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4

2018.01.31

구가인의 구구절절

뻔한 듯한 인생도 잘 들여다보면…

이병헌 · 박정민의 ‘그것만이 내 세상’

  • 입력2018-01-30 14: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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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JK필름]

    [사진 제공 · JK필름]

    전단 알바로 근근이 살아가는 전직 복서 김조하(이병헌 분). 오래전 헤어진 어머니(윤여정 분)와 재회한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 나간 어머니는 또 다른 아들 오진태(박정민 분)를 키우고 있다. 자폐증을 지닌 진태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 조하는 어머니 집에 머물며 낯선 동생과 동거를 시작한다. 

    다소 뻔한 영화다. 지지리 고생하던 노모는 곧 아플 것이고, ‘3류 복서’라고 무시받던 이복형은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에게 따뜻한 인간미를 발휘할 것이며, 동생은 그 덕분에 빛나는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는….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진부한 전개에도 상영시간 120분 동안 스크린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그 힘은 배우에게서 나온다.

    ‘연기로는 깔 게 없다’는 이병헌

    [사진 제공 · JK필름]

    [사진 제공 · JK필름]

    이병헌의 연기력을 논하는 건 새삼스럽다. ‘이병헌은 연기로는 깔 게 없다는 말을 역시나 증명한 영화’라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댓글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른바 ‘3류 중년’ 배역은 미남배우에겐 악역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과감히 망가졌지만, 결국 관객의 손  ·  발가락만 오그라들게 한 미남배우의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더벅머리에 몸을 꽉 조이는 셔츠와 추리닝 바지를 입고 무심한 표정으로 전단을 돌리는 이병헌은 놀라우리만치 ‘동네아재’ 같다. 이병헌은 서울 대학로에서 카메라를 숨긴 채 일반인에게 전단을 돌리며 이 장면을 찍었는데, 당시 알아보는 이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감탄한 장면은 극 중 어머니인 윤여정과 싸구려 와인을 마시려고 식탁에 마주 앉았을 때다. 의자에 앉은 그가 두꺼운 오른쪽 장딴지를 ‘척’ 다른 의자에 걸쳐 올렸을 때, 배우의 작은 몸짓만으로도 꽤 많은 것이 설명된다는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욕설이 섞인 저렴한 말투와 흐트러진 발음, 퇴역선수 특유의 몸짓과 걸음걸이까지…. 누군가의 완벽한 변신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여기에 이병헌 특유의 우수 어린 눈빛이 더해지면, 동네아재가 품었을 남모를 쓸쓸함이 전해진다.

    대선배 사이에서도 빛나는 에너지, 박정민

    눈에 띄는 배우는 이병헌만이 아니다. 관록 있는 연기를 보여준 윤여정은 말할 것도 없고 가수 조관우, 가수 겸 화가 백현진, 배우 문숙 같은 이들의 깨알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가장 많이 회자되는 배우는 단연 신예 박정민이다. 영화 ‘동주’로 주목받았던 박정민은 이번에는 피아노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폐 청년 진태에게 푹 빠졌다. 비장애인이 자폐를 표현하기 위해선 섬세한 연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말아톤’의 조승우처럼 비슷한 배역을 맡았던 누군가의 연기와 비교된다는 부담도 크다. 그러나 박정민은 이 모든 난제를 훌쩍 건너뛰었다. 심지어 피아노를 전혀 치지 못했다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 피아노 치는 장면을, 그것도 어렵다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대역 없이 연주하는 데 성공했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감이 빛나는 이유다. 때로 좋은 연기는 작품의 한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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