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6

2018.05.02

원포인트 시사 레슨

드루킹은 왜 ‘드루이드 킹’이란 필명을 썼을까

드루이드는 고대 유럽의 샤먼

  • 입력2018-04-30 17: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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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중남부 우스터에 위치한 크룸국립공원 내 드루이드 조각상. [사진 제공 · 픽사베이]

    영국 중남부 우스터에 위치한 크룸국립공원 내 드루이드 조각상. [사진 제공 · 픽사베이]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원 김동원(49) 씨의 인터넷 필명 드루킹은 ‘드루이드 킹’의 약자다.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11개 직업 가운데 하나인 드루이드 중에서 최강이란 뜻이다. 이 게임을 할 때 쓴 닉네임인데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명을 ‘드루킹의 자료창고’라고 지으면서 드루킹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워크래프트의 세계관(가상세계인 아제로스를 배경으로 인간에 가까운 얼라이언스와 괴물에 가까운 호드라는 두 진영 간 대립과 경쟁)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플레이어는 13개 종족(얼라이언스 6개, 호드 6개, 중립인 파다렌 1개)과 11가지 직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캐릭터를 만들고 게임에 참여한다. 11개 직업은 전사, 마법사, 흑마법사, 성기사, 사냥꾼, 사제, 주술사, 도적, 죽음의 기사, 수도사, 그리고 드루이드다. 

    드루이드는 원래 유럽 켈트족 사회의 지식인 계급을 뜻한다. 그 어원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참나무를 아는 자’ 또는 ‘참나무 예언자’로 좁혀졌다. 참나무(oak)는 고대인에겐 신령스러운 나무였고 드루이드의 수행과 제례는 주로 참나무숲에서 이뤄졌다. 아일랜드와 영국, 프랑스 일대에 살던 켈트족의 신앙은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으며 영혼의 윤회를 믿는 범신론적 다신교로 추정된다. 그 신앙체계의 중심에 드루이드가 있다고 해 ‘드루이드교’라고도 부른다. 

    드루이드는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지식을 오로지 말로만 전승해야 했기에 글로 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연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그들을 정복한 고대 로마인의 기록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전사계급인 귀족과 더불어 켈트족 지배층을 구성하는 양대 세력으로, 20년 이상 수행 기간이 필요했고 인신공양을 포함한 종교 제의를 수행했다. 

    드루이드는 로마제국의 침략과 정복 활동으로 2세기 무렵 자취를 감췄지만 드루이드교의 영향력은 기독교 포교가 진행된 4~7세기까지 이어졌다. 중세 이후 드루이드는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마술사 내지 예언가로 형상화됐다. 18~19세기 영국 스톤헨지 유적과 드루이드교를 연결하면서 자연주의적 신비주의를 추구한 ‘네오 드루이디즘’이 유행하며 드루이드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빈첸초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1831)가 대표적이다. 여주인공 노르마처럼 여자도 드루이드가 될 수 있었다. 다만 남녀 불문하고 드루이드가 순결의 의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최근 학계 연구에 따르면 드루이드는 오늘날의 전문직 집단에 가깝다. 종교적 역할도 수행했지만 오늘날의 의사, 약사, 과학자, 철학자, 교사, 판사의 역할을 수행한 지식인 집단이었다. 그런 점에서 고대 샤머니즘의 무당(샤먼)에서 출발해 인도 브라만이나 유대교 랍비처럼 지혜의 담지자로서 역할을 수행했을 개연성이 크다. 

    그래서 드루킹이란 필명이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처음엔 경제 전문 파워블로거로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 ‘송하비결’ ‘자미두수’ 같은 예언서를 들먹이며 예언가 행세를 했다. 또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같은 조직을 7개 등급으로 나누고 전용 애플리케이션까지 개발하며 이들을 치밀하게 관리한 ‘교주’였다. 경공모 회원 중에는 의사나 교수 같은 전문직 종사자가 많았다고 하니 ‘현대판 드루이드’ 조직의 왕이 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가져온 최순실(본명 최서원)은 민주주의를 좀먹는 샤먼이라고 비난받았다. 그 비판세력의 한켠에서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샤먼으로 비슷한 역할을 하고자 꿈꾸는 독버섯이 자라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 정치는 언제쯤 샤머니즘의 주술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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