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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시네+아트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 市가 詩가 되다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 市가 詩가 되다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 市가 詩가 되다
짐 자무시는 미국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의 독특한 미니멀리즘(표현을 최소화한 미학)은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듯 무심해 보인다. 대사가 별로 없고, 배우들의 얼굴은 무성영화의 전설 버스터 키턴처럼 무표정(deadpan)이다. 일일이 언어로 설명하느니 차라리 무언으로 남겨두는 게 의미가 더 분명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언제나 시적(詩的)이고 또 언어가 없는 기악곡 같다. 산문의 논리를 피한 운문 같고, 이성보다 영혼에 호소하는 음악을 닮았다.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소도시 이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 · 11 테러 때 패터슨에선 수천 명의 주민이 환호했다”고 말해 갑자기 유명해진 도시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최근 이슬람 이주민이 늘어난 곳이다. 영화 배경으로 도시 한 곳을 선택하면서 자무시는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답게 미국의 통념과 맞서는 긴장감을 불어넣은 셈이다. 영화 속 패터슨은 대단히 목가적이다. 숲과 나무, 낮은 건물의 도시는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도시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패터슨(애덤 드라이버 분)이라는 버스 운전기사가 주인공이다. 컨트리 가수 지망생인 그의 아내 로라(골시프테 파라하니 분)는 ‘패터슨 주민답게’ 이란인이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도시 이름 패터슨과 남자 이름 패터슨, 배우 이름 ‘드라이버’와 주인공 직업 ‘드라이버’를 마치 시의 주제어처럼 병치하고 있다. 이런 짝짓기 패턴은 영화 속에서 계속 변주된다.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은 한편으론 시인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보험사 직원으로 일하며 소설을 썼듯, 패터슨도 운전하며 글을 쓴다. 그는 식탁 위 성냥갑을 보며 사랑하는 이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상상을 시로 쓴다. 식탁에서 시작한 시는 출근길에서도, 또 운전 준비를 하던 차고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패터슨은 ‘세상에 대해 말하기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다. 거대담론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것이 ‘세상’과 연결되는 것은 각자의 문제일 테다. 이른바 ‘사람주의(Personism)’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1960년대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뉴욕스쿨’이 패터슨의 문학적 토대다. 그의 방에는 뉴욕스쿨 선구자인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윌리엄스도 패터슨 출신이다. 

‘패터슨’은 패터슨의 이런 일주일간 일상을 담았다. 그는 출근하면서 시 쓰고, 운전하면서 다양한 인종의 주민 이야기를 듣고, 퇴근한 뒤 바에서 맥주 한잔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패터슨의 일과는 마치 의례를 치르듯 매일 비슷하게 반복된다. 패터슨의 일상 자체가 운율이 있는 시가 된 셈이다. 

그런 시인의 일상은 도시 전체로 확산돼 패터슨시(市) 자체가 결국 하나의 시(詩)에 이른다. 시인 패터슨이 도시 패터슨을 산책할 때 시의 향기가 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테다. 그 향기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자무시의 역량 덕분이다.




주간동아 2017.12.27 1119호 (p77~77)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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