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2

2018.04.04

국제

스캔들 종합세트 트럼프 대통령 북 · 미 정상회담 제대로 치를까

러시아, 섹스, 공영방송 장악 등 각종 의혹 터져…지지율 상승만큼 우려도 상승

  • 입력2018-04-01 07: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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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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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과 행정부의 주요 자리를 강성인사로 채워 넣고 있다. 3월 들어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라인에서 합리적 인사로 분류되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아흐레 간격으로 경질됐다. ‘넌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유행어를 낳은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 진행자답게 트위터로 두 사람의 경질 사실을 통고했다. 그 자리는 강경 매파로 분류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존 볼턴 전 주유엔 미국대사로 각각 채워졌다. 

    5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해놓고 북핵에 대해 강경대응을 주장해온 인사들 중심으로 외교안보라인을 재편한 것이다. 여기에 군 장성 출신이지만 균형감을 인정받던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경질설까지 솔솔 나오고 있다. 이처럼 온탕과 냉탕을 넘나드는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를 협상의 귀재로 보는 사람들은 북한 김정은을 ‘독 안의 쥐’로 만들기 위한 노회한 협상전략이라고 주장한다. 전방위 압박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만큼 더 강력한 압박으로 핵 포기 각서를 받아내고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재선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반면 그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결렬시킨 뒤 한반도를 전쟁 상황으로 몰아넣으려 한다고 의심한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3월 25일 “북한이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완성하기 위해 비핵화 협상의 시간을 끌 가능성이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도양단의 결론을 내야 한다고 배수의 진을 친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이 이런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하지만 이런 관측은 관측자의 기대 내지 편견이 섞인 희망사항에 가깝다. 그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처한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는 개인적 승부수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선거운동 과정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다는 ‘러시아스캔들’에 시달려왔다. 그러다 지난 연말과 연초 책 2권을 통해 원투 펀치를 맞았다. 



    27명의 미국 정신분석전문의와 심리학자가 지난해 10월 공동으로 펴낸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와 올해 1월 출간된 칼럼니스트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가 그것이다. 전자는 ‘정신의학자가 직접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또 허가를 받지 않은 한 특정 공인에 대한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면 안 된다’는 ‘골드워터 규칙’(미국정신의학회 윤리강령 제7조 3항)을 깨고 트럼프 대통령이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음을 경고했다. 병적인 나르시시즘의 증세가 뚜렷하고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일 가능성이 크며 ‘악하거나, 미쳤거나, 둘 다거나’라는 진단까지 등장한다.

    ‘책스캔들’의 원투 펀치

    후자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 인사 180여 명의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가 되고 싶어 대통령에 출마했다 덜컥 당선되자 미숙한 가족과 별 볼 일 없는 경력의 측근들을 데리고 갈팡질팡하면서 표정 관리를 하는 데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또 지리멸렬한 측근 간 내부 암투가 이전투구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이데올로그를 자처했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러시아 연루설을 제기하며 ‘반역적이고 애국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고 밝힌 대목과 관련해 후폭풍이 거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책이 출간되자 내용 대부분이 허위라고 주장하면서도 고소·고발에 나서진 않았다. 

    그러나 최근 전격적 인사 조치를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자신이 기용한 인사 가운데 생각이 다른 사람을 대거 솎아내는 방식으로 내부 단속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또 미국 주류 언론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게중심을 잡고 신뢰감도 있다고 보도한 인사들부터 쳐내는 것으로 봐서 개인적 나르시시즘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자신보다 잘나가는 부하를 용서할 수 없다는 심리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섹스스캔들도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악의 섹스스캔들 메이커였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트럼프 대통령이 능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직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39·본명 스테퍼니 클리퍼드)가 2006년 당시 ‘어프렌티스’ 진행자였던 트럼프와 성관계를 맺은 과정을 CBS 탐사보도 프로그램 ‘60분’을 통해 자세히 설명했다. 3월 25일 방영된 ‘60분’의 시청률은 평소보다 2배 많은 16.3%로 시청자 2200만 명을 끌어들였다. 이날 시청률은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의 취임 첫 인터뷰 당시 17.4%(2500만 명) 이래 가장 높았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와 골든글로브 시상식 시청자가 각각 1980만 명과 1900만 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국민적 관심사가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니얼스는 2006년 7월 미국 네바다주에서 열린 골프대회를 통해 처음 만난 트럼프가 ‘어프렌티스’ 출연 가능성을 내비쳐 “전적으로 동의하에” 관계를 맺었다고 밝혔다. 진행자인 앤더슨 쿠퍼가 “콘돔을 착용했느냐”고 묻자 바로 “아니었다”고 답변했다. 두 사람의 성관계는 그날 한 번뿐이었다고 했지만 트럼프가 대니얼스를 유혹하면서 “내 딸(이방카)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는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대니얼스는 이방카보다 두 살 연상으로, 당시 27세였다. 트럼프는 60세였고 아내 멜라니아가 막내아들 배런을 출산한 지 100일쯤 됐을 때였다.

    부비트랩化 가능성 큰 섹스스캔들

    스토미 대니얼스(아래 오른쪽)와 캐런 맥두걸이 각자의 트위터에 올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006년에 찍은 사진.

    스토미 대니얼스(아래 오른쪽)와 캐런 맥두걸이 각자의 트위터에 올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006년에 찍은 사진.

    이번 스캔들은 1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트럼프의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이 대선 직전인 2016년 10월 대니얼스에게 두 사람의 성관계와 관련해 침묵을 지키는 조건으로 13만 달러(약 1억4000만 원)를 건넸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2월에는 코언 변호사가 이를 인정했다는 ‘뉴욕타임스(NYT)’ 보도가 이어졌고, 대니얼스가 3월 6일 “성관계 비공개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았기에 무효”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방송 출연까지 한 것이다. 하지만 소송에 불리하다는 변호사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사진과 동영상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니얼스는 침묵 서약에 합의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관련 내용을 언론에 폭로하려다 2011년 라스베이거스 한 주차장에서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협박을 받아 포기한 사연을 이야기하며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 합의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 남성은 대니얼스의 딸을 바라보며 “예쁜 여자아이로구나. 만약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애석한 일이 되겠네”라고 말했다는 것. 그럼에도 침묵 서약을 깬 이유는 “침묵을 지킬 때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관련 보도가 나간 뒤 나를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혼외 성관계 폭로자는 대니얼스만이 아니다.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로 활동했던 캐런 맥두걸(47)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성관계를 폭로하면서 ‘비밀 유지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도 대니얼스와 시기도 비슷하다. 1998년 ‘올해의 플레이메이트’였던 맥두걸이 3월 22일 CNN 방송에 출연해 폭로한 바에 따르면 둘의 밀회가 시작된 것은 2006년 6월로 대니얼스와 성관계를 하기 한 달 전쯤이었으며, 몇 개월간 관계가 지속돼 멜라니아에게 죄책감을 느낄 정도였다는 것. 

    맥두걸은 첫 관계를 맺은 뒤 트럼프가 바로 현금을 주려 해 거절했더니 “오, 당신은 정말 특별하군”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혼외관계 여성이 더 많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런 맥두걸도 2016년 대선 당시 성관계 사실에 침묵하는 조건으로 15만 달러(약 1억6000만 원)를 받았는데, 이를 지불한 측은 연예잡지 ‘내셔널 인콰이어러’를 소유한 아메리칸 미디어라고 NYT가 보도했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2011년 대니얼스가 트럼프의 섹스스캔들을 폭로하려던 매체였다는 점에서 이를 무마하는 과정에서 트럼프와 모종의 결탁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어쨌든 트럼프가 돈으로 봉인하려 했다는 섹스스캔들이 잇따라 해제되자 추가 폭로까지 이어져 섹스스캔들의 부비트랩화(化)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NYT는 3월 26일 ‘취임 이후 2900번 넘는 트위트를 통해 온갖 일을 언급했던 트럼프가 트위트로 공격하지 않은 딱 두 사람이 있으니 바로 스토미 대니얼스와 캐런 맥두걸’이라며 이 문제야말로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섹스스캔들에 묻혀 크게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언론스캔들도 만만치 않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이 미국 비군사 해외방송을 총괄하는 방송위원회(BBG)를 브레이트바트화하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3월 21일 보도했다. 

    BBG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소리(VOA)와 동유럽 대상의 라디오자유유럽(RFE), 러시아 대상의 라디오리버티(RL), 쿠바방송국(OCB), 라디오자유아시아, 중동방송네트웍스 등 해외로 미국 이념을 전파하는 방송매체를 관리하는 독립기구다. BBG 자체 집계에 따르면 61개 언어로 100개 넘는 국가에 방송돼 가청인구가 2억7800만 명에 이른다. 브레이트바트는 한때 트럼피즘의 이데올로그로 불린 배넌 전 수석전략가가 대표로 있던 극우매체다. 백인우월주의와 국수주의에 입각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적극 지지하는 언론이다.

    주류 언론의 브레이트바트化

    FP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BBG 고문으로 임명된 제프리 샤피로 전 브레이트바트 편집장이 BBG 내 극우성향의 임원인 안드레 멘데스와 손잡고 기존 이사진과 논설진을 극우적 인사들로 갈아치울 모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미국 이념을 사실 보도의 정신에 입각해 해외로 전파하는 방송이 모두 이념에 끼워 맞춰 사실을 왜곡하는 브레이트바트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BBG 내부에 팽배하다는 것. 샤피로의 지지를 등에 업은 멘데스는 최근 임원회의석상에서 현 경영진의 잘못을 매섭게 질타하며 “국민의 세금이 낭비, 사기, 오용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일이 나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이는 BBG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해 부임한 샤피로가 BBG 임원들이 쿠바와 비밀리에 공모했다고 주장하면서 BBG를 브레이트바트처럼 만들겠다고 한 발언을 실행에 옮기려는 첫 수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2년 말 취임 후 공영방송 NHK 이사회에 측근을 대거 투입한 뒤 극우성향의 사업가 출신인 모미이 가쓰토(籾井勝人)를 NHK 회장으로 앉힌 것과 비슷하다. 모미이 회장은 “정부가 오른쪽이라고 할 때 우리가 왼쪽이라고 하기 어렵다” “전쟁을 했던 어느 나라에도 (위안부는) 있었다”는 친정부 성향 발언을 내놨다 은근슬쩍 사과하는 식으로 NHK 보도지침을 제시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그로 인해 NHK는 현재 아베 총리의 지지율 추락을 유발한 사학비리 보도에서도 가장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4년 2월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베 총리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에 대해 ‘개탄스럽다(deplorable)’고 보도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하는 언론자유보고서에서 일본 순위는 아베 정권 출범 후 매년 하락해 지난해는 72위까지 떨어졌다. 2010년 11위에서 급전직하한 것으로 한국(63위)보다도 낮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 역시 언론자유 순위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RSF의 언론자유보고서에서 지난해 전년보다 2단계 하락한 43위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더 추락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브레이트바트 웹사이트 방문자 수는 지난해 10월 1500만 명에서 올해 2월 780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백악관 수석전략가에서 물러난 뒤 브레이트바트로 복귀했던 배넌은 1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러시아 스캔들, 책스캔들에 이어 섹스스캔들과 언론스캔들까지, 트럼프 대통령 시대 미국의 위신은 거듭 추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3월 26일 발표된 CNN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42%로 지난달 35%에 비해 7%p 상승했다. CNN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지난해 4월 말 집계됐던 지지율 44% 이후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CNN은 미국 경제의 호조 덕이 크다고 봤고, AP통신은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 추진이 지지율 상승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를 기획한 대표저자이자 한국계 미국인인 밴디 리 예일대 의대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이렇게 분석했다. 

    “지금 트럼프의 정신을 온통 차지하는 것은 공허함이다. 자신이 굉장히 취약하고 약하다는 생각이 내면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 과대포장하고 허풍을 떤다.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자극하고 핵무기를 언급하는 이유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함으로써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계속 확인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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