호기간은 5년 정도고 갱신청구권을 계약 조건에 넣는다. 갱신청구권이 계약에 포함돼 있다면 임대인은 특별한 사유 없이 임차인의 재계약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관행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는 것이다.


권리금 법적 보호 없어도 한국보다 나아

일본도 미국과 유사하게 법으로 정한 임대차 보호기간이나 권리금 보장 규정이 없다. 일본의 상가 임대는 크게 계약 기간이 정해진 일반 임대차와 계약 기간이 따로 없는 무기한 임대차로 나뉜다. 일반 임대차부터 살펴보면 계약이 종료됐다고 바로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약갱신거부기간’이라는 제도 때문. 이 제도에 따르면 임대인이 임차인과 재계약을 거부하려면 계약 종료 1년~6개월 전까지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 임차인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 

게다가 법원에서 계약 해지 정당성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는 무기한 임대차 계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당성 판단 기준에는 △각각 건물을 필요로 하는 이유 △임대차 계약 결과와 건물의 안정성 △적절한 퇴거료 지급 여부 등이 있다. 즉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퇴거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계약 해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 

그렇다고 함부로 임대료를 올릴 수도 없다. 일단 일본에서 임대료를 올리는 것은 임대인의 자유다. 하지만 임차인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바로 소송전이 된다. 재판에서 임대인이 이기면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임차인이 이기면 임대인은 올린 임대료와 법원이 적절하다고 판결한 임대료의 차액을 연 10% 이익을 붙여 임차인에게 지급해야 한다. 

법원의 임대료 적절성 판단 기준은 부동산 감정평가 기준이다. 이때 단순히 주변 시세만 감정해 적정 임대료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임차인이 임대료 상승에 기여한 바가 있으면 이를 반영해 적정 임대료가 내려간다. 즉 임차인의 가게가 성업해 주변 상권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면 이를 일종의 영업권으로 인정해 법원이 적정 임대료 판단에 반영한다. 

소상공인단체 관계자는 “해외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 임대차 보호기간 연장, 권리금 보호는 상대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자는 호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임차인이 장사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며 상임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8.08.08 1150호 (p12~15)

  •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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