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0

2018.01.03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걱정하라! 또 걱정하라! ”

잇따른 인명사고 … ‘안전 불안증’ 가져야 살아남는 서글픈 현실

  • 입력2018-01-02 18: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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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사고가 국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희생자 20명은 2층 여성 사우나에서 비상벨 소리를 듣지 못한 데다 출입문까지 고장 나 문을 열지 못한 채 유독가스에 질식돼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구는 평소 목욕 바구니들이 쌓여 있어 아무도 위치를 알지 못했다. 소방관들은 왜 통유리를 깨부수지 않았느냐는 유족들의 항의에 ‘백드래프트’(Backdraft·산소가 갑자기 다량 공급될 때 연소가스가 순간적으로 발화하는 현상)를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어쨌든 제천 화재사고는 안전 관련 규정을 대부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예고된 참사’라고 볼 수 있다. 

    앞서 경기 용인시와 평택시에서 타워크레인 붕괴사고가 잇따라 발생했고, 12월 3일에는 인천 영흥도에서 낚싯배가 급유선과 충돌한 뒤 뒤집혀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울 이대목동병원에서는 신생아 4명이 연달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병원 내 감염이나 의료 처치 부실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세월호 참사’라는 엄청난 재앙이 결국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진 것을 목격한 문재인 정부는 전 정부의 안전 불감증을 지적하며 출범 직후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강조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대통령 약속이 무색할 정도로 안전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안전사고는 대통령의 ‘지시’나 정부의 대책 마련에 앞서 안전에 대한 국민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제천 참사 현장으로 달려가 유가족을 위로한다 해도 생명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보다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재난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동아일보 최혁중 기자]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동아일보 최혁중 기자]

    재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두 가지다. ‘각종 재난과 사고는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예측과 ‘꼭 나에게 일어날 것 같다’는 비관적 예측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그런 일이 벌어질까 전전긍긍하지만 실제 일어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동안 많은 사람이 배 타는 것을 꺼리고, 화재사고가 나자 건물 비상구를 확인하며, 차량 추돌사고 소식을 들은 후에는 조심스럽게 차를 몬다. 사고는 생명과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당연한 행동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전히 난폭운전을 하고 재난 상황을 걱정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태도인가. 만일 불안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나쁜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터다. 그도 그럴 것이 ‘잘못된 일이라도 걸리지 않으면 된다. 걸리더라도 잘 빠져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그들에게는 타인을 의식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이 결여돼 있다. 

    필자는 과거 한 칼럼에서 “ ‘적절한 주의와 근심’을 갖는 태도가 바람직하고, ‘적당한 불안(optimal anxiety)’은 우리 사회가 노력해서라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안은 인간의 기본 감정이면서 안전과 발전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적당한 불안’을 한발 더 나아간 ‘안전 불안증(security anxiety)’으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우리 마음속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이겨내려면 ‘적당한 불안’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걱정하라!’는 대국민 캠페인도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 

    필자 같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불안증을 하나의 병(불안장애·Anxiety Disorder)이나 증상으로 보고 치료한다. 불안증의 감소 또는 퇴치를 위해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에게도 마음속에서 불안을 멀리하게끔 유도한다.
     
    그러나 안전 영역은 예외다. 물론 안전 불안증이 있으면 생활이 다소 불편하겠지만,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은 상당히 예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지금 우리는 비행기, 배, 기차 같은 운송수단은 물론이고 생활공간인 사우나, 원룸, 기숙사, 전시장, 체험관, 교량, 터널, 승강기 등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불(不)이용’ 또는 ‘회피’ 전략을 쓸 수는 없다. 따라서 이용할 때 미리 안전사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마음가짐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생존 전략을 위한 요령을 숙지하자. 

    예컨대 비행기나 배를 이용할 때 구명조끼 착용법을 미리 숙지하고 실제 입어보는 연습을 해보자. 건물에 들어서면 비상구와 계단 위치를 확인해 비상시 탈출 경로를 미리 생각해보자.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 화재 시 대피 요령을 영상으로 설명해주는 것처럼 건물 곳곳에 스크린을 설치해 대피 요령을 방송하거나 대피 알림판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안전 습관 생활화

    12월 9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붕괴사고. [동아일보 장승윤 기자]

    12월 9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붕괴사고. [동아일보 장승윤 기자]

    수많은 참사 가운데 영화관 화재로 인한 대형참사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관 측에서도 늘 화재 발생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실제로 화재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손수건 또는 마스크와 적은 양의 생수라도 반드시 지참해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유독가스 질식을 피하면서 탈출해야 한다. 

    예전에 아빠 육아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아이들에게 녹색 신호등이 켜진 다음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라고 가르치던 장면이 기억난다. 같은 프로그램의 다른 아이들은 소방서에서 119 신고 및 화재 대피 훈련을 받았다. 아이들은 훌륭히 수행했고, 실제와 비슷하게 만든 모의훈련에서도 성공적으로 대피했다. 그들이 연기가 나는 현장을 일사불란하게 빠져나오던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다. 이처럼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제적인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적절한 불안, 근심, 걱정이 우리 생명을 지키고 과도한 불안, 걱정, 확인이야말로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굳건히 보호한다. 우리 모두는 이런 인식을 먼저 가져야 안전에 대한 믿음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해갈 수 있다. 또한 개인은 늘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안전 관련 수칙을 지켜야 하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안전벨트를 매고, 승강기 탑승 정원을 넘어서면 타지 않으며, 지하철에 뛰어들어 타지 않는 등의 생활습관을 몸에 익히자. 그리고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마음가짐을 결코 잊지 말자.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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