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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신성에서 축구계 태풍으로

손흥민 이달의 선수상 2회 수상 이어 올 시즌도 대활약

아시아 신성에서 축구계 태풍으로

EPL 토트넘 홋스퍼의 간판 공격수로 거듭난 손흥민. [동아일보]

EPL 토트넘 홋스퍼의 간판 공격수로 거듭난 손흥민. [동아일보]

‘반쪽짜리 선수.’ 

과거 국내 지도자들이 한 선수에 대해 남긴 평가다. 슈팅이나 스피드는 괜찮아도 나머지는 조금씩 아쉽다는 것이다. 이런 박한 평가를 받은 선수는 누굴까. 놀랍게도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다. 

적잖은 전문가가 첫 공 터치, 공이 없을 때 움직임 등이 나아져야 한다고 봤다. 개인 기량은 나쁘지 않으나 팀 동료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상대 기량에 따라 요동치는 기복을 줄이고 감독도, 팀도 믿고 쓰는 공격수가 될 수 있었다.


손흥민은 어떻게 EPL을 집어삼켰나

손흥민은 만 16세 나이에 독일 함부르크SV로 떠났다. 필자는 이 시기 축구 유학을 택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본다. 선수 육성 및 기용 면에서 국내와 해외는 묘하게 다르다. 그중 하나가 선수의 장단점 가운데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는 것. 국내는 단점을 채워나가는 데 주력한다. 해외는 장점을 더욱 뚜렷하게 키운다. ‘이 선수는 이런 약점 때문에 안 돼’보다 ‘약점은 있지만 강점을 더 살리면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는 시각으로 접근한다. 

축가 국가대표팀 코치 차두리도 이런 문화의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 현역 시절 차 코치는 공을 예쁘게 잘 차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남다른 축구 지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대신 피지컬과 폭발력을 극대화했다. 유년 시절 S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등의 훈련을 경험했고, 성인이 된 후 TSV 바이엘 04 레버쿠젠 등지를 거치며 자신만의 색깔을 냈다. 

손흥민도 비슷하다. 제 장점을 고이 간직해왔다. 여러 지적을 받긴 했어도 두 가지 무기, 즉 슈팅과 스피드만큼은 확실히 살렸다. 함부르크, 레버쿠젠, 토트넘, 그리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차례로 밟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잉글랜드 적응을 마칠 무렵 손흥민은 남은 단점마저 보완해 만능으로 변해갔다. 먼저 자신의 강점을 살려 경기 출전 횟수를 보장받았다. 여유가 생기자 축구를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골을 넣는 데 그치지 않고 플레이메이커 기질까지 발휘하고 있다. 최근 손흥민의 경기를 볼 때 “패스 감각이 원래 이렇게 좋았나”라는 감탄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지에 일찌감치 스며든 것도 기폭제가 됐을 터다. 유럽에 갓 진출한 한국 선수는 언어는 물론, 사회 전반에 깊이 깔린 문화 차이로 정신을 못 차린다. 이들이 극복해야 할 텃세는 생각 이상이다. 인종차별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시선 자체가 절대 호의적이지 않다. ‘축구 변방에서 온 동양인’일 뿐이다. 적대적 감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 축구 유학길에 오른 모 선수는 “의도적으로 패스를 안 주더라. 훈련할 때마다 싸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생존 비결은 하나다. 싸워서 제 밥그릇을 챙기는 ‘투쟁’뿐이다. 이 투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돌아와야 한다. 공을 차는 기술보다 공을 잘 찰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성격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도 어쩌면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손흥민도 이런 설움을 삼키고 일어섰다. 2012년에 있었던 일이다. 프로 데뷔 후 함부르크 팀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시기였음에도 동료와 으르렁대며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슬로보단 라이코비치가 훈련 도중 득점 기회를 놓친 손흥민에게 “골대에 제대로 차 넣어라”며 빈정댄 게 발단이 됐다. 라이코비치의 주먹질에 손흥민은 발길질로 응수했다. 함부르크 측은 두 선수에게 징계를 내렸고, 현지 매체들이 이를 조명해 화제가 됐다. ‘동양인이라 이런 일을 당했다’고 단언하긴 어려워도, ‘동양인이라 더 자주 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는 건 무리가 아니다. 20대 중반인 손흥민의 유럽 생활도 어느덧 10년. 이제는 팀 동료에게 먼저 장난을 칠 만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손흥민이 주도해 전파한 핸드셰이크 세리머니의 유행이 단적인 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손흥민에게 제한된 기회만 부여했다. 해리 케인, 델레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으로 꾸린 공격진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이들의 힘이 떨어지면서 페이스도 처졌다. 최상위권에서 경쟁하던 토트넘은 지난해 11월 말 EPL 4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수렁에 빠졌다. 중상위권 추락으로 위기론도 일었다. 당시 이 어두운 터널의 돌파를 이끈 게 손흥민이다. 복수 매체는 손흥민을 ‘과소평가된 선수’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토트넘이 2015년 손흥민 영입에 들인 이적료 2300만 파운드(약 332억 원)는 바겐세일 수준”이라는 극찬도 따랐다.


‘이달의 선수상’ 얼마나 대단하길래

2016년 9월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로 EPL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한 손흥민. [토트넘 공식 페이스북]

2016년 9월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로 EPL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한 손흥민. [토트넘 공식 페이스북]

손흥민은 잉글랜드 현지에서 유명한 선수가 됐다. 족저근막염 등으로 힘겨워하던 첫 시즌 뒤 환골탈태했다. 2016년에는 리우올림픽 참가, 2017년에는 팔 골절상으로 시간을 흘려보낸 그다. 하지만 시즌을 시작하자 맹렬히 몰아쳤다. 몸을 만들어야 할 여름 휴식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했음을 떠올리면 더욱 대단한 성과다. 2016년 4월 기성용(스완지 시티 AFC)이 갖고 있던 EPL 한 시즌 아시아 선수 최다 골 기록(9골)도 그가 깼다. 11월에는 박지성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에서 이룩한 EPL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 골 기록(19골)을 경신했다. 이듬해 5월에는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 1985~86시즌에 세운 한국인 유럽리거 한 시즌 최다 골 기록(19골)까지 31년 만에 뛰어넘었다. 

아시아인으로서도 임팩트를 남겼다. EPL 사무국은 매달 최고 활약을 펼친 이에게 ‘이달의 선수상’을 수여해왔다. 단, 아시아인은 논외였다. 박지성이 맨체스터에서 EPL 우승을 네 차례나 맛본 동안에도, 일본인 공격수 오카자키 신지가 약체 레스터 시티의 우승 동화를 썼을 때도 수상의 감격을 누리지 못했다. 그랬던 ‘이달의 선수상’을 손흥민이 처음 따냈다. 2016년 9월 아시아인 최초로 EPL 최고 선수에 등극한 것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즌 막바지이던 2017년 4월 한 번 더 상을 거머쥐었다. 한 시즌 2회 수상은 라이언 긱스(은퇴), 루이스 수아레스(FC바르셀로나) 등을 비롯해 역대 24명밖에 이루지 못한 전설적 기록이다. 당시 손흥민이 제친 경쟁자가 케빈 더브라위너, 세르히오 아구에로(이상 맨체스터 시티), 에덴 아자르(첼시), 로멜루 루카쿠(맨체스터), 시오 월컷(아스널), 애덤 랄라나(리버풀) 등이라는 걸 고려하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답이 나온다. 

2018년 손흥민은 잉글랜드를 넘어 세계를 겨눈다. 4년 전 브라질월드컵에서 흘린 눈물을 기억하기에 더 기대된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만 4골 3도움을 기록했다. 공격 포인트 7개는 EPL 진출 뒤 세운 월간 최고 성적. 영국 유력지 ‘가디언’은 최근 ‘손흥민이야말로 토트넘의 전천후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집중 조명했다.




입력 2018-01-09 13:27:53

  •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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