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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보는 사람은 있어도 안 보는 사람은 없죠”

컬링 女대표팀 선전으로 들썩이는 의성 현지 르포

“못 보는 사람은 있어도 안 보는 사람은 없죠”

경북 의성군 경북컬링훈련원에서 컬링 경기를 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의성군청]

경북 의성군 경북컬링훈련원에서 컬링 경기를 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의성군청]

경북 의성이 어디 있는지 잘 몰라도 의성 하면 으레 마늘이 떠오른다. 의성은 국내 최고 품종인 한지마늘 생산지다. 의성은 조선 중기부터 맛 좋은 ‘육쪽마늘’로 유명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상품의 마늘로 만든 흑마늘진액, 마늘즙 같은 제품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마늘=의성’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았다. 또 과거 씨름을 즐긴 세대라면 의성 출신의 걸출한 천하장사 이만기, 이봉걸이 떠오를 수도 있다.


컬링 몰라도 응원하는 마음은 뜨거워

하지만 최근 의성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컬링이다. 지방 소도시 의성에서 세계 컬링을 흔드는 선수들이 나오자 해외 유수 언론들도 의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갑작스러운 의성 붐이 가장 즐거운 것은 군민들이다. 동네에서 잘 알고 지내던 이가 국가대표로 나온 것도 신기한데 세계적 컬링스타로 거듭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자니 놀라우면서도 자랑스러운 것. 

2월 21일 늦은 오후 찾은 의성은 여느 지방 소도시처럼 조용했다. 강원 강릉에서 출발해 경북 영덕군, 청송군을 지나 의성군에 접어들었지만 사람 구경이 어려웠다. 의성군 면적은 약 1176㎢로 서울 면적(약 605㎢)의 2배에 육박한다. 도로엔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는데 컬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특산물, 각종 행사, 교통안전 등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의성군청 근처에 접어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전히 거리는 조용했으나 컬링 관련 현수막이 보였다. 거리 초입에 있는 의성초에는 컬링 대표팀을 응원하는 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군청과 학교 사이로 나 있는 상가 거리에는 간혹 학생들이 지나갔고 드물게 중·장년층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보였다. 군청 앞거리에서 만난 김모(56) 씨는 “의성 사람 중 컬링 선수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군 사람들이 거의 학교(의성여고)에 모인다. 술자리나 식당에서 만나면 컬링과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은정,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 선수가 졸업한 의성여고 교문에는 이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담벼락에도 종종 이들의 활약을 칭찬하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 

군청 근처 부동산공인중개소에서 TV를 보며 담소를 나누는 세 어르신을 만났다. 이들에게 김은정, 김영미 등 컬링 선수들의 이름을 거론하자 “아, 철파리 그 아!”라는 반응이 바로 튀어나왔다. 철파리는 김영미, 김경애 자매의 집이 있는 마을이다. 세 어르신 가운데 컬링 전문가로 불린다는 이모(73) 씨는 “컬링이라는 말은 몰라도 선수들 이름 대면 의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 사람 건너면 전부 아는 사이고, 선수들은 얼굴을 익히 알던 처자들이다. 친숙한 얼굴이 올림픽 국가대표로 나와 승승장구하니 일단 컬링 중계가 시작되면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응원한다”고 말했다. 지역 군민 가운데 일부는 강원 강릉컬링센터로 원정 응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군민에게 컬링 선수들은 친숙한 대상이었다. 이날 만난 군민 가운데 다수가 각 선수의 이름을 대면 ‘딸 부잣집 딸’ ‘동네 처자’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바꿔 불렀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비례대표)도 마찬가지. 의성 출신인 김 의원은 2월 18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김은정 선수의 아버지는 농기계 끌고 나락 베고 탈곡하는 일을 다녔고 어머니는 가마를 움직이는 보조원을 했다. 딸 부잣집 어린 둘째 딸은 동네 아무 집이나 들어가 ‘아지매 밥 묵었나? 나도 밥도(줘). 같이 묵자’ 하며 넉살 좋게 자랐다’고 친분을 밝혔다.


나도 컬링 해볼까

경북 의성여고에 걸린 현수막. 동문인 김영미,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선수의 사진이 보인다. [지호영 기자]

경북 의성여고에 걸린 현수막. 동문인 김영미, 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선수의 사진이 보인다. [지호영 기자]

의성 군민들은 컬링 선수들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좋아졌다. 젊은 층을 만나고자 군청 인근 당구장에 들렀다. 확연히 느껴지는 외지 말투로 기자라고 얘기하자 당구장 손님들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뒤이어 컬링 선수들에 대해 묻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당구장을 운영하는 권상수(41) 씨는 “뭐 그렇게 뻔한 것을 물으러 이 멀리까지 왔느냐”면서도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다들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며 웃었다. 

의성의 10대는 공부는 몰라도 컬링에 대해서만큼은 전국 최고 이해도를 자랑한다. 의성에 있는 컬링장(경북컬링훈련원)에서 적어도 한두 번은 컬링 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고 꽤 많은 학생이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즐긴 경험이 있기 때문. 남민우(18) 군은 “체육시간에 컬링 경기를 보러 간 적이 꽤 있어 대충 규칙은 안다. 중학생들은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선택한 비율이 늘었고, 전업 선수를 준비하는 학생도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의성여중 학생들은 “컬링선수들의 활약으로 컬링에 본격적으로 도전해보겠다며 마음을 다잡는 친구가 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임지은(16) 양은 “우리 또래는 방과후 활동 등으로 한 번씩은 컬링 경기를 해봤다. 이 중 재미를 느끼거나 잘하는 친구는 고교팀 선수가 되려고 준비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임양의 친구인 오윤진(16) 양은 “컬링을 열심히 해 좋은 성과를 거두면 실업팀에도 갈 수 있지만, 문이 워낙 좁은 데다 컬링이 비인기 종목이라 컬링에 흥미가 있는 친구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며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컬링 대표팀이 전국적인 스포츠 스타가 되자 다시 도전해보겠다고 나서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동네에서 알던 사람이 대표팀으로 스타가 되자 과거 해프닝도 군민에게는 추억거리가 되고 있다. 김모(20·여) 씨는 “경북컬링훈련원 근처에 사는 지인이 있는데 올림픽 6개월 전쯤 인터넷 쇼핑으로 고기구이용 돌판을 구매했다. 그런데 배달 실수로 돌판이 훈련원에 배달됐다. 배달 실수를 확인한 지인이 훈련원 측에 돌판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마침 비슷한 제품을 훈련원에 있는 대표팀도 구매했던 모양이다. 이미 강릉으로 돌판을 가져갔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이에 지인은 대표팀이 사용한 돌판이니 나중에 돌아오면 기념으로 받아 간직하겠다며 술자리에서 자랑했다”고 말했다. 

물론 의성에도 단 한 번도 컬링 중계를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 생계를 꾸리느라 바빠 중계를 볼 시간이 없었던 것. 하지만 이들도 경기 소식은 전부 알고 있었다. 의성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해정(41·여) 씨는 “매장을 비울 수 없어 컬링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 결과나 내용은 대충 안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대화 주제가 거의 컬링이라 귀동냥만 해도 선수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손님들도 중계를 본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서두를 정도”라고 말했다.


좋은 일로 취재진 방문은 10년 만에 처음

시장과 상가가 밀집해 있는 경북 의성군청 앞 거리.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지호영 기자]

시장과 상가가 밀집해 있는 경북 의성군청 앞 거리.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지호영 기자]

치킨집을 운영 중인 주봉래(42) 씨는 “이 동네는 월드컵 한일전을 한다고 치킨이 더 팔리는 곳이 아니다. 컬링 경기를 해도 마찬가지인데 지역 분위기는 2002 한일월드컵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컬링 경기 중계시간에는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2월 20일 의성여고 강당에서 열린 단체 응원전에는 300명 넘는 군민이 모여 함께 응원을 했다. 숫자가 적어 보이지만 전체 인구가 5만 3000여 명인 의성에서 300명은 비율로 따지면 서울에서 6만 명이 모인 격이다. 군청 관계자는 “23일 준결승전 때도 단체 응원을 한 계획이다. 이때는 500명 이상 모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군청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동안 마늘 이외에 새 특산품, 역사 유적 등 다양한 홍보 활동을 통해 의성을 알리고자 노력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의성이 명실상부 한국 컬링의 성지가 되자 의성군청에 취재 문의가 쏟아지고 있는 것. 

의성군 관계자는 “군청에서 일한 지 7년 가까이 됐는데 단 한 번도 좋은 일로 취재진이 방문한 적이 없다. 대부분 조류독감, 구제역 등 나쁜 소식에 대한 질문만 들어왔다. 하지만 컬링 대표팀 덕에 군 분위기가 좋아져 군청에서도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신은 의성 출신이 주축을 이룬 한국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에 의성을 대표하는 특산물 마늘을 따 ‘갈릭 걸스’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마늘이라는 별명은 식상한 모양이다. 김민정 여자 대표팀 감독은 “대표팀도 마늘 관련 별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선수들인 만큼 ‘마늘 소녀’보다 더 예쁜 별칭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마늘이 가장 유명하지만 의성은 마늘 외에도 다양한 특산물이 있다. 신승호 의성군 홍보계장은 “의성의 자두 생산량은 국내 1위다. 질 좋은 복숭아와 청송 사과 못지않게 당도가 높은 사과도 나온다. ‘의로운 쌀’ ‘의성황토쌀’ 등 의성의 브랜드 쌀도 시장에서 좋은 품질을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2018.02.28 1127호 (p14~16)

  • | 의성=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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