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6

2018.05.02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댓글 여론조작’ 드루킹들의 심리

“이념적 투사이자 사회 혁명가” 스스로 세뇌 …  보상 주어지면 점차 ‘괴물’로

  • 입력2018-04-30 17: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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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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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루킹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이른바 친노무현, 친문재인 파워블로거로 드루킹이란 필명을 가진 김동원(49) 씨는 인터넷에서 각종 여론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있고, 자유한국당은 여당과 커넥션을 주장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댓글 사건이 있었던 터라 국민은 또다시 놀랐다. 개인이나 작은 조직 차원에서 벌어진 것인지, 아니면 실제 거대한 권력층과 교류 또는 특정 세력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여론조작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파장은 적잖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까지 가세해 드루킹 사건이 국정원 댓글 사건보다 더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특검이 이뤄질 가능성도 커졌다. 과거에도 개표조작, 여론조작 및 왜곡 등과 관련해 논란과 시비는 있었지만, 인터넷 댓글 조회 수 조작 등이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특히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는 누구나 여론조작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관점에서 댓글 여론조작을 하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해봤다. 

    첫째, 또 다른 형태의 권력 욕구다. 일반인도 자신이 단 댓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고, 많은 사람이 ‘좋아요’라고 추천하거나 칭찬과 지지의 답글을 달아주기를 원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보편적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으면서도 자존감을 한층 올릴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정 욕구’가 커지면 ‘권력 욕구’로 변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소극적 자세가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꼭 받아들여야 한다는 적극적 자세로 전환된다.

    ‘인정 욕구’ 커지면 권력욕 추구

    사실 인터넷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다는 사람은 이미 어느 정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지만, 댓글 조회 수를 조작하고 여러 아이디(ID)로 댓글을 남기는 사람은 적극성의 정도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자신의 의도대로 여론이 조성되고, 그것이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면 그의 권력 욕구는 충족된다. 이러한 권력 욕구는 무척 강렬해 지치지 않을뿐더러 더 큰 만족감을 좇는다. 주변 사람을 끌어들이고, 집단화 혹은 세력화를 꾀하며, 점차 커지는 영향력을 확인하면서 실제 생활에서 권력을 점검하려 든다. 그러다 보니 무형의 정신적 만족감 외에 물질적 보상까지 바랄 수 있다. 내 여론조작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나 세력에게 금전 또는 자리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실제 보상이 주어진다면 여론조작을 생업으로 여기면서 더욱 정교하고 파괴적인 기법을 개발해나갈 것이다. 점차 괴물이 돼가는 것이다. 

    둘째, 자기 신념의 확인이다. 자신은 매우 정당하고 올바른 생각을 가졌다고 믿기에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해간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한다고 합리화하면서 큰 뜻을 이루려면 다소 부당한 꼼수를 사용해도 된다고 믿는다. 댓글 여론조작을 부도덕한 행동으로 인식하기보다 책략으로 간주한다. 어차피 국민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일이니 여론조작의 폐해는 하찮다고 생각한다. 옳은 신념을 퍼뜨리려면 논리적 설명보다 감정적 분위기를 이용해 대세를 형성해야 많은 사람이 따라온다고 확신한다. 때로는 역설적 논리로 관심을 끌고, 때로는 반대편 분위기가 강한 것처럼 보이게 해 우리 편의 결집력을 강화하는 등 여러 책략을 사용하면서 ‘나는 진정한 이념적 투사요, 사회적 혁명가’라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자기애적인 만족을 함께 느끼면서 자신만의 견고한 생각의 탑을 쌓아간다. 아집을 넘어 망상이 될지언정 자신의 생각이 지상 최고의 선(善)이라 믿고,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을 잊지 않는다. 이쯤 되면 과대망상 수준이다. 



    셋째, 적개심의 발로다. 찬성, 반대 가운데 어느 쪽 댓글이 더 많은지에 따라 여론 형성의 기류를 판단한다. 실제 중도적 생각을 갖고 있거나 중도성향의 사람은 댓글 내용과 개수를 파악해 사안의 중요성 및 흐름을 파악한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이른바 부동층과도 겹친다. 댓글을 읽어보니 이 관점도 맞고 저 관점도 맞지만, 대세가 이쪽인 듯하니 자신도 사회적 대세를 따르는 게 현명하고 마음도 편할 것이라고 믿는다. 소수 집단보다 다수 집단에 속하는 게 더욱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중의 속성을 잘 알기에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드높이면서 열심히 댓글조작을 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상당 부분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교묘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상대방의 비도덕성, 비리, 문제점, 추악함 등을 부각해 대중에게 혐오감과 증오감을 고취한다. 대중도 이미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에 사로잡혀 생동감 있고 호소력 짙게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 ‘도대체 상대방이 얼마나 잘못했으면 저렇게까지 미워할까’라는 의심이 들게끔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냉혹한 승부사, 정글의 야수

    넷째, 양심의 결여다. 조작은 거짓말이자 반칙이다. 따라서 반사회적 행동에 해당한다. 반사회적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양심이 부족하거나 결여돼 있다. 보통 사람은 일단 양심에 찔려 가슴이 떨리고, 나중에 발각될까 봐 두려워 식은땀이 나며, 다른 이들이 피해를 받는 것이 괴로워 반사회적 행동을 하지 못한다. 댓글조작을 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무시한다. 정당한 경쟁과 대결이 아니라, 반칙을 써서라도 이기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냉혹한 승부사 또는 정글의 야수에게나 어울린다. 혹시 아직도 많은 정치인이 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댓글조작을 시키고 또 다른 누군가의 댓글조작을 용인 또는 묵인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된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가리는 스포츠가 생각난다. 정치인은 선수요, 주변 정치인들과 정책 자문단은 코치요, 정당원과 지지층은 응원단이요, 국민은 심판이다. 그런데 심판 수가 너무 많고 국민은 경기 진행 과정을 놓치곤 한다. 그래서 국민의 심판 역할을 대신하는 검찰, 경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책임이 중요하다. 그들은 과연 자신들에게 주어진 심판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국민을 대신하는 또 다른 집단인 국회는 선수요, 코치요, 응원단이기도 하니 오롯이 심판 역할만 충실하게 할 수 없다. 드루킹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진실이 어떻게 드러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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