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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가만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마들렌하세요’

프랑스식 구움 과자에서 발견한 휴식

가만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마들렌하세요’

가만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마들렌하세요’
사람은 대부분 즐겨 듣는 음악이나 노래방 열창 목록이 있을 것이다. 나만의 뮤직 플레이 리스트를 누군가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금세 낯이 붉어진다. 하나같이 좋은 노래지만 목록 공개는 어쩐지 창피하다. 노래 하나하나가 유행하던 시절 나의 추억, 사랑, 이별을 포함해 온갖 감정의 찌꺼기가 그 목록에 드라마처럼 기승전결로 연결돼 있는 것 같아서다. 그 쑥스러운 목록을 버리지 못하고 애지중지하는 것은 마음이 마르고 날카로워질 때마다 감정이 말랑말랑해지는 단비를 내려주기 때문이리라. 많은 것이 빠르게 세상을 스치고 지나가는 요즘, 돌이켜보면 노래 한 소절, 음식 한 입, 문장 한 줄, 사진 한 장이 주는 감동을 가슴 깊이 새겨본 적이 언제인가 싶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스완네 집 쪽으로’ 편에서 마들렌과 차 한 모금으로 찾아온 긴 사색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준비해준 마들렌 조각과 차를 삼킨 그는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중략)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외따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그 쾌감은 사랑의 작용과 같은 투로, 귀중한 정수(精髓)로 나를 채우고, 그 즉시 나로 하여금 삶의 무상을 아랑곳하지 않게 하고, 삶의 재앙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삶의 짧음을 착각으로 느끼게 하였다’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다가온 처음 한 입의 감상을 시작으로 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되짚어 추억 속 장소 콩브레(Combray)의 마들렌에까지 천천히 다다른다. 재미있는 점은 1997년 번역본에 마들렌이라는 단어에 붙은 주석인데, ‘아주 평범한 버터케이크로서, 틀에 넣고 구움’이라고 돼 있다.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 이끌어낸 프루스트의 생각의 깊이와 길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설명이다. 이로써 나도 마들렌 한 조각을 타고 추억 속에 살짝 빠져보고 싶어진다. 


가리비 껍데기 모양의 마들렌. 
얼마나 볼록하고 완성도 높은 배꼽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가리비 껍데기 모양의 마들렌. 얼마나 볼록하고 완성도 높은 배꼽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마들렌은 밀가루, 설탕, 달걀, 우유, 버터에 레몬즙을 섞어 반죽을 만들고 가리비 껍데기 모양의 틀에 구워 만드는 단순한 과자로, 프랑스에서 차와 함께 먹는 간식이다. 마들렌 표면에 설탕물 같은 글라사주를 바르기도 한다. 이때 글라사주가 두꺼우면 너무 달고 갈라지며 이에 들러붙어 마들렌의 밀도 있는 맛과 식감을 오히려 망칠 수 있다. 마들렌은 가리비 껍데기처럼 골이 파인 모양의 반대편으로 볼록 튀어나온 ‘배꼽’을 갖고 있다. 이 배꼽의 생성에 대해서는 반죽의 온도 차이 때문, 베이킹파우더가 뭉쳐서, 틀의 모양 때문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보다는 얼마나 볼록하고 완성도 높은 배꼽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잘못 구우면 배꼽이 터지는데 이때 흘러나오는 반죽을 ‘마들렌의 눈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들렌은 프랑스 로렌 지방 코메르시(Commercy)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는데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중세시대 어느 요리사가 최초로 조개 껍데기에 반죽을 넣고 구운 빵, 17세기 폴 드 공디(Paul de Gondi)라는 추기경이 코메르시에 유배됐을 때 그의 요리사가 도넛처럼 튀기는 반죽을 변형해 만든 과자, 18세기 전직 폴란드 왕이던 스타니슬라스 레슈친스키(Stanislas Leszczynski) 공작이 유배됐을 당시 그의 요리사가 만들어준 과자라는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세 요리사 이름이 모두 ‘마들렌’이라는 점이다.




주간동아 2018.06.06 1141호 (p77~77)

  •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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