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6

201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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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는 천연발효식초 연구 시작해야 할 때”

  • 입력2018-04-30 17: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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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발효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생물이 효소를 이용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유용한 물질이 발생하는데 이를 발효라 한다. 된장, 간장, 청국장, 김치 등 우리나라의 수많은 발효식품은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며 그 우수성을 입증받은 바 있다. 이들과 함께 우수 발효식품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식초다. 

    식초는 시큼한 냄새와 톡 쏘는 신맛이 특징으로, 예부터 여러 음식의 조미료로 사용돼왔다. 크게 합성식초와 양조식초로 나뉘는데 식품 회사에서 화학적 방법으로 제조하는 빙초산이 합성식초다. 반면 각 지방에서 곡물이나 과일로 술을 만들고 난 뒤 발효를 계속한 것이 양조식초인데, 통상적으로 전분이 알코올이 되고 난 다음 발효를 거쳐 식초가 된다.

    초산균 외 수십여 유기산이 건강에 도움

    무주 복분자식초 발효 연구를 한 실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 중인 백상호 전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왼쪽). [박해윤 기자]

    무주 복분자식초 발효 연구를 한 실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 중인 백상호 전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왼쪽). [박해윤 기자]

    전문가들은 양조식초의 우수성에 주목해왔다. 식초에 들어 있는 초산균 외에도 식초 원료에 따라 생성되는 수십여 유기산이 체내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우수성이 입증된 일본 흑초, 이탈리아 발사믹 식초, 프랑스 샴페인 식초, 동남아시아 코코넛 식초 등 각국 토산물에 따라 다양한 식초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미생물과 막걸리, 식초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온 백상호(50) 전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식초의 우수성은 현재까지도 다양한 연구를 통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식초의 성분과 효능, 연구과제 등에 대해 물었다. 

    일반적으로 양조식초는 곡물로 만들어진다고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쌀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일단 술을 만들고 난 뒤 그것을 이용해 발효를 이어가면 초산균이 생성돼 식초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별로 작황이 많은 농산물을 활용해 다양한 과일 베이스의 식초를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감을 이용한 감식초이고, 블루베리와 복분자 농가도 상당히 늘어 블루베리식초, 복분자식초 등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우 쌀을 이용한 식초가 가장 많은데 대표적으로 흑미를 이용한 흑초가 유명하다. 또 이탈리아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를 이용해 농축 식초인 발사믹 식초를 생산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식초가 있는데 어떤 식초가 가장 영양이 풍부하고 효과가 좋은가. 

    “곡물 한 종류만으로 발효시킨 식초보다 과일을 섞어 만든 식초가 다양한 유기산이 함유돼 있어 더 좋다. 세계적으로 사과식초가 대중화돼 있고 포도, 딸기, 석류, 블루베리 등 여러 과일로 식초를 만든다. 이 가운데 발사믹 식초는 다른 과실에 비해 더 많은 종류의 유기산을 함유하고 있어 건강에 좋다고 알려졌다. 발사믹 식초의 경우 포도를 농축해 식초로 만드는데, 오래 발효시키면 표면에 균이 쌓여 고체화된다. 이를 ‘종초’라 부르며, 때가 되면 다른 항아리에 옮겨 담아 계속해서 식초를 생산해낸다. 하나의 종초로 길게는 20~30년까지 발효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숙성시킨 발사믹 식초는 발효 기간이 오래될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과실을 활용한 우리나라 식초 중에서는 어떤 식초가 우수한가. 

    “종류가 여러 가지라 특정 식초를 꼽기는 어렵다. 전라도의 경우 감이 잘 나기 때문에 가을철이 되면 감이 늘 남아돈다. 이 감들을 활용해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것이 감식초인데 이것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복분자식초도 좋다고 본다. 5년 전 전북 무주에서 복분자를 재배하는 한 농민이 이를 이용한 식초 개발 연구를 의뢰해왔다. 복분자주를 담가 항아리에 보관했더니 식초가 됐는데 이를 상품화할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후 식초균을 분리해 연구하면서 어떻게 하면 생산이 가능한지 공정을 개발해 알려줬다. 그런데 워낙 복분자가 인기라 식초로 만들 물량이 없다고 하더라. 기본 성분이 좋기 때문에 식초로 발효시켰을 때도 효능이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항산화·항암·항당뇨 등 여러 효능 입증

    백상호 전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막걸리 미생물 연구 과정에서 식초균 생성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박해윤 기자]

    백상호 전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막걸리 미생물 연구 과정에서 식초균 생성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박해윤 기자]

    그렇다면 섭취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식초는 산도가 높아 단품으로 섭취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여러 음식에 섞어 먹는 것이 좋다. 또 입맛을 돋우고,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곁들여 먹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가장 대중적인 섭취 방법은 채소나 과일에 넣는 드레싱에 섞어 먹는 것이다. 발사믹 식초의 경우 올리브 오일에 몇 방울 떨어뜨려 빵을 찍어 먹기도 한다. 또 과일 식초는 술에 희석해 먹기도 하고, 탄산수나 물에 섞어 섭취하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 미국에서는 음용 뒤 입을 꼭 헹굴 것을 권하고 있다. 이가 부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산성이 위에 부담을 줄 수도 있는 만큼 과하게 섭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식초가 우리 몸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궁금하다. 

    “알려진 바로는 항균, 항산화, 항당뇨, 항암, 체중 감량 등이 대표적이다. 또 체내에서 다른 영양소의 흡수를 촉진하고 식도역류를 예방하기도 한다. 또 일부 연구에서 심장병 및 뇌질환 예방 효과가 있다고도 알려졌다. 그런데 어떤 식초냐에 따라 효능이 다를 수 있다. 합성식초를 제외한 양조식초는 대부분 효과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원료에 독특한 성분이 들어 있어 다양한 유기산이 만들어지면 체내에서 좋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해외 다양한 논문이나 학술지에서 기능성이 입증된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아무래도 항암 효과일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가. 

    “일본 가나자와대가 흑초가 암세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했는데 억제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논문에서는 대장암 세포 억제 효과를 연구했으며, 실제로 흑초를 투입했을 때 암세포가 더는 자라지 않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런데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처럼 여러 암세포에 관한 항암 효과 연구가 아직까지 많이 나와 있지는 않다. 식초의 산성이 강해 세포에 투입했을 때 효과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그렇다면 식초의 대표적인 효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은 항산화 효과가 가장 대표적이다. 통상적으로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체내 산화물질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항산화 식품인데 식초의 경우 초산균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 특히 과일을 섞어 제조한 식초는 항산화물질이 풍부하다. 구연산, 아미노산, 글루콘산, 호박산 등 수십여 종의 유기산이 있고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항산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 건강협회 자료를 보면 식초에 안티 에이징 효과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막걸리 발효 연구하다 보니 식초까지

    무주 복분자식초 발효 샘플. [박해윤 기자]

    무주 복분자식초 발효 샘플. [박해윤 기자]

    한동안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라고 해 붐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식초가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도 있다. 일반적으로 초산이나 산이 세포에 들어가면 미토콘드리아 내에서 TCA 회로가 회전하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쉽게 말하면 체내에 산이 많아지면 이를 소비하려고 에너지를 활성화하는데 이것이 운동할 때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과 비슷해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땀 흘려 운동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체내 에너지를 소비하는 데 식초가 일정 부분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백상호 교수는 전북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홋카이도대에서 미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본 국립 바이오테크놀로지센터에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지금까지 미생물을 연구하고 있다. 그가 미생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산업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 그는 “미생물을 활용한 발효를 의대에서는 메디컬 미생물학, 공대에서는 산업 미생물학 등 다방면에 활용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미생물을 연구하려고 일본으로 간 까닭은 무엇인가. 

    “원래 식품공학을 전공했는데 미생물에 관심이 생겼다. 일본은 미생물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나라다. 특히 내가 연구하던 것이 올리고당을 만드는 곰팡이균에 관한 것이었는데 추운 지역인 홋카이도에서 사탕무가 많이 재배됐다. 그래서 설탕을 만드는 회사도 홋카이도에 많았다. 설탕회사와 함께 올리고당을 만드는 연구를 했고 학위도 받았다. 일본은 유용한 곰팡이균을 하나 발견하는 데도 수많은 기업과 연구기관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분위기다. 균 하나 찾는 데 적어도 10년이 걸리지만 제대로 찾으면 10년을 먹고살기 때문에 과감하게 투자를 하는 편이었다.” 

    식초 연구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 

    “원래 주로 연구하던 것은 막걸리였다. 전북대에 막걸리연구센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명칭을 발효식품연구센터로 바꿨다. 막걸리를 만들고 난 뒤 계속 발효를 시키다 보니 식초 연구까지 이어졌다. 사실 식초는 공업적으로 생산하기 어렵지 않다. 에탄올에 산소 하나만 주입하면 식초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빙초산인데 식용 빙초산도 제조가 어렵지 않고 싼값에 사용되고 있다. 반면 발효식초는 만드는 데 적어도 1년이 걸리고 값도 비교적 비싼 편이라 산업화에 어려운 면이 있다. 발효식초를 대량생산하는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실제로 마트에 가면 발효식초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무엇 때문인가. 

    “소비자들이 습관적으로 합성식초를 구매하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발효식초 연구와 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가장 좋은 모델은 발사믹 식초다. 오랫동안 시간과 공을 들여 발효식초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상품화할 때 가치를 강조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러한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발효식초 자체에 대한 연구개발보다 포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판매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치중한다. 연구가 없으면 뒤처지게 된다. 한동안 일본에서 막걸리 붐이 일어 한국 막걸리 판매가 호조세였다. 그런데 지금은 수출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자체적으로 우수한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일본은 청주만 생산하고 탁주는 가치가 없다며 버렸는데 이제는 같이 생산한다. 그러면서 ‘200년 만에 부활한 니고리자케’라고 광고하며 2만 원씩에 판매한다. 우리나라 막걸리는 연구개발에 대한 노력이 없어 일본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식초도 품질을 높이는 발효 연구가 있어야 한다.”

    식초 품질 높이는 연구 필요

    식초 연구를 하면서 언제 가장 성취감을 느꼈는지도 궁금하다. 

    “식초가 발효를 통해 초산균을 형성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떤 과정을 거쳐 초산균 이외 다른 균이 발생하는지 연구된 바가 없다. 무주 복분자식초 발효 과정을 통해 ‘발효식초의 발효메커니즘 및 식초균’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아서 만족감을 느꼈다. 이것이 미국 화학회지에 실렸을 때 또 한 번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발효식초가 다양화, 대중화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2012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한 특파원이 우리나라 맥주 맛을 보고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이후 6년이 지난 지금 한국 맥주는 외국 맥주들의 할인 공세에 맥을 못 추고 있다. 하이트진로도 맥주공장을 매각하려고 내놨지만 팔리지 않아 결국 소주공장으로 전환한다고 할 정도다. 맛을 개선하는 연구가 없으면 망한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연구개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다. 물론 지금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기는 하다. 한 번은 농림축산식품개발연구원에서 대학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3년 연구 프로젝트가 끝날 때 매출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개발에만 3년 넘게 걸리는데 매출로 평가한다니 할 말이 없다. 10년 이상 가는 먹거리를 개발하고 싶다면 기업과 국가 모두 장기적 안목으로 연구에 뛰어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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