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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美·中과 등거리 외교?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가 필요”

제6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동북아 질서 재편과 한국의 선택’ -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美·中과 등거리 외교?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가 필요”

“지금은 미국과 동맹국, 중국과 우호국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식 균형외교가 필요하다. 이는 등거리 외교가 아닌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외교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고려대 명예교수·사진)은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 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12월 11일 개최한 제6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동북아 질서 재편과 한국의 선택’ 주제 강연에서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전 장관은 “평화와 북한 비핵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가 전쟁 불가 입장을 반복하거나 북한 핵·미사일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북한 비핵화 의지에 불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번 주제 강연의 주요 내용이다.


투키디데스 vs 킨들버거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국제정치에서 ‘질서 재편’은 세력의 재편성을 의미한다. 세력의 재편성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가다. 이는 힘의 비교다. 두 번째가 누구 편인가다. 동맹국이 어떤 동맹이고 세력 균형 체제가 있느냐, 여러 편이 있느냐다. 세 번째가 그런 힘이 어떻게 분포돼 있는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90년대까지는 미국과 소련의 양극 체제였고, 90년 이후는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였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단극+다극 체제로 변했다. 이때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가 ‘세력 균형’이다. 

지금 세계의 세력 질서를 보면 단일+다극 체제에 세력 균형 체제가 가미되고 있다. 균형보다 불균형이다. 동북아에서 한국은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의 균형점이다. 미국 정치학자 케네스 왈츠는 권력 관계가 비교적 단순한 양극 체제하에서는 전쟁 가능성이 적다고 분석했다. 힘이 비슷해 전쟁이 방지된다는 이야기다. 

아시아에서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과 양강 구도를 주장하면서 두 개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패권 국가가 신흥 강국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때 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투키디데스 함정’과 새롭게 등장한 패권 국가가 기존 패권국이 생산하던 공공재를 제공하는 데 실패할 때 재앙이 발생한다는 ‘킨들버거 함정’이 그것이다.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토 확장을 기대하며 대국 행세를 하고 있다. 이런 중국이 북한에 핵무장 기회를 주고 미국의 무력 대응을 초래하기도 한다. 또 일본의 재무장에 명분과 이유를 제공하고 동북아 군비 경쟁을 조장하기도 한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정책적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 강대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앞으로도 미국은 동북아에서 지속적으로 경제·군사적 힘의 우위를 지닐 것이다. 중국이 조만간 미국을 능가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있지만, 2030년까지는 미국이 우위에 있을 것이다. 이 시기 일본이 보통국가화되면서 미·일 동맹이 강화될 테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관계가 계속되면서 이들이 미국의 공동 견제 세력이 될 것이다. 

이런 세력 재편은 왜 일어날까. 이념의 탄생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새로운 변수, 즉 지도자 변수가 세력 재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한반도 주변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있다. 의미 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두 비교적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이 세계 리더십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일본과는 밀접한 정책 공조를 보이고, 중국과는 거래를 하고 있다. 중국이 북핵 문제에 협조하면 교역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관계를 보는 시각은 일방주의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과거 미국은 북핵 문제에 ‘올인’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주미(駐美)대사로 있을 당시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3번 참석했다. 그때 부시 대통령은 “미안하지만 우리는 북핵보다 이란 핵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재는 미국 본토를 핵 공격할 능력을 가진 북한이 최우선적 위협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옵션이 열려 있다고 말한다. 군사공격은 물론, 협상도 포함한다. 미국의 대북(對北) 선제공격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능이 확인되고 미국 공격이 임박할 때 고려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라고 말한 것은 러시아와 공모 사건 탓에 국내에서 수세에 몰리자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고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미국 내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트럼프 대통령 처지에선 대북 선제공격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옵션 아니겠느냐고 여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대북 무력 사용에 대해 거부권(비토)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괌이나 하와이, 또는 해외 주둔 미군이 공격을 당하면 미국은 한국 동의와 상관없이 북한을 공격할 것이다.


‘북 레드라인 넘지 마라’ 경고 필요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시진핑 주석은 내부적으로 권력 기반을 강화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견제하고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또한, 중국은 한미일을 포함한 다자동맹 체제의 방지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어느 정도 미국에 협력하는 대신, 교역 환율 조작 등에서 미국 측 불만을 잠재우는 정책을 예상해볼 수 있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미온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귀찮은 존재지만 쓸모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심을 분산하고 중국의 협조 가치를 증대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핵 대 핵’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 가장 커 보인다. 또한, 남한에 대한 군사적 우위 확보를 통해 궁극적으로 남한을 접수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다음 행보는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함으로써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일이다. 미국과 협상할 준비가 됐다는 의미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맞은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을 한 번 더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 처지에서는 미국 내 여론을 밖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여론이 분열될 가능성이 있기에 국내 여론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국의 선택과 관련된 일이다. 한국이 나아갈 방향은 미·중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말하기는 쉽지만, 구체적으로 설정하기는 어렵다. 일단 미국과는 동맹국이고, 중국과도 우호국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한국식 균형외교로, 등거리가 아닌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외교라 할 수 있다. 

지금 평화와 북한 비핵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전쟁 불가 입장을 반복한다든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평화를 위해 도리어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북한 비핵화라는 우리의 의지에 불신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표명할 필요가 있다.




입력 2017-12-19 14:45:32

  • 윤융근 화정평화재단  ·  21세기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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