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9

2018.03.14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허리 통증 미스터리, 수술은 왜 효과가 없나

쉽게 낫지 않는 이유는 잘못된 처방 탓

  • 입력2018-03-13 11: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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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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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허리와 목 통증 개선 노하우를 공유하는 강연회에 참석했다 깜짝 놀랐다. 허리 통증을 호소한 한 남성이 어떤 한방병원에서 수천만 원의 치료비를 썼다고 고백한 것이다. 여기저기 광고를 많이 하는 그 한방병원은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유명한 곳이었다. 

    그 남성만이 아니었다. 오가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허리나 목 통증 때문에 수백만 원을 허비한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많은 돈을 쓰고도 정작 좋아졌다는 사람이 드문 것도 똑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 어머니 역시 서울 강남에 있는 한 병원에서 허리 부분 디스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적잖은 돈을 지출했다. 물론 어머니의 허리 통증은 여전하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돌덩이라도 진 것처럼 목과 어깨가 시도 때도 없이 뭉쳐 그간 이것저것 해봤다. 병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한의원에도 가고, 뭉친 어깨를 풀겠다며 마사지, 요가, 스트레칭 등도 해봤다. 잠깐 좋아지나 싶다가도 다시 안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병원에서 요가 강사를 만나 어색한 인사를 나눈 적도 있었다.

    디스크 잘라내는 수술, 과연 최선이었나

    상황이 이렇다면 허리나 목 통증을 치료하는 기존 접근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다 정선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의 ‘백년 허리’와 ‘백년 목’(사이언스북스)을 접했다. 책을 읽고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은 직접 만나서 묻기도 했다. 정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지금까지 허리나 목 통증 치료법은 대부분 틀렸다. 

    허리나 목 디스크 수술이 빈번하게 이뤄지는데도 정작 허리나 목 통증의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척추의 뼈와 뼈 사이 디스크가 돌출해 신경을 누르면 통증이 생긴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의사가 많을 뿐이다. 이런 견해의 연장선상에서 삐져나온 디스크를 자르는 수술이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MRI(자기공명영상) 사진을 찍어보면 어떤 사람은 디스크가 훨씬 많이 튀어나와 신경을 더 세게 누르는데도 통증이 그다지 심하지 않다. 반면 디스크가 거의 튀어나오지 않았는데도 극심한 허리나 목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기존 견해대로라면 이런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제 두 가지 실험 결과를 볼 때다. 첫 번째 실험 대상은 불쌍한 돼지였다. 디스크가 찢어져 수핵(디스크 안에 들어 있는 젤리 같은 물질)이 흘러나오면 염증이 생긴다. 그 염증 물질을 돼지의 신경뿌리에 문질렀더니 돼지가 고통을 호소했다. 그렇다면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혹시 허리나 목의 심한 통증은 돌출된 디스크가 신경을 눌러 생긴 것이 아니라 찢어진 디스크에서 흘러나온 염증 물질이 신경뿌리에 묻은 탓이 아닐까. 

    실제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허리나 목에 스테로이드처럼 강력한 소염 물질을 주입하면 금세 통증이 가라앉는 경우가 많다. 심한 통증도 시간이 지나면(염증이 가시면) 완화되는 허리나 목 통증의 패턴과도 일치한다. 

    좀 더 직접적인 실험 결과도 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어떤 의사가 허리나 목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신경뿌리에 실을 묶고 살짝 잡아당기는 엽기적인 실험을 해봤다(물론 지금 같은 연구윤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과거 일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허리나 목 통증이 심한 곳의 신경뿌리는 실에 살짝 힘만 줘도 환자가 자지러지게 아파했다. 반면 통증이 없는 곳의 신경뿌리를 잡아당기면 찌릿찌릿한 정도라는 반응만 돌아왔다. 이 실험 결과는 이렇게 해석해야 맞다. 정상 상태의 신경뿌리는 눌러도 별로 아프지 않다. 반면 통증이 있는 곳의 신경뿌리는 염증 물질이 묻어 부어 있기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아프다. 염증으로 잇몸이 부었을 때 혀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 것과 같다.

    목과 허리를 C자형으로 유지하라

    여기까지 따라온 독자, 특히 평소 허리나 목 통증으로 고생하는 이라면 무릎을 탁 칠 것이다. 여러 가지 의문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첫째, 수술 후에도 통증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경을 누르고 있다고 여겨지던 디스크를 수술로 제거해도 이미 손상된 디스크에서 흘러나온 수핵이 신경뿌리에 염증을 유발하면 통증은 재발한다. 이 경우 수술한 병원에서는 보통 이렇게 변명한다. 수술한 부위가 아니라 다른 곳의 디스크가 또 돌출돼 신경을 누르고 있다고. 수술까지 할 정도의 환자는 대부분 척추 여러 곳에서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이런 병원의 변명에 반박도 할 수 없다. 

    둘째, 허리나 목 통증은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시간이 지나면 신경뿌리의 염증이 자연 치유되기 마련이다. 일단 염증이 잡히면 극심한 통증도 가신다. 바로 이 틈을 사이비가 파고든다. 실제로는 치료에 도움을 주지 않았는데도 자기 덕이라고 우길 수 있다. 그러다 찢어진 디스크에서 다시 수핵이 흘러나와 염증 물질이 신경뿌리에 묻으면 또 극심한 고통이 시작된다. 이렇게 허리나 목 통증은 좋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한다. 그러니 나쁜 의사에게 걸리면 수백만 원, 심하면 수천만 원을 쓰게 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 다를 게 없고. 

    그렇다면, 그냥 고통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을까. 아니다. 칼에 베인 피부가 시간이 지나면 아물 듯, 허리나 목의 찢어진 디스크도 아문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이다(24~36개월). 이 대목에서 정선근 교수는 ‘척추 위생’을 강조한다. 평소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찢어진 디스크가 제대로 아무는 최고 방법이다. 

    가장 바른 자세는 몸을 펴 허리와 목을 볼록하게 C자형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 교수의 조언을 한 가지만 덧붙이자. C자형으로 만드는 운동도 찢어진 디스크가 아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니 허리나 목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운동에 곁눈질하지 말고 평소 허리나 목을 뒤로 젖혀 C자형으로 만들자. 

    평소 유연한 몸을 자랑하던 요가 강사가 병원을 찾은 사정도 알 만하다. 디스크가 찢어진 상태에서 스트레칭이나 요가 동작을 한다고 앞으로 옆으로 몸을 비틀어댔으니 손상된 디스크가 아물기는커녕 더 찢어진 것이다. 이제 허리나 목 통증에 터무니없이 돈을 쓰지 말자. 수천만 원, 수백만 원이 웬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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