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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가 지명타자를 죽인다

지명타자의 가장 큰 적은 타구 방향 분석에 따른 수비 시프트

빅데이터가 지명타자를 죽인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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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롬버그’라는 네 글자를 보고 야구가 제일 먼저 떠오른 독자가 있다면 ‘아주 특이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론 블롬버그’(70)라고 이름(first name)과 나이를 더해도 별로 힌트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처음부터 그가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5월 22일까지 메이저리그 무대를 경험한 선수는 총 1만9262명. 이 가운데 성(姓)이 블롬버그(Blomberg)였던 선수는 딱 한 명밖에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8년간 뛰면서 통산 타율 0.293에 52홈런, 224타점을 남긴 선수를 태평양 건너편에 사는 누군가가 기억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성적만 보면 오래전 잊힌 선수라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블롬버그는 야구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1973년 4월 6일 경기 때 첫 타석(당시 뉴욕 양키스)에서 쓴 방망이는 미국 뉴욕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블롬버그는 이날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수비는 하지 않고 공격만 하는 포지션으로 출장했다. 그렇다. 아메리칸리그가 그해 시즌부터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뒤 공식 경기에 지명타자로 처음 등장한 선수가 바로 블롬버그였다. 재미있는 건 이날 블롬버그의 첫 타석 결과가 볼 넷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그 방망이는 별로 대단한 일을 해낸 것도 아닌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행운을 누렸다. 물론 블롬버그가 사상 첫 번째 지명타자가 된 것 역시 ‘역사의 우연’ 때문이겠지만….


지명타자가 승리를 불러왔다

빅데이터가 지명타자를 죽인다
아메리칸리그에서 지명타자 제도 도입을 논의했던 건 1968년 리그 평균 타율이 0.230까지 떨어지는 등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해 아메리칸리그에서 3할대 타자라고는 타율 0.301로 타격왕을 차지한 칼 야스트렘스키(79·당시 보스턴 레드삭스) 한 명뿐이었다. 

당시 찰리 핀리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주는 “타격이 약한 투수 대신 타격에만 전념하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전체 공격력이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아메리칸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게 됐다. 내셔널리그 쪽 생각은 반대였다. 투수가 타격 부담을 덜게 되면 투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리그 타격 성적이 더욱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뚜껑을 열자 아메리칸리그 쪽 주장이 옳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당 평균 득점은 1972년 3.47점에서 4.28점으로 0.81점 올랐다. 1901년 아메리칸리그가 문을 연 뒤 지난해까지 이보다 평균 득점 변화가 큰 건 1911년(0.96점 상승) 딱 한 번뿐이었다. 1911년은 야구공이 더 멀리 더 강하게 날아갈 수 있도록 (지금처럼) 코르크를 공인구 속심으로 쓰기 시작한 해다. 반면 내셔널리그는 72년 3.91점에서 이듬해 4.15점으로 큰 변화 없이 지나갔다. 

이로부터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4대 프로 스포츠(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야구) 가운데 양대 리그(또는 콘퍼런스)가 다른 규칙을 채택하고 있는 건 메이저리그뿐이다. 그리고 1997년 리그가 서로 다른 팀도 정규리그 때 맞붙도록 하는 ‘인터리그’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지명타자 제도가 아메리칸리그 팀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21년 동안 아메리칸리그 소속 팀은 인터리그에서 2890승2574패(승률 0.529)를 기록했다(그래프 참조). 반반(승률 0.500)보다 승률이 0.029 높은 게 그렇게 대수일까. 144경기를 치르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승률 0.529를 기록하려면 76승을 거둬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가 10구단 체제를 갖춘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3년간 4위 팀 평균 승수가 76승이다. 

물론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퍼시픽리그 소속 팀은 2005년 일본야구기구(NPB)가 리그 교류전을 도입한 뒤 지난해까지 981승55무872패로 앞서 있다. 이를 승률로 바꾸면 0.529다. 이 역시 (역사의) 우연 때문일 터. 지명타자 제도가 꼭 승률 0.029를 끌어올린다고 볼 수 있는 근거 같은 건 물론 없다. 

그런데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는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인터리그 경기가 총 61번 열렸는데 내셔널리그가 40승21패(승률 0.656)로 앞서 나가는 중이다. 이대로 시즌을 마치면 내셔널리그는 2003년(137승115패·승률 0.544)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인터리그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갑자기 내셔널리그가 이렇게 강해진 이유는 뭘까. 반대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아메리칸리그 팀 지명타자들의 방망이가 식었기 때문이다. 현재 아메리칸리그 지명타자 평균 OPS(출루율+장타력)는 0.726으로 리그 전체 평균(0.753)보다 낮다. 수비는 하지 않고 공격만 하는 포지션인데도 리그 평균보다 공격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게 새로운 트렌드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일 수도 있다. 지난해에도 아메리칸리그 지명타자 평균 OPS(0.735)가 리그 전체 평균(0.753)보다 낮았다. ‘인터리그 시대’에 지명타자가 리그 평균보다 OPS가 떨어지는 건 이 두 시즌뿐이다. 2016년만 해도 지명타자는 9개 야수 포지션 가운데 OPS(0.780)가 가장 높은 자리였다.


돈 많이 받지만 노쇠한 지명타자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원래 지명타자로 포지션 전향을 했어야 할 선수들이 계속 수비 포지션을 놓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리그 전체 OPS로 보면 여전히 아메리칸리그(0.753)가 내셔널리그(0.712)보다 높다는 게 그 증거다. 공격이 된다면 수비력이 조금 떨어져도 계속 그라운드에 수비수로 내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가 가능한 첫 번째 이유는 수비할 일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타자가 타석에서 혼자 아웃되는 일(삼진)이 폭발한 것이다. 현재 아메리칸리그 경기당 평균 삼진은 8.51개로 안타(8.55개)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빅데이터’ 역시 한몫 거들었다. 타자가 때린 공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두 저장하는 시대가 되면서 ‘수비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구단이 늘어났다. 수비수가 혼자 자기 감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데이터에 따라 수비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수비수 개인 역량의 비중도 줄었다. 사실 삼진이 늘어난 것부터 빅데이터 분석이 증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 대신 지명타자는 하향세가 눈에 보여도 장기 계약 등으로 계속 출전시킬 수밖에 없는 베테랑 선수가 들어서는 자리로 변하고 있다. 올 시즌 현재 메이저리그 지명타자로 1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 8명은 평균 나이 32.3세로 야수 전체 평균(28.6세)보다 네 살 가까이 많다. 지명타자는 평균 연봉(1330만 달러·약 143억 원)도 리그 평균(452만 달러)보다 3배 가까이 높다. 메이저리그에서 평균 연봉이 제일 높은 포지션이 지명타자다. 

지명타자는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줄곧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내셔널리그나 센트럴리그 역시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할 때가 됐다는 의견부터, 반대로 다시 지명타자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까지 저마다 생각이 분분하다. 그사이 빅데이터는 조용히 지명타자라는 직업이 하는 일을 바꾸고 있다.




주간동아 2018.05.30 1140호 (p66~67)

  •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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