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9

2018.07.31

풋볼 인사이트

“1000억 원 안 주면 이적 못 시켜”

17세 이강인, 발렌시아 1군 입성 … 세계적 플레이 메이커 기대

  • 입력2018-07-31 11: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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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스페인 명문 구단 발렌시아 CF 메스타야와 8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계약을 맺은 이강인. [동아DB]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스페인 명문 구단 발렌시아 CF 메스타야와 8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계약을 맺은 이강인. [동아DB]

    7월 21일 스페인발(發) 소식이 한국 축구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만 17세, 고교 2년생인 이강인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명문팀 발렌시아 CF 메스타야와 재계약한 것. 단순히 기간만 늘린 게 아니다. 4년 계약에 붙은 ‘바이아웃(Buy-Out)’ 금액이 8000만 유로(약 1053억 원)다. 

    ‘바이아웃’은 축구 이적시장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용어다. 한 선수가 A팀과 계약을 맺었는데 B팀이 이 계약을 깨고 해당 선수를 데려가는 데 드는 액수를 가리킨다. 지난해 여름 파리 생제르맹이 FC바르셀로나의 네이마르를 2억2000만 유로(약 2897억 원)의 바이아웃을 지불하며 품은 게 대표적 사례다. 바이아웃은 선수 가치를 인정하는 지표인 동시에 계약을 보호하는 장치다.

    벌써 한국 축구는 이강인에 기댄다

    이강인. 축구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특급 유망주’다. 만 6세 때 KBS 예능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하며 화제가 됐다. 2002 한일월드컵에 출전했던 유상철 슛돌이팀 감독(현 전남 드래곤즈 감독)과 골대 맞히기 내기에서 승리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이강인은 왼발을 잘 쓰는 미드필더다. 플레이 메이커로 최전방 공격수 바로 아래서 공격 전반을 창조한다. 흔히 말하는 ‘킬 패스’에 능하고 직접 골문을 열어젖히는 능력도 탑재했다. 170cm 중반대 신장으로 스피드가 좋다. 상체를 흔드는 동작으로 상대 수비수를 속이고, 좀 더 빠른 몸짓으로 다음 장면을 만들어나간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과도 연을 쌓아가고 있다. 이강인이 처음 스페인으로 날아간 건 2011년이다. 초교 4학년 무렵 가족 모두 비행기에 올랐다. 그간 국내 지도자 눈에 띌 기회가 없었던 이강인은 지난해 처음 U-18 대표팀에 들었다. 두 살 많은 형들과 뛰었는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 5월 프랑스에서 열린 툴롱컵에서도 돋보였다. 특히 프랑스 U-21 등 연령대가 높은 팀을 상대로 발군의 기량을 보였다. “제 몫을 해낸 건 이강인이 유일하다”는 말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명단에 들 가능성도 제기됐다. 아시아경기대회 연령 기준은 U-23. 이강인과는 최대 여섯 살 차이가 난다. 신체 조건이 우월한 프랑스 선수들과도 곧잘 싸우던 이강인이라면 한번 부딪혀볼 법도 했다. 실제 김학범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역시 6월 인도네시아 전지훈련 때 이강인의 합류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을 마친 이 선수가 극도로 피곤해했고, 소속팀 발렌시아도 난색을 표하면서 무산됐다. 

    발렌시아는 유망주를 잘 키우기로 소문났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에서 최고 성적을 내는 빅클럽과 선수 육성에 노하우를 가진 클럽은 다르다. 발렌시아는 전통적으로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후자의 색깔도 짙었다. 세계적 미드필더로 거듭난 다비드 실바(맨체스터 시티), 후안 마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이 발렌시아 출신이다. 

    이강인은 그런 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발렌시아는 구단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강인의 사진을 게재하며 ‘우리의 어린 박쥐(발렌시아 상징)’라는 캡션을 달았다. 지역지 ‘수페르 데포르테’는 ‘발렌시아의 보석’이란 찬사까지 보냈다. 이강인은 지난해 성인 무대에도 데뷔했다. 발렌시아 2군이 참가하는 스페인 3부 리그에 발을 내디뎠다. 

    이강인이 성공한 가장 큰 비결이라면 ‘한국형’과 ‘유럽형’의 적절한 조화가 아닐까 싶다. 흔히 한국 선수는 기본기에 취약하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실제 유소년 단계에서 공 다루는 기술에 꽤 긴 시간을 할애한다. 다만 실전에 응용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분석한 개인적 소견이다. 

    이강인은 10대 초반부터 한 시즌에 50경기 이상을 치렀다. 코피까지 흘려가며 뛰었다. 한국에서 갖춘 기본 틀을 상황에 맞게 적용해볼 기회가 차고 넘쳤다. 스페인에서 자격증을 따 국내로 넘어온 어느 지도자의 한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제가 지도하는 초등학생이 뛰는 공식 리그 경기가 1년에 10경기도 안 됩니다.” 

    경기 결과보다 경기 내용에 맞춰 선수 성장을 기다려주는 선수 육성 철학도 빼놓을 수 없다. 이강인은 그렇게 ‘기본기를 위한 기본기’가 아닌 ‘실전에 적용할 기본기’를 키웠다. 그사이 ‘어떻게 몸을 써야 동양인의 작은 체격으로도 극복할 수 있는지’ 등의 요령을 익혔다. 또 경기 흐름을 읽고 운영하는 법 또한 깨쳤다.

    치열한 경쟁으로 얻은 자리

    KBS 예능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했을 당시 이강인.

    KBS 예능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했을 당시 이강인.

    여기에 단단한 정신력까지 갖췄다. 프로구단 유스팀에선 한 시즌만 지나면 선수 상당수가 물갈이된다. 무한 경쟁 속에서 까딱하면 바로 도태된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것. 같은 연령대의 국내 대표팀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이강인의 생존 본능은 월등히 강했다. ‘스페인에서 동양인으로 살아남기’란 과제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해낸 결과다.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발렌시아 감독의 눈에 들어 1군 훈련 기회를 얻은 것도 이 덕분이다. 

    이강인 측은 이번 재계약 조건에 꽤 흡족해했다. 먼저 어느 팀 소속이냐가 성장기 선수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이강인은 유소년팀의 마지막 단계인 후베닐 소속이지만 성인팀까지 아울렀다. 지난 시즌 2군과 후베닐에서 실전을 소화하면서 1군 훈련을 병행했다. 이번 재계약 조건으로 이강인 측은 평소 2군 생활에 1군 콜업을 제시했다. 하지만 구단에서는 그를 1군에 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1군 스케줄을 중점적으로 소화하며 출전 엔트리에 들지 못한 날에는 2군 경기를 뛰도록 배려하겠다는 것. 또 현재 스위스에서 프리시즌 중인 1군 전지훈련에도 곧장 합류할 것을 명했다.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진전된 그림이다. 

    연봉 차원에서도 괜찮은 대우를 받았다. 이강인은 현 발렌시아 유스팀 출신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액수를 보장받았다. 물론 그간 이적설이 났던 맨체스터 시티 등이 제시한 조건보다는 못하지만 이강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발렌시아로선 유소년에게 꽤 큰 금액을 베팅한 것”이다. 

    이강인 소식은 줄곧 국내 포털사이트를 달구고 있다. 향후 프리메라리가 데뷔 등을 떠올려봤을 때 훨씬 빈번해질 것이다. ‘스페인축구협회가 이강인의 귀화를 원한다’는 외신 보도의 신빙성은 더 따져봐야 하지만, 그만큼 관심이 뜨겁다고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박지성, 손흥민에 이어 세계적인 대형 선수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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