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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차며 왔다 감동 안고 돌아가요”

독일전 승리로 월드컵 후유증 싹 가셨다

“혀 차며 왔다 감동 안고 돌아가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독일전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한국 대표팀의 승리에 환호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독일전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한국 대표팀의 승리에 환호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앞으로 한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다시 밟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20대 때 보는 마지막 월드컵 본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왔습니다.” 

6월 27일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마지막 독일과 경기가 시작되기 10분 전 서울 광화문 거리응원 현장에서 만난 김모(21) 씨의 말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자 늦은 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조차 기대하지 않을 만큼, 이번 월드컵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는 낮았다. 

저조한 성적에 선수들만큼이나 힘들었던 것은 치킨, 방송 등 월드컵 특수를 노린 업체들이었다. 치킨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그래도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테이블을 두고 치킨을 파는 가게는 울상이었다. 굳이 외출까지 해가며 월드컵 중계를 보려는 사람이 크게 줄었기 때문. 

하지만 독일전 승리로 월드컵 상처가 싹 가셨다. 승리 가능성이 보이자 사람들이 하나 둘 거리응원 현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승리가 확정되자 인근 가게에 축배를 들려는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승리

6월 27일 밤 10시 30분에 찾은 광화문은 아직 한산했다. 도착 전까지만 해도 지난 몇 번의 월드컵 거리응원을 생각하며 차가 광화문 인근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막상 근처에 도착하니 응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리응원을 안 하나 싶어 광화문광장 쪽까지 가봤고, 드디어 인파를 만났다. 꽤 많은 사람이 붉은 옷을 입고 모여 있었지만 광화문광장도 다 채우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 경기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 

한국과 스웨덴 경기의 지상파 3사 시청률 합계는 40.9%(닐슨코리아), 멕시코전은 0.1%p 떨어진 40.8%를 기록했다. 반면 2014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와 한국의 1차전 경기 시청률은 총 52.5%로 이번 월드컵보다 훨씬 높았다. 

거리응원 현장에서도 한국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광화문 거리응원 현장에서 만난 서울 강남구의 이유현(22·여) 씨는 “월드컵 본선에 나간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승패와 상관없이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최대한 많은 사람과 즐기고 싶어 (거리응원에) 나왔다”고 밝혔다. 

응원 현장에서는 꽤 많은 사람이 돗자리, 응원도구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광화문광장 앞에서 도구를 판매하던 정모(25·여) 씨는 “응원도구는 경기가 시작되면 팔리지 않는다. 경기 시작 전에 다 판매해야 하는데, 매번 들고 나온 물건의 반도 팔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전 매출은 총 10만 원이었고, 멕시코전은 그나마 주말이라 많이 팔려서 20만 원이 나왔다. 오늘은 전반전이 끝나가는데 8만 원어치도 못 팔았다”며 답답해했다. 

음식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 광화문 인근 편의점 앞 외부 매대에서 맥주를 파는 아르바이트생 임모(24) 씨는 “스웨덴전, 멕시코전 때도 맥주를 팔았다. 경기 일정이 진행될수록 거리응원을 나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 같다. 매출도 매번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인근 맥줏집은 더 한산했다. 가게 여기저기에 ‘대형 스크린 완비’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집에서 혼자, 혹은 가족과 함께 대표팀 경기를 시청했기 때문. 

6월 21일 신한카드 집계에 따르면 한국과 스웨덴 경기가 있었던 18일 오후 6~12시 배달 치킨업종에서 개인 신용카드 이용금액이 일주일 전에 비해 133.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배달 피자업종에서는 127.6%, 배달 애플리케이션에서는 48.1% 증가세를 보였다. 이에 반해 주점에서는 16.1% 늘었다. 경기 시간과 평일 여부가 비슷했던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아르헨티나전 때는 전주 대비 배달 치킨업종 이용 금액 증가세가 108.4%에 불과했다. 대다수 사람이 주점이나 외부에 모여 경기를 시청한 것. 

일부 가게는 아예 치킨을 튀겨 나와 응원 현장에서 판매했다. 시청 앞에서 치킨을 팔던 조모(28·여) 씨는 “월드컵 기간에는 하루 종일 닭만 튀기겠다 싶어 발주를 많이 해놨는데 손님이 오질 않으니 여기까지 나와 치킨을 팔게 됐다. 매 경기 4시간 전부터 나와 판매하는데, 한 번도 경기 전에 다 팔지 못했다. 결국 경기가 끝나고 떨이로 치킨을 처분했다”고 밝혔다.


승리로 현장 분위기도 대역전

러시아월드컵 광화문 거리응원 현장의 한 시민. [박해윤 기자]

러시아월드컵 광화문 거리응원 현장의 한 시민. [박해윤 기자]

하지만 독일과 경기에서 전반전을 잘 버티자 희망론이 들불처럼 일었다. 45분간 점유율은 낮았지만 종종 독일의 골문을 두드렸기 때문. 대표팀의 분전에 퇴근하던 사람도 하나 둘 거리응원 현장에 자리를 잡았다. 희망은 응원하는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꺾은 것. TV 중계 시청률도 상승해 독일전은 지상파 3사 합계 41.6%로 세 경기 가운데 가장 높았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였던 알제리전 시청률 43.6%를 거의 따라잡은 것. 

이날 시청 인근에서 간식 매대를 연 임모(27) 씨는 “3번의 경기 중 처음으로 물건을 다 팔았다. 후반전부터 손님이 하나 둘 늘더니 경기가 끝나기 전 매대를 다 비웠다. 두 번째 골은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경기가 승리로 끝나니 축배를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직장인 박모(28) 씨는 “집에서 혼자 중계를 보다 결승골이 터지자 친구들에게 연락해 동네 맥줏집에 잠시 모였다. 한 시간만 마시고 들어가려 했는데 막상 경기의 감동을 나누다 보니 새벽 4시까지 떠들었다. 출근길이 피곤하긴 했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는 마감 일정으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 후 응원 현장의 분위기가 어땠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경기 시작 전 광화문 거리응원 현장에서 만난 조모(42·여) 씨는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데도 거리에 나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거리에 나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한국이 지더라도 슬픔을 나눌 수 있다. 만에 하나 한국이 이긴다면 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겠나.”




주간동아 2018.07.04 1145호 (p16~17)

  •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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