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9

2018.03.14

한창호의 시네+아트

트럼프 시대에 언론자유의 역사적 순간을 회고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

  • 입력2018-03-13 11:49:2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론 공격이 비정상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그는 미국 언론의 대표주자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가짜 뉴스’를 만드는 ‘믿을 수 없는’ 언론사라고 공격한다. 이들이 가지는 세계인의 신뢰 같은 가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태도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본다. 영화 ‘더 포스트’가 주목하는 역사적 사건은 1971년 ‘펜타곤 페이퍼’(국방부의 비밀문서) 보도다. 정부가 베트남전쟁 상황에 대해 거짓말을 하며 청년들을 20년 이상 전장으로 계속 몰아넣는다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리처드 닉슨 정부의 위협 속에서도 용기 있게 진실을 보도했고, 이는 세계 언론사의 미담으로 남아 있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더 포스트’는 워싱턴포스트를 지칭한 제목인데, 알다시피 이 신문사는 결국 닉슨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다. 그런데 스필버그가 주목하는 건 이 사건 전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다. 사실 이 보도는 뉴욕타임스의 특종이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닉슨 정부의 법원으로부터 국가기밀누설 혐의로 보도 중지 명령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명백한 위험 속에서 언론자유라는 기치를 내걸고 ‘펜타곤 페이퍼’의 후속보도를 이어갔다. 발행인 구속은 물론, 회사 운명이 걸린 도전이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사주가 미국 주요 언론사에서 최초로 여성 발행인이 된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리프 분)이다. 

    그레이엄은 회사의 미래를 염려하며 비보도를 주장하는 경영진의 ‘현실주의’와 언론자유의 가치를 지키려는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 분 · 나중에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진두지휘한다)의 ‘이상주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그는 언론자유의 가치를 택한다. 스필버그는 닉슨 정부의 위협에 맞선 그레이엄의 용기 있는 이 결정을 언론자유의 역사적 순간으로 보고 있다. ‘더 포스트’에는 언론인의 용기, 언론자유의 소중함, 언론을 탄압했던 권력자의 말로(닉슨 대통령은 결국 탄핵 직전 사임한다)가 강조돼 있다. 그리고 남성 위주의 배타적인 언론계에서 드물게 빛나던 여성 언론인에 주목해 최근의 페미니즘 가치까지 담아내고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건, 결국 ‘더 포스트’도 영웅 찬가라는 할리우드의 전통적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언론자유가 선의와 용기를 가진 한 개인의 역량에 의해 좌우돼야 할까. 게다가 언론자유의 위협 요소로 정치권력을 지적하는 건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자본권력의 조직화된 언론지배를 그린 마이클 만 감독의 문제작 ‘인사이더’(1999)가 발표된 지도 20년 가까이 됐다. 언론독립의 찬란한 역사를 만든 워싱턴포스트도 2013년 거대기업 아마존에 팔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워싱턴포스트가 스필버그가 기대한 사회적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더 포스트’는 복잡해진 언론계 상황은 외면하고, 서부극의 영웅을 그리듯 이야기를 끌고 간 면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