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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자미(faux amis)’의 덫에 걸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호주 총리 부인에게 실언한 이유

포자미(faux amis)’의 덫에 걸린 마크롱

5월 1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과 맬컴 턴불 호주 총리 부부. 왼쪽 사진은 마크롱 대통령 얼굴을 ‘페페 르 퓨’와 합성한 5월 3일자 시드니 ‘데일리 텔레그래프지’. [AP=뉴시스]

5월 1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과 맬컴 턴불 호주 총리 부부. 왼쪽 사진은 마크롱 대통령 얼굴을 ‘페페 르 퓨’와 합성한 5월 3일자 시드니 ‘데일리 텔레그래프지’. [AP=뉴시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민망한 실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5월 2일 호주 시드니를 국빈 방문 중이던 마크롱 대통령은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공동기자회견 말미에 턴불 총리를 바라보며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 당신의 먹음직스러운(delicious) 부인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영미권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영어 잘하기로 소문 난 그가 공식석상에서 어떻게 그토록 외설적 표현을 쓸 수 있느냐며. 별의별 분석이 다 나왔다. 미식가의 나라 프랑스 출신이라 점심 메뉴에 정신이 팔려서다, 지난해 7월 프랑스를 방문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의 스물네 살 연상의 부인 브리지트 여사를 향해 ‘기막힌 몸매’라고 실언한 것에 대한 패러디다, 원래 연상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마크롱의 리비도가 부지불식간에 분출된 ‘프로이트의 말실수(Freudian slip)’다(턴불 총리의 부인 루시 여사는 브리지트 여사보다 다섯 살 연상에 같은 금발이다)…. 

호주 시드니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세 번째 가설이 맘에 들었나 보다. 5월 3일자 신문 1면에 턴불 총리와 악수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얼굴을 ‘페페 르 퓨’와 합성해 내보냈으니. 페페 르 퓨는 바람둥이 프랑스 남성을 스컹크로 형상화한 미국의 만화캐릭터다.
 
마크롱 대통령은 5월 3일 호주를 떠나기 전 기자회견에서 “신문을 보고 정말 많이 웃었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턴불 총리 역시 “아내가 마크롱 대통령의 칭찬이 기억에 남을 만큼 매력적(charming)이었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며 유머로 받아넘겼다. 

이런 양해가 가능했던 것은 유럽언어권에선 프랑스어로 ‘포자미(faux amis)’, 영어로는 ‘폴스 프렌즈(false friends)’라 부르는 개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알파벳 표기나 발음은 비슷하지만 언어권에 따라 뜻은 전혀 다른 단어들을 지칭한다. 프랑스 언어학자 막심 쾨슬러와 쥘 데로퀴니가 1928년 ‘번역가의 가짜 친구(faux amis du traducteur)라는 용어로 이를 처음 개념화했기에 프랑스어인 포자미로 더 널리 알려졌다. 

예를 들어 sensible은 영어로는 ‘합리적’이란 의미지만, 프랑스어로는 영어의 sensitive에 해당하는 ‘민감하다’를 뜻한다. 스페인어 embarazada는 영어로 ‘당황하다’는 뜻의 embarrassed와 철자가 비슷하지만 ‘임신했다’는 뜻이다. 프랑스어 temp는 영어의 time(시간)으로 번역되지만 문맥에 따라 ‘날씨’라는 의미를 띨 때도 있다. 반대로 독일어 wetter는 영어로 날씨를 뜻하는 weather에 해당하는 단어인데, 영미권 사람들은 이를 ‘비 오는’이란 뜻의 wet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영어 delicious와 표기가 비슷한 프랑스어 여성형용사 ‘d′elicieuse’는 요리에 쓸 때는 ‘맛있다’지만 사람에게 쓸 때는 ‘유쾌하다’ ‘매력적이다’라는 뜻을 지닌다. 루시 여사가 마크롱 대통령의 말실수에 대해 ‘매력적’이란 표현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암만 똑똑해도 실수를 피해갈 수 없는 법. 이번 해프닝을 보도한 미국 ‘워싱턴포스트(WP)’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어쨌든 어떤 실수들은 매우 맛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맛나다’로 쓰인 delicious는 프랑스어 d′elicieuse(남성형은 d′elicieux)의 두 번째 의미(유쾌하다, 매력적이다)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주간동아 2018.05.16 1138호 (p6~6)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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